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민주적 통제' 원칙 바뀌나…행안부 통제안 파장 예고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 나왔다…경찰 "역사 역행, 범사회적 협의체 요구"
경찰 내부 '고심'…고조되는 일선 반발
자문안 실행 단계 논쟁 지속…시민사회 반발도 변수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황정근 변호사가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대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 황 위원장,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 박종민 기자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위원회(자문위)가 발표한 경찰 통제 권고안은 1991년 경찰법 제정 이후 갖춰진 현 경찰청 체계에 대한 일대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갖가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핵심 골격은 행안부의 경찰 통제력을 높이는 것으로, 경찰은 "역사를 역행한다"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권고안 발표 전까지 각종 논란이 불거졌지만 발표 이후 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권고안을 보는 행안부 자문위와 경찰 지휘부 및 일선, 시민사회계의 시각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얼마나 이룰 수 있느냐도 과제로 남아 있다.

권고안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도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치안' 사무가 명시되지 않은 행안부 장관의 권한 확대가 적절한 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민주적 통제라는 역사적 산물을 쉽게 허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행안부 자문위 권고안 나왔다…경찰 "역사 역행, 범사회적 협의체 요구"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 발표가 예정된 지난 21일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경찰청은 이날 자문위 권고안 발표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 주재로 시도경찰청장 화상회의를 개최한 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권고안에 담긴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경찰을 둘러싼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현행 경찰법의 정신에 비추어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향후 사회 각계 전문가를 비롯해 정책 수요자인 '국민', 정책 실행자인 '현장경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범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과 폭넓은 논의를 이어갈 것을 요구한다"며 "논의 대상 역시 행정통제 이외에 시민에 의한 통제와 분권의 강화 등 경찰제도 전반으로 확대해 보다 충실하고 완성도 높은 개혁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경찰 행정의 최고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 역시 이날 입장문을 내고 "권고안은 '경찰 제도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경찰행정․제도를 32년 전의 과거로 되돌리려 한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며 "경찰 제도개선의 핵심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근간한 시민참여와 민주적 통제에 있다"라고 밝혔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행안부 자문위는 이날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조직 신설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 제정 △경찰청장 등 고위직 인사제청 관련 후보추천위원회(제청자문위) 설치 △경찰에 대한 감찰권 및 경찰청장 등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징계요구권 부여 △대통령 소속 '(가칭)경찰제도발전위원회' 설치 등이 담긴 권고안을 내놨다.

자문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정근 변호사는 브리핑에서 "지난해부터 경찰청 소속 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과 불송치, 종결권이 부여된 것을 비롯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양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이제는 경찰 수사권의 법적인 성격과 그 범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며 "이에 따라 행안부와 그 소속 외 청인 경찰청과의 관계 등 각종 경찰 제도에 관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과 올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따라 확대된 경찰 권한을 통제해야 한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기본 인식으로 풀이된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 시절 진행됐던 검찰 개혁 등 권력 기관 구조 개혁의 반대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취임 후 1호 지시로 자문위를 설치했고 곧바로 경찰 통제 논의에 착수했다.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1차적 수사 종결권은 부여 받았지만, 국가수사본부 설치와 자치경찰제 도입으로 일부 권한 분산을 이뤘다고 보고 있다. '검수완박' 역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축소했으나 경찰 입장에서는 그간 이미 6대 범죄를 포함, 전체 범죄 99% 정도를 수사하고 있고 수사권 남용 방지를 위한 각종 통제 장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검수완박'에 따라 인력, 예산난만 겪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여전한 권한 비대화 우려가 있다면 추가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경찰 역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론에 있어 차이가 있다. 자문위의 경우 장관의 권한에 무게를 싣는 반면, 경찰은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당시 치안국(경찰청 전신)은 내무부(행안부 전신)의 보조기관에 속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등 정권의 부당 행위에 경찰력이 동원되고 정치적 중립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자 1987년 민주화 이후 1991년 경찰법이 제정됐다. 경찰청은 행안부의 외청(外廳)으로 독립관청화 됐으며, 대신 경찰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경찰의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경찰이 민주적 통제로 경찰법 제정 정신을 강조하는 근거다.

반면 자문위 측은 "경찰 업무를 관장하고 경찰 관련 법령의 제안 발의 및 부령 발령을 담당하는 국무위원은 행안부 장관"이라며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청장과 고위직 경찰공무원의 인사와 징계 등에 관한 주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고 반론하고 있다. 장관에게 국가경찰위원회의 위원 임명 제청, 안건 상정 및 제의 요구 등에 관한 권한도 부여되어 있다는 점도 근거로 삼고 있다.

경찰 내부 '고심'…고조되는 일선 반발

경찰은 공식적으로 자문위안을 비판하며 행안부를 상대로 범사회적 협의체를 요구한 상태다. 다만 내부에서는 강경 목소리와 함께 현실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라 총경 이상 경찰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찰 고위직 인사 검증을 관장하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현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장관의 인사 제청권 행사가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장관의 인사 제청권은 법상 이미 명문화 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오히려 그동안 암암리에 진행됐던 인사 관행을 공식 직제를 통해 양성화 시키는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행안부에 설치될 경찰 지원 조직의 성격이다. 국을 어떻게 신설할 것인지, 어떤 기능을 넣을 것인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휘부 내에서는 현 시국에서 경찰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앞으로의 '디테일' 싸움이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체 마련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다만 '청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라', '경찰오적(五賊)이 돼서는 안 된다' 등의 발언도 화상 회의에서 나오는 등 강경한 기류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반발이 고조되는 일선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지도 최대 과제다. 이날 경찰 내부망에는 '경찰권의 독립성 민주성 훼손하는 권고안 즉각 철회하라', '앞장서서 직을 던지세요. 따라가겠습니다', '이 정권은 초장부터 왜 경찰을 짓밟는 것인가' 등의 불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문위 발표 후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적 합의 없는 행안부의 독단적 경찰 통제는 민주 경찰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법률 취지에 어긋나는 하위법령 개정은 권력에 취약한 경찰 탄생과 직결된다"고 규탄하기도 했다.

자문안 실행 단계 논쟁 지속…시민사회 반발도 변수

자문안은 향후 실행 단계에 접어들면 더 큰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자문안의 핵심인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조직은 경찰 관련 법령의 발의·제안 및 부령 발령, 주요정책 수립에 관한 소속 청장 지휘권, 경찰청장 및 국가경찰위원 임명 제청 등을 보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의 경우 부령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관 사무의 '치안' 사무가 없고, 현재 '여소야대' 국면의 국회 상황을 감안해 정부조직법 개정을 우회하려 한다는 점은 여전히 논란 거리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가장 문제는 법률로서 정해야 하는 사안을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며 "정말 문제는 그런 논의 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 밀실에서 결정되고 시민사회나 학계도 잘 몰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변수다. 이날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권한의 축소와 분산이 경찰개혁의 본질인데 자문위는 이들 사안 중 일부를 장기 과제로 미뤘다"며 "이런 논의 없이 행안부가 경찰에 대한 인사권과 감찰권, 수사지휘 등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비대해진 경찰을 고스란히 행안부 장관이 직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장관에 치안 사무가 없는데, 뿌리가 없는 상황에서 통제 방안을 시행하는 것"이라며 "1960년도 6월에 경찰 중립화가 보호가 되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가 됐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헌법 정신이 시행령으로 무력화 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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