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51) 작가는 분단체제에서 파생된 정치적 폭력과 갈등의 문제를 사진과 글로 엮어왔다.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용산 철거민 참사, 한진중공업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밀양 송전탑 시위 등 첨예한 대립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역광 사진만 따로 모았다. 한 마디로 역광을 통해 동시대 사회상을 바라본다. 역광은 사진 촬영에서 가급적 피해야 할 조건으로 여겨진다. 피사체의 세부가 어둠에 묻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흑백으로만 보이는 역광 사진은, 회색을 허용하지 않는 극단주의적 화법이 환영받는 한국 사회를 은유한다.
작가는 최근 개인전 '검은 깃털' 기자간담회에서 "흑백으로 양분된 것 같은 역광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색이 보인다. 우리 사회나 개인의 삶은 지나친 어둠이나 밝음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회색 또는 살짝 어둡거나 밝은 공간에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검은 깃털 #BJI1500'(2009)은 당시 야 4당 당수(정세균·문국현·강기갑·노회찬)가 서울 대학로의 거리 연단에서 연설하고 구호 외치는 모습을 담았다. 이들 중 어떤 이는 국회의장·국무총리로 승승장구했지만 어떤 이는 미래권력의 대안으로 급부상했다가 지금은 소식이 잠잠하다. 어떤 이는 농부가 됐고 어떤 이는 고인이 됐다. 작가는 "13년 전 풍경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삶이란 참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가 '부서짐'이라고 했다. "정치지형에 따라 바스라지는 경찰 조직, 123주년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가 피워 문 담배에서 떨어져 내리는 재, 남일당 남지피 남풍리의 폐허들, 파리를 향해 돌진하는 르완다의 까마귀, 전봇대를 잠식한 덩굴의 마른 가지… 전시장에 작품 설치를 끝내고 찬찬히 둘러보니 '부서짐의 장면들을 모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