[노컷 리뷰]'로스트 도터' 미화된 모성이 여성에게서 박탈한 것

외화 '로스트 도터'(감독 매기 질렌할)

외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 '로스트 도터'는 여성도, 모성도, 결말도 특정하지 않고 하나로 그려내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여성들의 내면과 엄마로서의 삶이라는 외피에 둘러싸여 표출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 아름다움과 숭고함 그리고 당연한 숙명으로 미화된 모성의 진짜 모습을 한 꺼풀씩 벗겨내 보여준다.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 대학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다코타 존슨)를 보고 단번에 시선을 빼앗긴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응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니나의 딸이 사라지고 레다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 레다(제시 버클리)는 두 딸을 두고 집을 떠났다. 아이들이 없으니 기분이 어땠냐는 니나의 물음에 "너무 좋았어요"라고 대답하며 레다는 눈물을 흘린다.
 
외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제공
배우 매기 질렌할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잃어버린 사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로스트 도터'를 통해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37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성공적인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매기 질렌할 감독은 그리스의 어느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레다가 어린 딸과 함께인 젊은 엄마를 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엄마'와 '모성'에 관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진실을 긴장 속에 그려낸다.
 
모성의 진짜 모습이 아닌 미화되고 만들어진 모습으로만 접했던 우리에게 '로스트 도터'가 보여주는 엄마와 모성의 모습은 적나라하고 현실적이어서 이질감이 들 수도 있고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그런 엄마의 모습과 감정을 비난할 수도 있다. '모성'이란 단어로 잘 포장된 어두운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진짜 모습과 현실을 강렬한 듯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그려냈다. 당연히 그러하리라 정의했던 모습에서 벗어난 레다의 모습과 그의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도 은연중에 '엄마'란 존재를 단일한 모습으로 규정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제공
'엄마'가 된 존재는 그 존재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고통과 생명의 무게, 그 생명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에 짓눌린다. 자기 일, 생활, 감정 등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거나 '나'를 향할 수 없게 된다. 한계 없는 사랑과 돌봄을 요구받는 현실에서 여성은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아는 점점 지워지고 사라진다는 공포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 속 젊은 레다와 니나처럼 말이다.
 
여성에서 다시 여성으로 이어지고, 다른 여성에게서 자신의 모습이자 딸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게 된 레다는 과거와 현실의 기억을 오가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린 딸에 대한 육아로 인해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괴로워하는 젊은 엄마 니나를 통해 과거 자신을 마주한 레다는 어린 딸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일과 미래, 성공과 육아라는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과거 레다의 모습은 현재의 레다 그리고 니나의 모습과 계속 교차된다. 과거 레다는 아름다운 모성 혹은 자식으로 인해 만난 새로운 세상과 행복보다는 일과 육아에 치이며 아이들을 위해서는 자기 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다. 자신의 삶을 버리는 희생이 마치 엄마로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모성의 의무와 무게를 떠안은 여성 레다는 내내 고통과 번민에 휩싸인다.
 
자녀를 포기한 여성에게 사회는 당연한 듯 죄책감을 요구하는데, 한 사람의 삶과 미래를 포기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죄책감에 관해서는 우리는 아무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레다가 자녀를 버렸다는 것을 정당화하려 하기보다는 우리가 여성에게 모성이란 이름으로 압박하며 얼마나 자기를 포기하고 희생하기만을 요구하는지, 그게 여성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가는지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레다는 아이들을 버리며 죄책감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삶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기쁨마저 느낀다. 아이들이 없으니 어땠냐고 묻는 니나에게 너무 좋았다며 눈물 흘리는 레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기까지 하다. 감독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여성이 모성 외에 다른 욕망을 지니는 것은 왜 죄가 되어야 하고 왜 욕망하는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지, 무엇이 엄마인 여성의 욕망을 가로막는 건지 등을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외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제공
영화는 썩은 과일, 소음, 불빛, 매미 등 작은 요소가 계속 등장하며 레다의 평화와 고요, 정적을 깨는데 이는 불안과 긴장을 맴돌게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억눌린 감정이 외부적 요소에 의해 조금씩 비틀어지면서 폭발할 거 같은 불안과 긴장 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젊은 레다와 니나, 그리고 여전히 여성이자 엄마인 레다가 겪는 현재의 흔들리는 내면과 닮았다.
 
이러한 불안과 긴장, 레다의 과거 기억과 현재, 니나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나아가는 '로스트 도터'는 특정한 결말로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말하는 영화다. 엄마라는 존재와 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지는 모성이라는 개념은 단 하나의 의미로만 정의할 수도 없고,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결말짓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관객에게 더 많은 생각과 질문을 뒤따르게 한다.
 
모성과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엄마를 그려낸 올리비아 콜맨과 다코타 존슨,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복잡하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내면을 얼굴과 몸짓으로 끄집어낸 콜맨의 연기는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매기 질렌할 감독 역시 여성과 모성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현실, 엄마가 된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고 찰나의 상황들을 가깝게 포착해 스크린에 그려냈다.
 
122분 상영, 7월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로스트 도터' 2차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영화특별시SM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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