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왜 5살 유치원생을 코로나 유입경로로 지목했나?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입 경로를 조사한 결과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가 최초 발생지역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는 1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4월 중순경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지역에서 수도로 올라오던 여러명의 인원들 중에서 발열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 속에서 유열자들이 급증했고 이포리 지역에서 처음으로 유열자들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국가비상방역사령부 관계자인 류영철이 브리핑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일 코로나19의 최초 유입경로로 남북접경지역인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를 지목했다.
 
"4월 초 강원도 이포리에서 군인 김모(18살)와 유치원생 위모(5살)가 병영과 주민지 주변 야산에서 색다른 물건과 접촉"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색다른 물건'이란 남측에서 날아온 대북전단과 물품을 뜻한다.
 
군인 1명과 유치원생 1명이 이포리 주변 야산에서 대북전단과 물품을 만졌다가 코로나19 첫 감염이 이뤄졌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는 얘기이다.
 
해당 군인은 18살이라고 하니,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급 중학교를 졸업(17살 졸업)한 뒤 군대에 입대해 이제 1년이 지났을까 할 신병이다.
 
지목된 유치원생도 5살이라고 밝힌 만큼, 낮은 반과 높은 반의 2단계로 되어 있는 북한 유치원 학제에서도 낮은 반에 다니는 아주 어린아이다.
 
'아직은 뭘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신병과 유치원생이 남북 접경지역에서 접촉해서는 안 되는 색다른 물건, 즉 대북전단을 접촉한 셈이 된다.
 
북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런 코로나 유입 경로는 단순히 추정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과학적인 결론'이다.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 생물공학연구소, 바이러스연구소, 의학 연구원,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중앙검찰소를 비롯한 해당 단위의 능력 있는 일군, 전문가들이 망라된 조사위원회가 금강군 이포리 지역에서 악성 바이러스 유입경로로 되는 요인들을 다각적으로, 해부학적으로, 전면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 "이들(군인과 유치원생)에게서 악성 바이러스 감염증의 초기증상으로 볼 수 있는 임상적 특징들이 나타나고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항체 검사에서도 양성으로 판정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포나 우편물, 전단 등 물체의 표면에 잔존한 바이러스를 통한 코로나 감염 확률은 "만분의 1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감염병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북한 평양지하상점 소독하는 종업원들. 연합뉴스

북한이 실제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에서 날아온 '색다른 물건'과의 접촉을 통한 코로나 전파를 '과학적인 조사결과'라고 들고 나온 데는 내부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코로나 발병이후 2년 넘게 '확진자 0명'을 주장해온 '청정국' 북한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했다는 것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다.
 
게다가 인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을 김정은 위원장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내세워 온 북한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학적 조사결과 최초 감염은 군대 경험이 별로 없는 18살 신병과 5살 유치원생으로 드러났고, 그것도 남측에서 날아온 대북전단을 통해서였다.

결국 코로나 첫 발병의 책임을 남측으로 전가한 셈이고, 북한 내에서도 경험이 부족한 신병과 유치원생을 지목해 문책 범위를 최소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대북전단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고는 있지만 입대 1년 남짓의 신병과 유치원 어린이에게 코로나 발병과 확산의 책임까지  모두 물을 수는 없는 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코로나 발병 이후 각종 회의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보건위기는 방역사업에서의 당 조직들의 무능과 무책임, 무역할에도 기인 한다"며 여러 차례 강력 비판했기 때문에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코로나 승리(종식) 선언'을 앞두고 발병의 기원을 접경지역 대북전단으로 돌림으로써 대남 대적투쟁 전선을 보다 분명히 하고,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면책을 통한 체제 결속을 의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에서 코로나19의 발병과 전국적인 확산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인데, 남북접경지역의 대북전단을 접촉한 신병과 유치원생을 유입의 기원으로 지목함으로써, 관련 간부 등 좌불안석하던 많은 사람들이 면책을 받게 된 것"이고, "최초 당사자인 군인과 유치원생 역시 경험이 적고 어리다는 점에서 큰 책임을 묻기도 좀 그런 상황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수 교수는 "대북제재와 국경봉쇄의 어려움에 처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내부 균열을 막고 충성심을 배가시키는 효과도 의도한 것으로 본다"며, "지난달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리선권의 첫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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