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천의 진풍경 '단체사교춤'…중국계 문화생활 vs 볼썽사납다

서울 영등포구·구로구 도림천변…중국동포들의 '사교춤' 현장
"문화생활로 봐달라" vs "시끄럽고 불편하다"
"이곳 말고는 딱히 갈 곳 없다"…내국인 위주의 경로당
다문화사회의 과제…"타문화에 대한 포용성 높여야", "불편 호소하면 양보·조율해야"

서울 영등포구 도림천 일대, 이곳에선 매일 수십명의 사람이 나와 춤을 춘다. 대림역 인근에 사는 중국동포들로, 이들이 즐기는 건 '사교춤'이다. 중국에선 중년층과 노인들이 야외에서 춤을 추는 일이 흔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겐 생소한 풍경이다. 내국인들은 당국과 경찰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단체 사교춤'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1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동포들은 문화 차이라며 이해를 바라고 있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소음 문제 등으로 이들의 해산을 바라고 있어 대립구도는 이어지고 있다.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와 시민들의 평온하게 생활할 권리, 통행권 등이 부딪히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타문화와 공존하기 위해 상호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림천에 걸린 하천 이용수칙 안내 현수막. '단체 댄스 등 사교모임 금지'란 글귀가 있다. 임민정 기자

2호선 대림역 8번 출구로 나와 하천으로 통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단체댄스 등 사교모임 금지'란 글귀가 적힌 '하천이용수칙안내'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그 옆엔 주황색의 띠를 둘러 공터를 막아놓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주민들의 불편 신고로 생겨난 것들이다. 그리고 물길을 따라 50m가량을 걷다보면, '사교춤'을 추는 한 무리가 보인다.

매일 오후 2시쯤 도림천 인근에서 수십 명이 '사교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루 2시간 남짓 춤추는 이들은 60~80대 연령의 중국동포들로 개중엔 이미 국적을 취득한 시민들도 있다. 지난 14일 3시쯤 이곳을 찾으니 교각 밑 공간에 모인 이들이 이미 춤에 한창이었다. 남녀 짝을 지어 총 14명이 한국, 중국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30명 정도가 둘러앉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모 (71)씨는 "야외에서 '사교춤'을 추는 건 문화다"며 "춤이라기보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취미생활이자 놀이문화 중 하나로 춤을 즐긴다고 했다.

생소한 광경에 자전거를 타던 한 시민은 "뭐 하는 거냐. 나도 배워볼 수 있냐"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도림천 교각 밑에서 '사교춤' 추는 모습. 임민정 기자

하지만 이런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시끄럽다', '불편하다' 등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김모(70)씨는 "술먹은 사람들이 다가와 '여기가 춤추는 데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며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눈꼴 사나운 모습일 수 있겠지만 한국에 와서 힘든 일 하면서 살았는데 고령인 우리는 활동할 공간조차 없어 서럽다"고 했다. 한모(69)씨는 "중국 사람들 문화인데 한국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영등포구청 신문고엔 '도림천 내 사교춤' 단속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산책하는 주민들의 통행을 방해한다는 신고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주를 이룬다. 실제 스피커 바로 옆에서 측정해본 결과, 음악 소리는 60dB~70dB 사이로 나타났다. 환경기준상 주거 및 준주거지역의 소음기준을 약간 초과하는 수준이다.


지난달 15일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70대 이모씨가 현행범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이씨가 이를 따르지 않아 경범죄 처벌법 및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체포된 것이다. 사건은 지난 27일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14일 도림천 인근에서 만난 중국동포들은 "어제도 행인이 신고해 경찰이 왔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74)씨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는 방해 안 하고 중간 공터에서만 춤추는데 경찰 신고는 말도 안된다"며 "공간 마련 등 구청에서 해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영등포구청 측은 현재까지 따로 춤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도림천 일대 '사교춤'을 막기 위해 공터에 주황색 띠를 둘러놓은 모습. 임민정 기자

하지만 이들을 강제해산 할 근거는 미약하다. 사회적거리두기 기간에는 감염 우려를 이유로 강제해산 조치가 가능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경찰과 구청이 할 수 있는 건 이들에게 시민들의 불편을 전달하고 자진 해산을 '계도'하는 데에 그친다.

도림천뿐만 아니라 대림역 일대 공원엔 오후만 되면 수십 명의 중국동포들이 나와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춤추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7일 오후 2시쯤 영등포구 '다사랑어린이공원'에도 서른 명 이상의 중국동포들이 나와 '사교춤'을 추고 있었다.

야외에서 춤을 추는 이들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도림천이나 야외 공원 말고는 딱히 모일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교춤을 추는 이들은 대부분 노령층이다. 대림동 일대에 노인들이 모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로당이 여럿 있지만 접근이 어렵다. 이들은 "경로당은 한국인들을 위한 곳이라 우린 조건이 안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모(72)씨는 "얼마 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동포 3명이 한국 경로당에 갔다가 깔봐서 하루 만에 도로 나온 일도 있었다"며 "한국에 수십 년을 살았지만,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이 모이는 구립 경로당이 있지만, 한국국적을 취득해야 등록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이마저도 현재는 인원초과로 신규 회원을 더 받지는 않는 상황이다.

중국동포들이 모인 경로당에서도 매일 '사교춤'이 이어진다. 해당 경로당 관계자는 "매일 낮 12시 반부터 1시간 동안은 80대 노인들이, 1시 반부터 2시 반까지는 6~70대 노인들이 지하 1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춤을 춘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대림동 일대에는 중국의 '국민레저'로 불리는 광장무를 추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5일 오전 7시 구로구 구로리어린이 공원에서 제기차기하던 중국동포 장모(53)씨는 "일하러 가기 전, 매일 새벽 5시반이면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며 "퇴근하고 오후 8시에도 광장무를 춘다"고 전했다. 60대 한모씨는 "한국인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간다"고 했다.

이처럼 대림역 인근 등 중국동포 늘어나는 가운데 문화차이로 인한 인접 지역 내국인과의 갈등이 종종 벌어지는 모양새다. 대림동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엔 2만 3천여 명의 한국계 중국인이 사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들과 공존하기 위해선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구기연 연구교수는 "한국 사회가 타자성을 보듬기엔 갇혀 있는 사회다. 중국동포를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배타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며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이 낮기에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사교춤이) 중국에서 보편화된 문화지만 그분들도 여기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맞출 필요가 있다"며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만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역에서 양보가 없으면 갈등밖에 생기지 않고 그렇다면 앞으로 살아갈 두 양 집단에 손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김윤태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이란 도시가 한국 사람만 사는 도시가 아닌 글로벌 도시로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게 의미 있다. 다만 공중장소에서 쉬고 싶거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발씩 양보해 조율하는 등 타협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외국 문화를 지나치게 배제하거나 중국 동포에 대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