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일정과 목표를 확정했다. 이미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에서 중대재해법의 처벌 범위와 수위가 어디까지 낮아질 지 주목된다.
7월부터 중대재해법 시행령 투 트랙 개정 돌입…'면죄부'용 개정될까 우려도
정부는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오는 7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등 재해 예방 실효성 제고 및 현장 애로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중대재해법 개정을 거론한 부분은 경제정책방향 문서 중에서도 '기업투자 확대·일자리 창출'이라는 제목 아래,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 신속히 해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즉 중대재해 예방 강화보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 더 무게를 두고 중대재해법 개정 작업에 나선다는 의중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경영책임자에게 지운 의무를 명확히 하도록 다음 달부터 시행령 개정 작업에 돌입하고, 산업현장에서 제기된 애로사항을 개선하도록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크게 '투 트랙' 개정 작업을 제시했다. 우선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규정이나,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발동되는 작업중지권 등에 대한 현장애로 및 법리적 문제점의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전문가 TF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수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원·하청 업체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 및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시행령 등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구체적으로 표기해야 기업들이 중대재해를 제대로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는 "업종과 기업마다 지배구조와 재해 예방 대비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단일한 기준을 제시하면 오히려 중대재해 사각지대를 방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산업현장의 반발이 계속되자 결국 혼란을 막기 위해 이미 공개된 중대재해법 가이드북과 해설서, 안내서 등을 중심으로 시행령 내용을 더 명확하게 다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 나아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마련해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제도를 망라한 로드맵 안에서 중대재해법의 역할을 다듬겠다는 구상도 함께 내놓았다.
이러한 정부의 투 트랙 전략을 넘어, 지난 10일 국민의힘에서는 박대출, 권성동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 발의 취지를 살펴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했음에도 재해가 발생한 경우…억울한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대신 법무부 장관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의 기술·작업환경에 관한 표준을 고시하도록 칼자루를 쥐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시된 기준대로 사업·사업장 등을 운용하면 인증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중대재해법에 규정된 책임을 위반한 채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형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주는 '법무부 장관발(發) 인증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업의 의무가 불명확하다면 아예 정부가 예방 수준이 충분한지 여부를 확인해 인증해주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러한 정부의 중대재해법 손보기 작업이 사실상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밑작업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개정 작업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 유연화도 본격 추진…'근로시간 저축계좌제'로 노동시간 총량 관리
한편 '노동시장 개혁' 분야에서는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에 대한 손질이 예고된 점이 눈에 띈다.
정부는 주 52시간제 기본 틀 속에서 운영방법과 이행수단을 개선하겠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노사합의를 기반으로 노동시간을 운용할 때 선택권을 확대하되, 노동자의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건강보호조치를 병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이미 거론됐던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등 유연근로제 활성화 추진 방안도 담겼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시절 공약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기존 1~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새롭게 역점을 두고 도입하려는 사업으로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관리하고, 그 단위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업무량이 많을 때 초과근무를 하는 대신 그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한 후, 업무량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하는 제도다.
아울러 노동시간의 총량 규제가 현행 1~3개월 단위로 이뤄졌는데, 이를 연간 단위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실태조사와 현장분석 및 전문가·노사 의견수렴 등을 거쳐 올 하반기 안에 '노동시간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시간 제도의 유연화 역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동시간의 총량을 규제하는 단위를 늘릴수록, 쉬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간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이 크게 상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이미 주 52시간제를 도입할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 합의와 국회의 여야 합의로 유연근무제 관련 법을 개정했던 터라 재차 법 개정에 나서는 작업이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한편 정부는 제도개편 전까지는 규모별·업종별 컨설팅・설명회 등을 추진해 산업현장에서 노동시간을 운영할 때 필요한 제도·정책적 지원을 벌이는 한편, 휴일‧휴가도 적극 사용하도록 활성화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