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한국전쟁 휴전 이후 69년…여전히 도사린 '지뢰 사고' ②지뢰 사고,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계속) |
총길이 7.6km. 김포대교에서 일산대교까지 펼쳐진 장항습지는 재두루미와 저어새 등 물새 3만여 마리의 서식지다. 람사르 습지로도 등록된 곳이지만 김철기(57)씨는 "습지엔 별 게 다 떠내려온다"고 말했다. 시속 9km로 움직이는 한강물이 냉장고, 폐타이어, 각종 플라스틱 부유물을 습지에 내려놓고 천천히 빠진다. 김씨는 그중 지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김씨는 지난해 6월 4일 오전 9시 45분경 장항습지 내 수변 갯골에서 환경정화 작업을 하다 지뢰를 밟았다. 그는 고양시로부터 용역을 받은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소속으로 2019년부터 외래 식물 제거 및 쓰레기 처리 작업을 해왔다. 사건 당일, 장화 신은 발로 갈대숲에 들어선 때였다. 강력한 스프링을 밟는 느낌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지근거리에 있는 동료들의 "아이고 철기씨 이를 어째" 하는 말소리가 멀리 메아리처럼 들렸다.
"아프진 않고 느낌이 이상해서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니 무릎 아래 장화 있는 쪽이 없었어요. 지뢰를 밟으면 잘리는 게 아니라 흩어져 없어지더라고요."
김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구급대가 출동하고 응급처치를 하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됐다. 김씨는 병원 외상센터로 옮겨져 무릎 아래 5cm를 남겨놓고 봉합수술을 했다.
김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에 볼링공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저리면서 묵직한 느낌이 든다. 제일 힘든 건 환상통이다. 한순간에 삶이 뒤바뀌었지만 그는 의족을 맞추고 재활에 열중했다.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는 조언에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봄까지 매일 하루 평균 6km를 걸었다. 지난 5월엔 직업도 다시 구해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가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사고에 대한 책임자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군 당국을 제외하고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 공무원, 협동조합 지부장 등 6명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해 지난해 10월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이들에 대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고양시 공무원들에 대한 불기소를 결정하며 업무상 과실치상죄가 성립할 만큼 '(공무원들의) 주의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전쟁 잔류 폭발물의 처리 등에 관한 훈령'(5조)에 의하면 군에 전쟁 잔류 폭발물 제거 의무가 있어 지자체에 유실 지뢰를 제거하는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수사 당시 경찰은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 공무원들이 장항습지에 '지뢰 위험' 경고 간판을 설치하지 않아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해당 지역은 2020년 여름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이 지역 관할 제9보병사단에 유실 지뢰 탐지 및 제거작업을 요청했던 곳이다. 군은 그해 11월 장항습지 내 탐방로, 선착장, 둑길 3곳에 대한 지뢰 탐지 작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탐지가 이뤄지지 않은 구간에 경고 간판을 설치하기로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과 합의했고, 공문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두 주체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뢰 등 특정 재래식 무기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7조)에 따라 지뢰 지역을 관할하는 군부대의 장이 그 지역 주위에 경계표지를 설치할 의무를 진다"며 "단지 지뢰 탐색 작전 완료 후 군부대와 고양시에서 지뢰 위험 경고 간판을 설치하기로 하는 공문이 오갔다고 군부대의 책임이 면제되거나 고양시로 이전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또 "공문에 따라 고양시에 지뢰 위험 경고 간판을 설치할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방부에서 작전 종료 후 작전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보내지도 않았고, 작전 후 장항습지 지역이 지뢰 위험구역이라는 군부대의 판단도 없었다"며 "고양시가 지뢰 위험 경고 간판을 설치해야 하는 구체적 주의 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군 지뢰 관리 책임 명시돼 있지만…사고나면 빠져나가
문제는 군이 책임 소재 파악 과정에서 완전히 빠졌다는 데 남는다. 김철기씨는 "피해자 조사 때 경찰이 책임자 처벌을 원하느냐고 물어서 국방부 책임이 있으면 당연히 국방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경찰이 '우리가 어떻게 국방부를 처벌하느냐'고 되물었다"고 전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경찰 관계자는 "군인 수사는 군사경찰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군 관계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고 군사경찰에 지뢰 관련 조치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보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장항습지 지뢰 폭발 사고와 관련해 군사경찰에서 수사 및 조사한 사항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실에 육군본부 군사경찰실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군사경찰실은 "장항습지는 고양시에서 관리 중이고, 환경단체 고용 인부가 환경정화 활동 중에 미상의 물체(유실 지뢰 추정)가 폭발하면서 발목절단상을 입게 된 사고였다"며 "이에 대한 수사 관할은 경찰에 있어 현장 감식 및 사고조사 등을 관할 경찰에서 처리했다"고 밝혔다.
군의 답변과 달리 장항습지 통행은 군의 관리 대상으로 간주됐다. 장항습지는 2018년 12월 '한강철책제거사업 협약'에 따라 시설물이 고양시로 이관됐지만, 군에선 장항습지에 출입하기 위해 필요한 장항통문 자물쇠 비밀번호를 계속 관리했다.
근본적으로 '지뢰 등 특정 재래식무기 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지뢰 지역 관할 군부대장이 지뢰 지역의 주위에 경계표지를 설치해야 하고,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필요한 감시 및 접근 차단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법원 판례에서도 군의 지뢰 관리 소홀 책임과 배상 의무가 인정된 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6월 7일 '군 지뢰 민간인 피해방지 및 관리체계 강화' 제도개선안을 내고 국방부 장관, 산림청장 및 문화재청장에게 "군사 시설물인 지뢰의 관리책임은 국가에 있고, 관리 소홀로 발생한 피해를 소유자 등이 부담하는 현행 처리방식은 문제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폭발물 사고라 국방부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국방부는 왜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느냐"면서 "사과하겠다거나 유감 표명 한 마디도 없었다. 공청회 할 때도 국방부는 훈련 중이라며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뢰 사고 뒤 군은 뒤늦은 조처를 하고 있다. 사고 당일 오후 5시 42분, 관할 부대는 '침수지역 지뢰 유입 가능성이 커졌다'며 '활동 중 지뢰가 발견될 수 있으니 잘 살피고 작업해달라'는 문자를 협동조합 지부장에게 보냈다. 또 사고 후 지난해 12월까지 군은 장항습지 내 2군데 지뢰 제거 작업을 했는데, 작업을 한 곳과 안 한 곳 모두 위험 구역은 끈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농·어민은 일하다 끈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실정이다.
사고 날 군으로부터 '뒷북' 문자를 받은 한강 박평수 고양지부장은 "군은 여태까지 (지뢰 사고와 관련해) 군사 비밀이라며 불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자세로 일관했다"며 "지뢰를 탐지해서 시민들 안전을 확보하는 데 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