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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라 땅도 내 땅'…항만배후부지 손에 넣은 재벌가 (계속) |
정부가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물류거점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민간개발사업으로 추진했던 '평택·당진항 동부두 민간투자사업'이 사실상 일부 기업인과 그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2003~2010년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에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3개 선석을 민간투자방식으로 개발했다. 이 사업은 1986년 개항한 평택·당진항의 기능이 점차 확대되면서 중국과의 교역이 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물류거점기지를 만들기 위해 추진됐다.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하 HDC 컨소시엄)이 BTO(수익형)민간투자방식으로 시행한 이 사업은 2천TEU(1TEU는 컨테이너 1개 분량)급 3개 선석(항구에서 배를 대는 자리)과 장치장, 보세창고, 부대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정부예산 350억원, 민간자본 1330억원 등 총 1680억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BTO민자방식은 민간이 시설을 건설한 뒤 소유권을 정부에 이전하면, 해당 시설의 운영권을 일정 기간 동안 민간이 가지면서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평택컨테이너터미널 운영사인 '평택동방아이포트 주식회사'가 이 부두를 운영한다.
문제는 정부가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3개 선석' 바로 뒤의 땅인 배후부지 12만1299㎡(옛 3만6692평)를 A·B·C 등 세 구역으로 나눠 민간에 분양했는데 이 부지 대부분이 부두 운영사인 평택동방아이포트㈜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사 혹은 이 사업과 전혀 관계없는 개인들의 소유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애초 정부가 이 땅의 민간분양을 허가한 건 동부두를 조성하는데 133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를 댄 HDC컨소시엄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
평택동방아이포트는 동방(부두운영사), 두우해운·남성해운·범주해운·태영상선(선사), 현대산업개발·한동건설(건설사), 수협·산업은행·한국인프라이호투융자회사(재무투자) 등 10개 법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 형태의 법인이다.
2006년 당시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운영사인 평택동방아이포트가 공개한 '항만배후부지 매각 입찰안내서'를 보면 국내외 개별법인 또는 2개 이상의 법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만 입찰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또 컨소시엄 형태로 입찰할 경우 적어도 1개 이상의 법인은 반드시 항만운송업이나 물류유통업 등 항만배후부지 조성용도에 부합하는 업종을 영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즉 부두 바로 뒤 공간을 민간에 매각하기 때문에 관련 업종이 입찰해야 하며 개인이 아닌 법인 형태로 입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땅은 항만물류관련부지로 용도가 국한됐다.
입찰 결과 A구역(5만1655.7㎡)은 인천에 본사를 둔 항만하역·화물물류 보관 전문업체인 영진공사, B구역(3만6368.9㎡)은 평택동방아이포트의 지분을 갖고 있는 두우해운·남성해운·범주해운·태영상선, C구역(3만33.4㎡)은 화물운송 관련업체인 오케이물류와 SKC·국원이 각각 낙찰받았다.
그러나 2010년 평택 동부두 내항이 문을 연 이후 해당 배후부지의 토지 등기자는 낙찰기업과 일치하지 않았다.
영진공사가 낙찰받은 A구역의 토지 등기자는 영진공사, ㈜디티씨,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회장, 김선홍 ㈜인테스 대표, 서웅교 프라핏자산운용 대표 등 5개 지분으로 쪼개졌다. 정일선 회장은 범현대가(家) 3세로 현대머티리얼㈜ 대표이사다. ㈜인테스는 과거 정일선 회장이 주주로 참여한 회사로 알려졌다. 서웅교 대표는 과거 현대기술투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디티씨는 영진공사 이강신 대표이사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C구역도 A구역과 비슷한 양상이다. C구역의 토지 등기자는 최초 낙찰업체였던 오케이물류는 그대로 유지됐지만 나머지 지분은 ㈜우성엘에스·박장석 전 SKC 상근고문·박○○·우○○·장○○ 등으로 바뀌었다. 우성엘에스의 경우 최초 낙찰업체 중 하나인 국원이 2010년 폐업하면서 지분 일부를 넘겨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원의 임원 가운데 일부는 우성엘에스의 임원을 지냈다.
SKC는 SK그룹 소속 화학·소재 업체이고, 박장석 전 고문은 최신원 전 SKC 대표이사 회장의 매제다. 박 전 고문은 2004~2013년 SKC 대표이사 사장을, 2014~2015년에는 SKC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박○○·우○○·장○○는 각각 평택동방아이포트의 주주사인 ㈜동방 임원의 가족들이다. 우○○는 김진곤 전 동방 대표이사 부회장의 부인, 장○○는 동방 전략기획실장의 부인이다. 박○○은 동방이 100% 지분을 출자한 동방컨테이너터미널 나승렬 전 사장의 부인이다. 공공용지의 성격이 강한 항만 배후부지의 소유권이 특정기업 임원의 부인들 명의로 이전된 배경도 석연치 않다.
동방컨테이너터미널은 2010년 당시 평택항 동부두의 실질적인 운영사 역할을 맡았다. 해수부 공무원이었던 나승렬 전 사장은 2003년 울산신항 컨테이너터미널 개발사업에 참여하면서 동방과 인연을 맺었다.
반면 B구역은 처음 낙찰받은 두우해운·남성해운·범주해운·태영상선과 ㈜동방 등 5개 업체가 등기를 마쳤다. 이 업체들은 입찰 조건에는 부합하지만 평택항 동부두를 운영·관리하는 평택동방아이포트의 주주사들이다.
항만배후부지 낙찰업체와 토지 등기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두고 'A구역과 C구역은 회사가 가져야 할 땅을 임원과 그 가족들이 빼앗았고, B구역에서는 부두를 운영·관리해야 하는 업체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항만배후부지는 컨테이너 등 대형 물류를 독점적으로 하역·보관·운송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알짜배기' 땅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평택·당진항은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국가인 중국과의 교역거점이다. 국가간 교역이 주로 항만을 통해 이뤄져 국가 소유 부지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민간이 이 땅을 갖고 있는 것 만으로도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부지는 B구역에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물류센터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회장의 경우 2010년 A구역 일부를 29억원에 매입할 때 이 땅을 담보로 21억원을 대출받아 분양대금을 충당했다. 이후 최근까지 이 땅과 건물을 담보로 모두 105억원을 대출받았다. 단순히 매입액과 대출액을 비교하면 3배가량의 시세차익을 현금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매입 당시 정 회장이 실제 부담한 8억원을 기준으로 보면 투자금 대비 13배가 넘는 돈을 손에 쥔 것이다.
항만업계는 해당 부지를 준공하기도 전에 수분양업체들이 토지 지분을 개인에게 손쉽게 양도양수가 가능했다면 입찰 조건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입을 모았다. 항만개발사업은 바다를 매립해 땅을 만든 뒤 무역을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민간자본으로 조성한다고 해도 지도와 국경이 바뀌는 속성이 있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업체에게 분양하는 게 상식이라는 지적이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민자개발사업이라고해도 항만배후부지를 분양받으려면 사업계획과 관련 사업실적과 항만업계의 기여도, 자금 능력 등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며 "해수부가 항만배후부지라도 돈만 있으면 아무나 살 수 있도록 방치했다면 이제라도 사태를 파악하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