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윤중식이 1951년 1.4후퇴 당시 피난길에 경험했던 6.25 전쟁의 참상을 그린 28점의 전쟁 드로잉 시리즈가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든다.
1913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윤중식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아내·1남 2녀)과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싶었던 그는 낡은 종이 몇 장과 수채 물감을 구해 피난길의 순간을 스케치했다.
윤중식은 피난길에 인민군에게 붙잡혀 아들과 헤어졌다. 홀로 남은 아들은 헤어진 엄마인 줄 알고 어떤 부녀를 따라갔고 그 모습을 발견한 윤중식은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둘려 세웠다.
젖먹이 둘째 딸은 젖을 나눠 준 어느 아낙에게 귀중품을 주고 맡겼다. 그런데 인민군에게 끌려 북으로 가는 길목에서 낯익은 아기의 울음소리와 붉은 포대기가 보였다. 윤중식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젖을 얻어먹지 못한 둘째 딸은 결국 피난길에서 사망했다. 굶주림 끝에 부산에 도착한 뒤 허겁지겁 죽을 먹는 아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애달프다.
윤중식은 "자연에서 가장 강렬한 색은 일출과 석양의 빛과 그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석양빛으로 물든 전원 풍경 그림은 노란색, 주황색을 주로 써서 수평구도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서정적이면서 향수를 자극한다.
윤중식은 부산, 대구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가 휴전 직후 서울로 올라왔고, 1963년부터 성북구 성북동 '소나무가 있는 집'에 정착했다. 전시장에 재현한 윤중식의 아뜰리에 한 켠에 놓인 노란색 팔레트에는 '사랑하는 빠렛트, 2011년 8월 2일 현재 98세 사용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2012년 작고하기 전날까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린 윤중식답다.
"나의 시간, 나만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하려 노력했다. 내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윤중식 묘비 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