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가계부채의 역습…달콤한 미래 약속과 생계형 늪에 '허우적' ②금리 오르고, 자산가치 하락…빚 부담에 "잠이 안 온다" ③더 커진 'R 공포'…부채 시한폭탄 째깍째깍 (계속) |
공식 언급된 美 "경기침체"…살인 물가에 '자이언트 스텝' 밟았지만 우려 여전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동안 언급을 꺼렸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경기침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존재하며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고 말한 데 이어 "또 다른 위험은 가격 탄력성을 회복하지 못해 높은 물가 상승이 경제 전반에 퍼지는 것"이라며 경기와 물가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파월 의장은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하반기 경기에 대해서 낙관적인 입장도 함께 언급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경기침체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상충되는 입장을 제시했다.
미국의 국가원수와 경제수장 뿐 아니라 전문가들 또한 높은 수준으로 경기침체를 전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경제전문가 53명을 대상으로 '향후 12개월 안에 경기침체가 올 확률'을 물은 결과 평균값이 44%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처음 설문조사가 실시된 이래 나온 가장 높은 수준이자, 글로벌 금융이기가 시작됐던 2007년 12월의 38%,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2월 26% 보다 높은 수치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우려가 높아진 것은 살인적인 물가와 높아지고 있는 대출 금리, 글로벌 공급망 차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온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이 함께 맞물렸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6% 올랐다. 이는 1981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에너지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지난해 대비 34%가 치솟았고, 식료품도 11.9%나 올랐다. CPI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 관련 비용도 5.5%가 올랐다.
결국 미 연준은 기준금리 0.75%p 인상이라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을 밟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분석이 다수 제기되면서 7월에도 비슷한 수준의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WSJ 여론조사 결과 지난 4월 조사에서 2.014%이던 연준의 올해 말 기준금리 예상치가 최근 조사에서는 3.315%로 1.3%p나 올랐다. 물가 상승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은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나오게 하고 있다.
한국에도 찾아온 복합 위기…물가·금리·환율·산업 전방위 우려
이런 상황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말 그대로 '복합위기' 상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9월 이후 13년 8개월만에 5%대 진입이자, 2008년 5월 5.6% 이후 13년 9개월만의 최고치다. 전기·가스·수도 9.6%, 공업제품 8.3%, 농축수산물 4.2%, 서비스 3.5% 등 전분야가 고루 올랐다. 당초 시장 중심의 경제성장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던 새정부는 정권 출범과 함께 맞이한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새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등을 통해 여러 대책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원료에 대한 관세를 연말까지 0%로 낮추고, 서민 외식의 주된 재료인 밀가루 가격 상승분 90%(정부 70%, 제분업계 20%) 부담,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확대, 유류세 인하 등 각종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물가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영향력이 큰 대외요인이자 우리 경제 정책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5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달 보다 0.5%가 오르며 5개월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물가뿐 아니라 금리와 환율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시중은행은 미 연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상단이 6%에 육박했다. 지난해 5월말 주담대 금리 상단이 3.9%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새 2%p나 오른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마저 좋지 못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 2009년 7월 이후 처음으로 1300원을 넘어섰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마저 고공비행을 하면서 수출입에 대한 부담과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대외 리스크에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 해제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 산업활동의 3대 축인 생산과 소비, 투자가 일제히 감소하는 이른바 '트리플 감소'가 26개월 만에 다시 찾아왔다.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생산은 0.7% 감소, 소비는 0.2% 감소로 감소폭이 크지 않았던 반면, 향후 경기를 가늠케 하는 투자의 경우 한 달 전보다 무려 7.5%나 급감했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장비 도입 지연에 불안심리가 더해진 탓이다.
복합위기 상황 속 커지는 부채폭탄…경기침체 뇌관 불 붙일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채 규모가 커져가면서 자칫 경기침체를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960조7천억원에 도달했다. 사실상 1천조원에 다다른 셈이다. 문제는 가파른 증가율이다. 2019년말 684조9천억원과 비교하면 2년3개월 만에 무려 40.3%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 신용증가율과 기업 신용증가율 16.2%, 23.7%를 2배가량 상회하는 수치다. 이 중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되는 사업자대출은 625조1천억원으로 자영업자 전체 대출의 3분의 2에 달한다. 코로나19로 부진해진 매출을 대신해 대출로 운영자금을 메꾼 것이다.
급격한 대출 증가는 부실채무로 연결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우려를 낳는다. 다중 채무자 등 취약차주가 보유한 자영업자 대출은 1분기말 기준 88조8천억원으로 2019년 말의 68조원보다 30.6%가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020년 4월부터 6개월씩 4차례 연장했던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상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오는 9월 종료되고, 손실보전금 효과도 차츰 사라지면서 내년부터는 채무 상환 위험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누증과 높은 주택가격 수준 등이 주요 취약요인으로 잠재하면서 여전히 금융취약성지수가 장기 평균을 웃돌고 있다"며 "취약차주 비중이 높고 담보·보증 대출 비중이 낮은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 대출부터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우려의 시점이 경기침체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기와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부채가 불경기 폭탄의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의 2.7%,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7%보다 더 낮은 수치다. 연초 대비 각종 지수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하반기 경제가 사실상 제로(0)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자칫 부실채무 문제가 예상보다 커질 경우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 취약계층의 채무가 부실채무가 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가 경제로 돌아오게 된다"며 "계속해서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 줄 수는 없지만 금리 부담을 줄여주고, 필요에 따라 재정을 지원하는 형태로 정책 방향을 진행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