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세대학 학생이 청소·경비노동자의 시위로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져 해당 대학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한 학생이 재학생 커뮤니티에 청소노동자 집회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고소에 동참할 이를 모집한 뒤 3명의 학생이 모여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촉발됐다.
이들은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이 달 들어서는 민사소송도 걸었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은 계속되는 시위로 학습권이 침해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를 합쳐 638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지난 4월부터 시급 400원 인상과 퇴직인원 충원, 그리고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며 학내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과 시민 등 2300명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을 향한 연대 의사를 밝히는 등 논란이 제기됐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필자 역시 이 소식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젊은이들과의 세대 차이는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대학가에서 이런 논란이 전개되는 것을 보니 "시대가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80년대 대학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게 열려 '꽃병'(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경찰 체포조인 이른바 '백골단'과의 대치가 치열했다.
그 당시에는 민주화라는 뚜렷한 목표이자 시대정신이 있었기에 혼란 속에서도 대학가 캠퍼스에는 구성원들 간의 연대가 끈끈하던 시절이다.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뜻있는 교수들은 휴강을 선언하는가하면 시위 참여 대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들도 불편함을 참으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감내했다.
특히 소외되거나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대학가의 최우선 덕목으로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학우들가운데 노동자와의 연대를 목적으로 노동 현장에 위장취업을 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취업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이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스펙 쌓기 보다는 캠퍼스에서 열심히 낭만을 누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일례로 취업이나 졸업시즌이면 웬만한 대학가에는 대기업들로부터 학생을 추천해달라는 이른바 '추천장'이 전달 돼 능력이 있는 친구라면 추천장 한·두 개는 손에 쥐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중되는 취업난 탓에 대학 캠퍼스가 낭만보다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하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분위기 탓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사라지고 오직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이 대학 캠퍼스를 지배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도 연세대 학생들의 청소 노동자 민·형사 고소 제기를 보면서 드는 씁쓸한 생각은 어쩔 수가 없다.
대학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 장소로 변해가고 있다 해도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래 목적은 학문을 연구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대학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와 지성인을 기르는 중요한 곳이다.
그런 캠퍼스 내에서 약자로 꼽히는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불편함을 우선시해 민·형사 소송까지 제기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해당 대학인 연세대 나윤경 문화인류학과 교수도 이번 사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나 교수는 다음 학기 개설할 '사회문화와 공정'이라는 강의계획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 교수는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다면서 "학교가 아닌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온 노동자를 향해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공정 감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나 교수도 지적했듯이 학교 측의 태도다.
연세대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학내시위에 대해 '용역업체와 노조 간 문제'라는 기본 입장을 내세운 채 사태 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문제를 키웠다.
연세대는 노동자들에게는 원청업체이고 학생들에게는 수업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주체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
지금이라도 학교 측은 사태 해결의 주체로 나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노동시장 불안과 경제적 양극화를 경험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다.
게다가 갈수록 숨 쉴 틈 없는 입시 경쟁까지 가중되면서 이웃이나 사회는 물론 자신에게 조차 관대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성장한 세대다.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대'라고 불리는 사춘기 시절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성찰하기 보다는 입시 경쟁이 우선인 탓에 주변을 둘러 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불행한 세대다.
요즘 젊은 세대의 화두는 '공정'인 듯하다.
자신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출발점부터 잘못된 탓에 유독 '공정'을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고 옳은 주장이다.
하지만 연세대 청소노동자 민·형사 소송 제기 논란은 젊은 세대가 강조하는 '공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공정'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설계해 이득을 누리는 기득권층을 향한 외침이어야지 소외된 이웃과는 '연대'를 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