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있는 공군 11전투비행단 기지에서 이륙한 F-15K 편대는 포항과 울산을 거쳐 부산 거제도, 합천 해인사, 세종, 평택, 인천 월미도를 거쳐 강릉까지 가는 길의 여러 전적지 위를 날았다. 세종 상공에서 미 공군 F-16 전투기들까지 합류하자, 한미가 함께 북한 침략에 맞서 싸웠던 6.25 전쟁 당시가 떠오르는 듯했다.
공군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6.25 전쟁 당시 전적지들과 산업현장 상공을 초계비행하는 '한국군 단독 및 한미 연합 초계비행'을 통해 호국 선열들을 기리고 한미연합 공군의 영공방위 대비태세를 확인했다.
특히 이번 비행에는 미리 비행환경적응훈련을 통과한 국방부 출입기자 4명도 직접 F-15K 전투기 후방석에 동승했다. 비행 첫날인 20일에는 11전투비행단장 김태욱 준장도 동승해 편대비행을 지휘했다.
대구기지는 우리 군 역사에서 뜻깊은 의미를 지닌 장소로, 한국전쟁 당시였던 1950년 7월 3일 우리 공군이 미 공군의 F-51 머스탱 전투기 10대를 처음 들여와 역사적인 출격을 한 장소다. 이들 조종사 10명은 전쟁 발발 다음날인 6월 26일 주일미군기지에 파견돼 일주일 동안 급히 훈련을 받은 뒤 F-51을 타고 대구기지에 복귀했다.
이날 첫 출격에서 우리 공군은 영등포~수원 도로로 남하 중인 북한군 전차와 병력을 공격하는 일을 시작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안양 일대에서 저고도 대지공격을 펼치던 도중 이근석 대령이 전사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71명 학도병 가운데 47명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희생 덕분에 북한군의 포항 시내 진출을 지연시킬 수 있었고 이어 유엔군의 함포사격 등 지원을 받은 끝에 8월 18일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다.
현재 수용소는 일부 유적들만 남아 있지만, 이념으로 갈라진 전쟁이 부른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금 떠올랐다.
해인사는 전쟁 중 없어질 뻔한 적이 있다. 1951년 8월 군 지휘부가 '가야산에 숨은 인민군 900명을 소탕하기 위한 폭격을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폭격 지점이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기수를 돌렸다. 덕분에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오후 4시 2분쯤 편대는 평택에 들어섰다. 이 곳은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던 미군 파견부대가 북한군과 맞선 첫 교전인 '죽미령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이 곳에서 미군 편대는 연합 초계비행을 마무리하고 기지로 돌아갔고, 우리 편대는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월미도 상공에서 기수를 동쪽으로 틀어 16분쯤 뒤 강릉 상공에 도착했다.
이날 초계비행은 대체로 8천~1만 피트 안팎의 상공에서 300~400노트(555~740km/h)의 순항속도로 진행됐다. 다만 편대 4번기 조종사 김동욱 대위는 "우리 공군 F-15K 전투기가 이처럼 순탄한 초계비행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평상시에는 실전 상황에 대비해 전술 및 전투훈련비행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F-15K 파일럿은 표준 중력가속도의 6~9배(6G~9G)에 달하는 압박을 수시로 겪는다. 강릉에서 대구기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편대는 급선회기동 등 고난이도 비행을 시연했는데, 탑승한 기자들은 당연히 중력가속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머리에 공급되는 혈액이 일시적으로 끊겨 시야와 정신이 아득해진다. 비행복 위에 겹쳐 입은 G-슈트(내중력복)가 허벅지 등을 자동으로 강하게 압박해주어서 기절은 면할 수 있었다.
김태욱 단장은 "통상 2시간에서 3시간까지도 비행을 하는데, 오랜 준비 작업도 있고 비행하는 도중에도 계속 편대 간격을 유지하는 등 세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며 "전방석 조종사는 아마 비행을 마치고 고개가 뻐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군 파일럿들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편대원 가운데 일부 조종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유사시에 대비한 출격대기조로 편성됐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파일럿들은 (평시 훈련 등 일정 외에도) 수시로 7분 대기, 30분 대기, 1시간 대기조 등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기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군인이기 때문에 대북 상황과 관련해선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강한 힘을 바탕으로 언제든 흔들림 없이 당당한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