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박해일)은 사건의 유일한 유족인 서래(탕웨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미묘한 관심과 함께 형사 특유의 본능적 의심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 '헤어질 결심'은 본격적으로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는 변사 사건 사망자의 아내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형사, 두 캐릭터의 감정선이 극을 이끈다. 박찬욱 감독과 처음 작업하는 배우 박해일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처음으로 형사 역을 맡아 서래와 함께 관객들을 '박찬욱 세계'로 안내한다.
박해일마저 흥미롭게 만들었던, 이야기로만 들었던 박찬욱 감독의 세계는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또한 박해일은 함께 호흡을 맞춘 탕웨이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배우였다고 말했다.
어렵지만 매력적인 박찬욱의 세계
▷ 영화의 대본을 받고 나서 '헤어질 결심'이란 작품에 관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잠시 '어? 이게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 작품이야?'라고 생각했다. 워낙 감독님 전작들이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인상을 심어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담백하다'라는 한 마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쭉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촬영 전 감독님을 만나면서 이 부분도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인 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게 다 내게는 첫 작업이다 보니 낯설고 새로웠다. 촬영할 때는 호기심이 생기고 흥미롭게 촬영해나갔다.
▷ 박찬욱 감독은 특유의 미장센으로도 유명한 감독이다. 이번에도 청록색, 산과 바다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감독의 미장센을 현장에서 본 느낌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빛에 따라서 청색으로 보였다가 녹색으로 보였다 하는 청록색이 이 영화의 톤 같았다. 주인공들이 가진 진실한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이런 색, 어떻게 보면 저런 색으로 보일 수 있는 입체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배우들도 연기할 때 진심이지만 진심이 아닌 듯한, 항상 그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연기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게 매력적이긴 한데 어렵기도 했다.
그런 걸 심지어 배우의 연기가 아닌 그 배우가 있는 주변 미술이라든가 조명, 여러 가지 소리나 그런 장치들을 감독님이 현장 전부터 꼼꼼하게 준비하고 현장에서 또 꼼꼼하게 체크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다가 배우가 연기할 때는 그런 부분에 불편함을 주는 감독님은 아니다. 그저 본인의 작품을 어떻게 구현해내야 할지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다 만들어진 완성작을 보고 난 후 연기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결과적으로 그런 배치와 구도, 준비됐던 주변의 상황들이 결국 작품의 이야기로 이렇게 풀린다는 걸 더 느끼게 되고 더 풍성하게 알게 됐다. '박찬욱'이라는 창작자를 더 느끼게 되는 장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그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감독님마다의 각자의 색깔이 있고 방식이 있다. 이번엔 이게 박찬욱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이고, 결과물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경험했다.
▷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대로 한 연기, 시나리오 속 지문 등이 정말 상상 이상으로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마지막 바닷가 장면, 그건 제작팀에서 이런 부담을 주더라. 이게 만조가 찼고, 파도가 이렇게 괜찮은 날 실패하면 한두 달 있다가 다시 찍어야 한다는 거였다.(웃음) 이런 부담을 떠안고 촬영해야 하는데,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난도 중 하나인 장면이었다.
심지어 파도가 너무 세서 사고가 날 수 있어서 감독과 모든 스태프가 긴장했고, 되게 집중해서 찍었다. 찍고 나서 감독님도 정말 만족해하셨다. 나도 고생스럽게 찍었지만, 그 고생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서로가 만족하고 나도 크게 만족했던 장면이다.
▷ 박찬욱 감독도 세부적이고 디테일하게 연출하는 걸로 유명한데, 디테일하면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 초점을 맞춰서 두 감독님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
비슷한 부분이 많다. 촬영 전까지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는 것도 그렇다. 보통 신인 감독이 더 바쁘다. 경험이 많은 분은 연륜이 있어서 안 그런데, 박찬욱 감독님과 봉준호 감독님은 정말 신인 감독만큼 바쁘다. 쉬지를 않는다. 단 허투루 시간을 쓰는 부분이 없다. 그렇다는 건 변수와 관련해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시나리오와 콘티, 두 분은 공통으로 그 부분에 집착한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자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나리오와 콘티는 스태프와 배우 수백 명이 보고 현장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돕는 하나의 소통 수단이다. 오해가 없게, 철저하게 준비하는데, 보이지 않는 내공이 결국 그런 데서 느껴지지 않나 싶다.
탕웨이도 놀라워했다. 이런 콘티로 준비하고 촬영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했다. 탕웨이는 심지어 중국 영화계에 이런 문물을 알려줘야겠다고 했다. 정말 다 다른가 보다. 유달리 한국에 이런 기법이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해도 될 거 같다.(웃음)
박해일이 탕웨이의 연기를 보며 흥미로웠던 지점
▷ 주인공 서래 역이자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배우가 탕웨이다. 배우 대 배우로서 놀라웠던 점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현장에서 탕웨이가 연기하는 방식은 되게 흥미로웠다. 중국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더라. 그래서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쏟아붓기 직전에는 이성적으로 왜 자기 캐릭터가 이렇게 연기해야 하는지 감독님과 디테일하게 이야기하더라. 디테일하게 이해가 되어야 그다음 배우로서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를 했다.
예를 들어 해준이 서래에게 남편 시신 확인을 사진으로 보겠냐고 취향을 물어본다. 연애할 때 이런 음식, 저런 음식 드시겠냐고 취향을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취향을 느낄 수 있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그런 지점이 흥미로웠다.
▷ 탕웨이 외에도 아내 정안 역 이정현, 서래의 새로운 남자 호신 역 박용우, 후배 형사 수완 역 고경표, 새로운 후배 연수 역 김신영 등 많은 배우와 함께 작업했다.
박용우 선배, 이정현씨, 고경표씨, 박정민씨, 심지어 김신영씨. 모든 배우가 다 내가 처음 작업해보는 배우들이라서 너무 반가웠다. 다 매력적이고, 한 자품에서 언젠가 뵙고 싶은 분들을 한꺼번에 박 감독님과 만나서 좋았다.
이정현씨는 이미 '꽃잎' 때부터 팬이었다. 저런 외모와 이미지에서 저런 폭발력 있는 연기를 10대 때부터 해버리니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박 감독님과 한 작품 해봐서 좀 더 여유 있게 나를 맞아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였다. 박용우 선배는 그동안 정말 다양한 연기들을 해내시는 걸 보고 놀랐는데, 이번에도 가벼운 듯하면서도 면도칼 같은 묵직한 연기를 봤다.
경표씨는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이미지가 있는데, 말을 나눠보니 되게 구수한 면도 있었다. 후배 형사로서 편안하게 같이 팀워크를 맞춰줘서 재밌게 촬영했다. 신영씨는 감독님의 '신의 한 수'라 말할 수 있다. 박정민씨도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짧고 묵직하게, 시기적절하게 등장해 멋진 연기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 극단 후배이기도 한 주인영씨는 간병업체 실장으로 나오는데, 현장에서 '와, 너구나!' 하면서 연기했다. 짧은 역할이지만 정말 매력적으로 해냈다. 박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저 배우 누구냐고 물으셨다. 정말 연극계에서 잔뼈 굵은 배우다.
▷ 마지막으로 '헤어질 결심'을 찾을 관객분들에게 인사해 달라.
'헤어질 결심'이 가진 매력 중 시사회를 통해서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한 번 다른 식으로 보고 싶다는 거였다. 끝까지 보고 느끼시는 대로 즐겨주시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