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의 지난 시즌 경기 평균 시청률은 1.18%였다. 남자부의 0.75%를 거뜬히 넘어섰고,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와도 견줄 만했다. 특히 최고 스타 김연경(34·흥국생명)이 중국 상하이로 이적했음에도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다.
하지만 국가 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공백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이후 태극 마크를 반납한 김연경과 김수지(35·IBK기업은행), 양효진(33·현대건설) 등 베테랑의 부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은 3일 끝난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12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승리는커녕 승점 1도 얻지 못한 채 16개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8년 출범한 VNL에서 무승에 그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승점 0도 최초의 불명예다. 역대 VNL 여자부 예선 최악의 성적은 2018년 아르헨티나의 1승 14패(승점 3)였다.
여자 배구 황금기를 이끈 3인방의 부재에 대표팀의 고전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2012년 런던과 지난해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뤘지만 한국 여자 배구는 장기적 관점에서 세대 교체를 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VNL 역대 최악의 성적은 예상을 넘는 결과였다. 그래도 박정아(29·한국도로공사), 김희진(31·IBK기업은행), 염혜선(31·KGC인삼공사) 등 도쿄올림픽 멤버들이 팀의 중심을 이끌고 이다현(현대건설), 박혜민(KGC인삼공사), 이주아(흥국생명) 등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선수들이 가능성을 입증할 것으로 기대됐던 까닭이다.
대표팀은 그러나 상대를 압도할 에이스의 부재를 절감했다. 장신의 외국 선수들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보인 김연경의 존재감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만큼 믿고 의지할 기둥이 없었다.
박정아가 예선 동안 팀 내 최다 89점을 올렸지만 일본 주포 고가 사리나(243점)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중국 리잉잉도 232점을 올렸고, 태국 주포 핌피차야 콕람도 218점을 기록했는데 고가와 함께 예선 전체 득점 2~4위에 올랐다. 확실한 에이스가 있는 일본, 중국, 태국은 상위 8개 국가 안에 들어 VNL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했다. 김연경의 존재가 더 커보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 세사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감독도 반등할 전술을 찾지 못했다. 곤잘레스 감독은 소속팀인 터키 클럽의 일정으로 VNL 출발 4일 전에야 대표팀에 합류해 선수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실력이 아직은 일천한 자원들로 대회를 치러야 했다.
김연경 등 베테랑들의 커다란 우산에 안주해왔던 한국 여자 배구가 험난한 세계 무대의 현실에 맞닥뜨린 모양새다. 여자 배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에 취해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배구계 일각에서는 "프로 선수인 만큼 팬들을 위해 외양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기력 향상보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쓴다"는 쓴소리도 나왔던 터였다.
김연경 등 황금 세대 이후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대한민국배구협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프로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은 최근 배구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회에 총 2억3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헛돈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국 여자 배구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세계 랭킹 14위에서 19위로 떨어진 대표팀이 이런 경기력을 계속 보인다면 12개 나라, 개최국 프랑스를 빼면 11개 국가에게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기는 불가능하다.
황금 세대의 국가 대표 은퇴 이후 엄중한 세대 교체의 현실에 직면한 한국 여자 배구. 과연 인기에 맞는 실력을 언제쯤 키워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