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 인사에 초유의 번복, 장관 모르쇠…경찰 인사 '대참사'

행안부 인사안 '번복' → 경찰청 전달…초유의 '번복 사태'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이 희한하게'
제청권 실질화 내세웠지만 책임 회피 논란
행안부 실수냐, 고의냐, 알력다툼이냐…여전한 미스터리

박종민 기자

행정안전부가 경찰 고위직 인사 제청권을 실질화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치안감 인사에서 초유의 번복이라는 역대급 참사가 발생하면서 시작부터 제대로 체면을 구긴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초등학교 줄반장 인사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책임 소재를 경찰에 돌리며 행안부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사 제청권을 강조한 신임 장관이 정작 그동안의 경찰 인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번복된 최종 인사안이 나오기까지 상세한 경위에 대한 각종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행안부 인사안 '번복' → 경찰청 전달…초유의 '번복 사태'

박종민 기자

2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치안감 인사 소식은 전날 오후 4시께 경찰청에 전파됐다. 이후 오후 6시 15분께 행안부 장관실 소속 치안정책관실로부터 인사안이 전달됐다. 경찰청은 확인 후 내부 절차를 거쳐 오후 7시 10분께 내부망에 인사안을 게시했다.

하지만 오후 8시 38분께 '최종안이 아니다'라며 행안부로부터 전파를 받았다. 이미 게시된 최초 인사안은 즉각 삭제 조치했다. 이후 수정된 인사안에 대한 내부 절차를 거쳐 오후 9시 34분께 내부망에 다시 게시했다.

이미 발표된 인사안이 번복되는 건 사상 유례 없는 초유의 일이기에 경찰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수정 인사안에는 대장자 7명의 보직이 변경됐다.

구체적으로는 △김준철 광주경찰청장(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경찰청 생활안전국장) △정용근 충북경찰청장(중앙경찰학교장→경찰청 교통국장) △최주원 경찰청 국수본 과학수사관리관(경찰청 국수본 사이버수사국장→경찰청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 △윤승영 충남경찰청 자치경찰부장(경찰청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경찰청 국수본 수사국장) △이명교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첫 명단에 없음→중앙경찰학교장) △김수영 경기남부경찰청 분당경찰서장(경찰청 생활안전국장→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 △김학관 경찰청 기획조정관(경찰청 교통국장→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왜 처음에 잘못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대통령실, 행안부, 경찰청 삼자 간에 크로스체크를 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미흡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수정안은 그간 경찰청과 행안부가 인사 협의를 하던 안으로 파악됐다.

행안부 장관 "경찰청이 희한하게"…책임 돌리는 '제청권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안 번복 사태에 행안부는 사실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행안부는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이번 사안은 중간 검토단계의 인사자료가 외부에 미리 공지되어 발생한 혼선"이라며 "인사권자의 결재 전에 경찰청 내부망과 기자실에 공지된 자료에 오류가 있음이 발견되어, 경찰청에서 이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행안부가 최종 결재안을 정정하거나 번복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려 드린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안부의 입장은 여전히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인사안 오류를 경찰청이 자체적으로 파악해 바로잡은 게 아닐 뿐더러, 행안부가 인사안을 다시 전달한 점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1차로 전달한 인사안은 무시한 채, 2차로 전달한 인사안 만이 '최종 결재안'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번복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역시 "경찰청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 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하더라. 그래서 이 사달이 났다"며 "대통령은 (21일 오후) 10시에 딱 한 번 결재하셨다"고 경찰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그간 경찰의 인사 관행을 이해한다면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연합뉴스

그간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행안부-대통령실이 서로 안을 조율하고, 경찰청 내부망을 통해 '인사 내정'으로 발표했으며 이후 경찰청-행안부-대통령실로 이어지는 공식 결재가 이뤄져 왔다. 이번 치안감 인사의 경우에도 이러한 과정을 따른 셈이다.

인사안을 전달한 행안부 치안정책관실은 파견 경찰이 있지만 장관실 소속 조직이다. 사실상 장관과도 조율된 안이 내정 발표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관이 이제 와서 "희한하게"라는 단어를 쓰며 책임을 돌리는 게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으로 파악된다.

대통령이 오후 10시에 최종 인사안을 결재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해당 인사안(수정 인사안)은 '내정 인사안'으로 오후 9시 34분께 발표된 상태였다. 결국 애초에 행안부에서 확정된 인사안을 건내고 최종 결재까지 이뤄졌다면 이러한 사달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게다가 이 장관은 경찰 고위직 인사 제청권자다. 총경 이상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 하도록 돼 있다. 그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찰 고위직 인사 검증을 관장하며 영향력을 미쳤지만 현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장관의 인사 제청권 행사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이 장관 역시 이러한 권한을 강조했고, 이 장관 지시로 운영된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에서도 해당 권한 실질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정작 치안감 인사에서 사고가 터지는 민망한 일이 발생한 셈이다. 권한을 내세운 행안부 장관이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수냐, 고의냐, 알력다툼이냐…"초등학교 줄반장 인사도 이렇게 안 해"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 황 위원장,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박종민 기자

이러한 상황에서 행안부의 이러한 행보가 '실수'가 아닌 경찰 힘 빼기 혹은 길들이기 차원의 '고의' 아니냐는 의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날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권고안이 발표되고, 이 장관이 조지아 출장에서 귀국하자마자 대규모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다. 인사는 전례 없이 저녁 시간대 이뤄졌고 다음날 오전 발령이기에 시도청장들은 이임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발령난 인사들 모두 짐을 싸다가 인사가 다시 나서 또 행선지를 바꾸게 되고 밤 늦게 이동하느라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대체 이렇게 농락하는 인사가 어디 있느냐. 초등학교 줄반장 인사도 이렇게 안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인사는 시도청장 인사에서 출신 지역을 배려하는 관행도 깼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전형적인 향피(鄕避) 인사라고 볼 수 있다"며 "경찰 힘 빼기 차원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행안부 내부 알력 다툼 등이 있었는지는 추가로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인사 수정을 통해 전 정부 인사들을 '찍어내기'식으로 밀어내고 현재 여당 인사들과 연이 있는 인사들에게 요직을 맡겼다는 뒷말도 나온다.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에 반발한 김창룡 경찰청장에 대한 '패싱'이자 사실상 보복성 인사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1차 인사안을 보고 받았던 김 청장은 이후 행안부에서 내려보낸 2차 인사안을 또 다시 보고 받았다. 그는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명단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그렇게 보고 받았다"라고 밝혔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패싱' 논란에 대해 "추천할 수 있는 범위와 내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의견이 개진됐다. 의견이 100% 같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행사했고,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사 후폭풍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경찰청은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김 청장 지시로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 대응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반박 논리를 구성할 예정이다. 이 장관과의 면담 여부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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