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Why]푸틴이 세뇌시키는 '네오 나치', 정체가 뭘까?

전쟁 책임 회피하고, 돈바스 주민들 세뇌시키는 러시아의 '네오 나치 타파' 주장
실제 고립된 돈바스 주민들에게 먹혀,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 내 극우 민족주의 키워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 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 표현하지 않고, 대신에 '특수군사작전'이라 부른다. 단어 선택엔 의도가 깔려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한 러시아 작전의 일환이다.

러시아가 초반부터 내세운 전쟁 명분은 바로 "우크라이나가 나치 세력에 점령당했다. 네오 나치 정권에서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 논리대로면 나치와 싸우는 것이니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이 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치 세력에 포위돼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반복하는 이유는 뭐고, 노림수는 뭘까?

① 돈바스 주민들 세뇌용

면밀히 사실 관계를 따지자면 러시아가 근거가 1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내부 혼란의 시기였던 2014년 돈바스 전쟁 과정에서 결성된 극우단체 '아조프 연대'가 대표적이다. 아조프 연대는 백인우월주의 색체가 강하고 네오 나치의 성향을 띤 민병대로 부대 마크도 나치 마크와 비슷했다. 현재는 정규군으로 흡수된 상태다.

돈바스 지역을 점령하려는 러시아 입장에서 아조프 연대의 존재는 '나치 정권 타파'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제 아조프 연대에 의해 자행된 친러시아 주민들의 탄압을 목격한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 주장은 먹히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돈바스 주민들을 적극 세뇌시키고 있다. 이 지역 인터넷망이 끊기고 러시아군을 해방군으로, 우크라이나 군을 나치로 묘사하는 라디오와 TV 방송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실제 주민들이 점차 심리전에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대부분에서는 네오 나치 주장에 콧방귀를 뀔지 몰라도 고립된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 이 주장은 시나브로 먹히는 것이다.

② 전쟁 책임 회피용

연합뉴스

전쟁을 나치 세력 타파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이라 주장하는 러시아는 전 세계를 상대로도 같은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속내는 전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도 "세계 경제 위기는 서방 때문이고, 우크라이나 침공은 돈바스 지역 주민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상황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전쟁 침략국은 국제법에 따라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추후 대비를 위해 전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라며 "친러시아 주민들의 '인권 보호' 차원으로 명분을 몰아가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네오나치 주장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없다. 전행적인 '침소봉대'다. 우크라이나 내부에 일부 극단 세력이 있고, 친러시아 주민들에 대한 탄압 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수많은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전쟁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정작 우크라이나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나치 세력에 피해를 입은 희생 국가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대인이다. 그의 할아버지도 나치에 맞서 싸운 유대인 군인 출신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극우 정당은 최근 총선에서 단 1석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하다. 오히려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나치 동조는 커녕 자유를 지향하며 유럽에 편입되고 싶어한다.

구멍이 송송 뚫린 러시아의 네오 나치 주장이 돈바스 주민 일부에게 통할지 몰라도 국제 사회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유다.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네오 나치 주장을 계속 이어갈 걸로 보인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해도 전쟁 명분으로 내세울 것은 유일한데다, 돈바스 지역 전세가 점차 러시아로 기울고 있어 상황도 나쁘지 않다.

여러모로 밀리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세계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폭등하는 물가와 세계 경제 침체로 서방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지쳐가고 있다. 관건은 여론이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참패했다. 다른 국가들도 줄줄이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언제 전세계 여론이 변할지, 차가운 시선으로 돌변해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릴지 모를 일이다. 러시아는 이걸 노리면서 버티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우크라이나 내 극우 민족주의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우폴과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극렬한 민족주의 세력도 함께 세를 키워가고 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어쩌면 푸틴에 머릿속에는 애초에 이 모든 계산도 포함됐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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