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박해일은 '헤어질 결심' 형사 해준을 기다려왔다

영화 '헤어질 결심' 형사 해준 역 배우 박해일 <상>
박해일이 처음 만난 형사 해준에 관하여

영화 '헤어질 결심' 형사 해준 역 배우 박해일.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하는 거야."
 
항상 본분에 충실하며 자긍심을 가진 형사 해준은 시경 사상 최연소로 경감의 직위에 오를 정도로 유능하다. 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청결에 신경 쓰며, 예의 바르고 친절한 성격이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는 것에 최선과 진심을 다하는 인물이다.
 
사건 현장에서의 모든 기록을 스마트 워치에 녹음으로 남기고, 불면증으로 인해 밤샘 잠복 수사가 일상이 된 해준. 태연하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는 첫 만남부터 그에게 강한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살인의 추억'부터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새로운 얼굴,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 온 박해일이 '헤어질 결심'을 통해 첫 형사 역할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은 "해준 역에 박해일 외에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고, 맞춤형으로 각본을 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과연 박해일은 시나리오 속 해준을 처음 본 순간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어떻게 세심하게 해준을 그려 나갔는지, 지난 6월 2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박해일은 형사 해준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려왔다


▷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해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어떠했나?
 
박찬욱 감독님이 만들어내는 형사라는 이미지가 이런 모습이라는 게 놀라웠다. 한국 영화에서 주로 다뤄오던, 그러니까 '살인의 추억' 속 형사 느낌을 포함한 여러 작품에서 형사를 대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고 이미지도 달랐다. 그게 낯설지만, 되게 호기심이 강해졌다. 이런 형사면 내가 재밌게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형사물을 참고 기다려왔었나 할 정도로 내가 잘해볼 수 있는 형사를 이번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박찬욱 감독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 주인공으로 배우 박해일을 생각했다고 들었다.
 
지나고 나서 들었지만, 박 감독님이 시나리오 각본을 완성해 놓고 난 후 배우를 캐스팅한다고 알았는데 이번 경우는 좀 다르게 그랬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항상 같이해 온 정서경 작가님과 '헤어질 결심'을 준비하려고 할 때, 중국 배우가 꼭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중국 배우가 캐스팅 안 되면 영화가 무산될 위기까지 가는 상황이니 배우부터 확실히 캐스팅되어야 세세한 각본 작업에 들어가는 거였다.
 
나까지 캐스팅되고 나서 시나리오를 작업한 거다 보니 아무래도 확정된 배우들의 기질을 더 활용하지 않았나 싶고, 그게 전작과의 차이라면 차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좀 더 고려한 흔적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좀 더 잘 읽히고 흥미를 더 갖게 된 것 같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 서래를 심문하는 장면은 박찬욱 감독의 말마따나 보통의 연인들이 할 법한 모든 일이 벌어진다. 이 장면 촬영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시 어떤 뉘앙스를 갖고 연기하라는 디렉션은 없었다. 두 배우가 그런 공간(심문실)에 있어도 어울릴 것 같은지 보고 캐스팅이 끝난 상태였고, 시나리오가 이미 그런 방식으로 완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충실하면 그런 기분이 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대사와 지문 등 이런 상황들이 그런 뉘앙스를 풍기게끔 나와 있었다. 이를테면 심문실 안에서 같이 초밥을 먹는다든가, 먹고 난 후 같이 치운다든가. 그런 경우들이 좀 드물다. 드문 게 아니라 낯설다.
 
'살인의 추억' 때 취조실에서 연기를 해봤는데, 형사라는 신분으로 비슷한 공간에서 연기해보니 참 재밌더라. 밀폐된 공간에서 연기하는 건 배우로서 매력 있는 거 같다.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 배우의 미세한 호흡과 눈빛, 말의 떨림 등을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진공상태와 같은 공간에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기억에 많이 남는 촬영 공간이었다.

 
▷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대사 이외에 주어진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설명이 꽤 디테일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표정 등 디테일한 부분, 연기와 관련된 표정 등은 배우가 해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을 유도할 수 있게끔 만드는 대사와 지문은 매우 매력적으로 쓰여 있기에 이걸 잘 표현해야 하겠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전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님만의 장점이자 매력인 스타일이라는 것이 미학과 작품 표현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그런 부분을 만들어 내실 때, 그동안 내가 연기한 작품에서 보지 못한 나의 얼굴, 눈빛, 뉘앙스를 포착해주셨다. 그건 감독님만의 시선일 것이다. 그걸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형사 해준 역 배우 박해일. CJ ENM 제공
 

박해일이 본 '헤어질 결심' 속 세심하고 재밌는 장치들

 
▷ 박찬욱 감독은 스웨덴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헤어질 결심'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혹시 해준을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캐릭터가 있을까?
 
어떤 작품에선 참고할만한 영화와 원작이 있는 경우 책을 읽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마다 또는 감독님마다 내가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이번엔 감독님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좋아하고 일부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서 바로 시리즈를 사놓았다. 그런데 결국 못 읽었다. 못 읽고 촬영에 임해서 지금까지도 못 읽었다.
 
사실 내가 읽어봐야 하나 고민할 때 감독님이 안 읽어봐도 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안 읽어봐도 된다는 전제를 뒀을 때, 읽어보면 왠지 정형화된 연기의 일부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감독님이 배우에게 맡겨준 선택의 문제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기질이 있다며 그것을 필터링 없이 오로지 감독님과 시나리오에만 맞추자 싶었다. 또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하니 리액션과 호흡에 초점을 맞춰서 작품에 임한 케이스다.

 
▷ 재밌는 설정인데, 마치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해준의 주머니에서 온갖 것들이 나온다.
 
준비되어 있는 자. 그것도 예의 바르고, 그만의 일관된 방식으로 여지껏 일해 온 형사라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괜찮은 장치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나올 때 그게 서래를 만날 때 활용되는 극적 장치도 분명 있다. 그런 게 신선했다. 심지어 대사에도 활용된다.
 
주머니 안에는 립밤, 보습제 등 형사 캐릭터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감독님이 이런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부분에서 놀라웠다. 또 증거물 수집을 위한 실리콘 장갑, 집게 등도 있다. 가제트 형사를 아나? 상황에 따라서 뭔가 하나씩 탁탁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CJ ENM 제공
 
▷ 모든 게 다 들어있는 주머니 외에도 재밌다고 생각한 설정이 있었나?
 
해준이 불면증이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잠복수사를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그 불면증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극적 장치로서 훌륭했다. 감독님이 섬세하고 다양하게 많이 배치해 두셨구나 싶었다.
 
▷ 이러한 독특하고 재밌는 설정 외에 기억에 남는 대사도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
 
우선 형사인데 시적 언어, 문어체적 대사를 쓰는 장면이 꽤 있는데, 그게 흥미로웠다.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과 차 안에서 잠복하면서 망원경으로 서래를 쳐다보면서 시적인 대사를 한다. 슬픔이 잉크처럼 서서히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는 대사인데, 형사가 하니까 정말 새로웠다.
 
그리고 송서래가 사망한 남편의 시신이 있는 안치실에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서래를 맞이하는 해준의 첫 등장 장면이다. 거기서 '마침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게 둘의 관계를 엮이게 만드는 장치 중 하나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이 영화를 그려내는 질감 같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헤어질 결심'을 볼 예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헤어질 결심'이라면 결심하기까지의 고단하거나 신중했거나 힘들었던 과정이 있을 거다.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 결심은 정말 관객분들이 즐겨야 할 것이기 때문에 남겨두겠다. 곱씹을 만한, 의미가 있는 부분인 거 같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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