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8년 안에' 10기 수출…尹정부 '원전 강국' 실현 가능성은 ②방폐장 못 만들면 '자동 탈원전'…윤 정부 해법은? ③산업계 부담 줄이나…NDC '부문별 손질' 예고한 尹정부 ④'갈팡질팡' 윤 정부 '전력시장 개편' 방향은? (계속) |
지난달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전력시장 개편'의 화두를 띄웠다. 구체적인 정책은 아직이지만, '시장원칙에 따라 전력시장을 개편하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발표 이후 요지부동이던 한국전력 주가가 오르는가 하면 반대편에선 '한전 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전력시장은 발전부터 입찰, 송·배전, 판매 등 여러 단계로 구성된 만큼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현재까지 제시한 내용들은 각론보다는 총론에 가까워 빈틈이 많은데, 총론이 제시해야 할 큰 방향성마저 흐릿하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는 지경이다.
전기요금 결정, 시장에 100% 맡길 수 있나
전력시장 개편 논의 중 가장 핵심은 아무래도 전기요금이다. 특히 한국전력의 적자가 올해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앞으로는 전기요금을 정부가 아닌 시장이 스스로 조정하도록 권한을 넘길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현재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이나 물가안정에관한법률 등 관련법을 토대로 사실상 전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있다. 한전이 전력구매에 드는 각종 비용을 계산해 분기마다 적정 전기요금을 제시하면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결정한다.
전기요금에 대한 현 정부의 입장은 다소 모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당선될 경우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전기요금이 연료가격 등 원가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결정되도록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 결정에서 정부의 개입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앞선 '동결 공약'과 정반대되는 철학이다.
어느 말이 맞는 지를 살펴볼 시험지는 이미 펼쳐졌다. 정부는 당장 3분기 전기요금에 연료비 인상분을 반영해 인상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현행 연료비 연동제에서는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3원, 연간 ±5원 한도 내에서만 요금 조정이 가능하지만, 한전은 이 조정폭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손해를 보고 전기를 판매하고 있는 한전이 원가라도 보전하려면 최소 kWh당 30원 이상 전기요금을 올려 받아야 한다. 이처럼 전기요금을 시장에 맡긴다면 4인 가구당 월 1만원은 더 요금이 늘어나게 된다. 정부가 시장원칙을 도입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공공요금이 민심과 닿아있는 국내 분위기상 급격한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적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한전의 전력구매비가 너무 커지는 것을 막겠다며 전력시장가격(SMP) 상한제 도입을 발표했다. 한전의 적자 규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취지지만, 발전사들은 시장원칙에 반하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는 "국정과제에서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전력시장 조성을 공약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원칙적으로 공공요금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이같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엇박자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판매시장 개방, 기존 PPA 한계 극복할까
한편 정부는 한전이 '독점'한 전력판매시장에 다른 판매자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전력판매시장 개방은 2016년 시도된 적 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간 바 있다.
전력판매시장 개방 역시 전기요금의 합리화와 연결된다. 현재는 자신의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생산한 전력을 팔고 싶어도 한전을 통해서만 팔 수 있다. 이에 옆집에 바로 전기를 팔지 못하고 멀리 있는 송·배전망을 거치며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다.
재생에너지 시장에 한해 발전사업자와 전력구매자가 자체적인 합의 내용을 기초로 거래를 하는 전력구매계약(PPA)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아직 원활히 이용되진 못하는 상황이다. 여전히 가격에는 망이용료 등 한전의 인프라 사용 대가가 포함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한전 중심의 거래보다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정부의 계획은 PPA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저탄소 에너지원으로의 전환, 에너지 정의 문제 차원에서 검토돼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된 대규모 발전소 중심의 전력거래에서 생산과 소비 지역이 가까운 방식의 전력거래 형태로 전환하기 위해선 전력판매 시스템의 개편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 민영화' 아니라지만…'전기, 어떤 재화냐' 합의 필요
이러한 과정에서 관건은 결국 정부의 설득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다. 전력판매시장 개방이 언급되자마자 여론은 한전 민영화 찬반으로 나뉘었다. 정부는 한전의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는 민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팩트체크'를 했지만,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는 지점의 연장선에서 따져보자면 민영화가 주는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요금 결정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은 그간 공공재로 여겨온 전기를 사적재화로 다시 보겠다는 선언과 같다. 전기를 시장의 재화로 내놓는 순간 개인의 구매 여력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전자기기의 수와 에어컨 가동 일수 등 삶의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거래구조나 가격 등은 시장에 맡기고 에너지 분배 문제는 또 다른 복지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어진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많은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선별복지엔 언제나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인 것처럼 한전이 많은 전력판매자 중 하나가 되었을 때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6년, 텍사스주는 1999년 전력산업을 전면 민영화했다. 초기 요금인하 '반짝 효과'가 있었다지만, 이들 지역은 결국 2001년과 2021년 각각 '대정전 사태'를 빚었다. 송전사업에 치중하고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발전 부문은 등한시하거나, 비용을 이유로 혹한 등 기후변화 대비에 소홀한 등 민영회사들이 '돈 되지 않는 것'은 철저히 무시해서다.
전력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이 판매시장을 '독점'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공공재 관리자의 역할을 했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산간오지까지 송·배전망을 까는 일에 과연 어떤 민간업자가 나서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