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를 목적으로 해외에서 건 전화를 마치 국내 번호인 것처럼 바꾸는 '발신번호 조작용 휴대전화' 수천대를 캐리에 들고 다니거나 전국에 있는 모텔·야산 등 수십 곳에 깔아놓고 운영한 일당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들이 운영한 발신번호 조작용 휴대전화를 통해 평범한 국내 휴대전화번호로 탈바꿈한 전화를 받은 피해자들은 30억원이 넘는 돈을 빼앗겨야 했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발신번호 변작 중계소 운영 일당 50명을 붙잡아 이중 총책 A(29대)씨 등 37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현금 수거책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 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8개월가량 발신번호 조작용 휴대전화 1871대를 이용해 저금리 대환대출 등을 미끼로 73명으로부터 32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운영한 발신번호 조작용 휴대전화는 중국 등 해외 콜센터에서 국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 경우 인터넷 전화번호(070, 1544)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010)로 변경해 피해자들의 전화기에 노출했다.
전화 연결이 된 피해자들에게는 '기존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변경해 주겠다'라거나 자녀나 검찰, 금융기관을 사칭해 돈을 뜯어냈다.
피해자는 모두 73명이나 되고, 총 피해금액은 32억원이 넘는다.
특히 피해자 50대 B씨는 자신의 자녀인척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는데, 보험을 신청해야 한다'며 접근한 A씨 일당에 속아 넘어가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을 깔았다가, 전자지갑에서 가상자산 5억7천만원이 빠져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또 60대 여성 C씨는 '추가 대출하면 기존 대출을 저금리로 대환대출 해주겠다'는 이들 일당의 감언이설에 속아 어렵게 모은 노후자금 7300만원을 뜯기기도 했다.
한편, 담당 경찰은 "과거 보이스피싱 변작 중계소를 운영한 일당은 노트북 크기의 중계기를 따로 중국에서 수입해 발신번호를 조작했다면, 이번에 검거된 일당은 일반 휴대전화를 이용해 변작 중계소를 운영했다"면서 "손바닥 만한 크기의 일반 휴대전화에 특정 앱을 깔아 손쉽게 발신번호를 조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 일당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모텔을 하루 단위로 이동하며 발신번호 조작용 휴대전화를 많게는 350대까지 방에 깔아놓고 중계소를 운영했다.
특히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이들 일당은 여행용 가방에 휴대전화 수백개를 넣어 도보로 이동하거나, 차량에 휴대전화를 놓아 두고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며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등 날로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강력1계 박무길 팀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수사기관의 단속을 피해 야산, 건물 외벽 등 예상치 못한 장소에 중계기를 설치 운용하는 치밀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구인광고를 통해 '스마트폰 관리나 서버 관리인을 모집한다'며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일반 시민들을 범행에 가담시키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