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베테랑 기자에서 아이비리그 대학교수로 변신한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1990년~2000년대 북핵문제 초기 한반도와 일본 등 동아시아 외교현장을 취재한 하워드 프렌치(Howard W. French) 교수가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15일(현지시간) 기고한 글이다.
'북한의 고립을 끝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남은 해법'이라는 제목의 글로 북핵문제가 조난당한 책임이 누구에 있고 이를 풀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그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기간 1인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북한문제에 대한 프렌치 교수의 현실적 진단과 처방은 북핵 수렁에 빠진 워싱턴 조야에 묵직한 화두를 던질만 하다.
우선 프렌치 교수는 북핵 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었지만 미국 정부의 의중이 반영돼 실패로 끝난 두 차례의 사례를 제시했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김정일간 북일정상회담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이다.
그는 전자에 대해 "(북일) 양국간 지속적인 화해의 전망을 제공했다"면서 "워싱턴은 이 외교에 상당히 적대적으로 대했고, 양국간 외교는 곧 수포로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해 말 북미 사이에 주고받은 위협적인 언어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은 자신을 한반도 전쟁 발발에 대비해 서울에 대기시켰다고도 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이후 이산가족 상봉으로도 이어졌지만 결국 포기됐다면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강경 대응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당시 부시 행정부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강경한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거드름과 허풍이 북한의 핵무장 정책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트럼프와 김정은간 북미정상회담도 한반도 군비통제에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지만 트럼프가 김정은의 영변 원자로 동결 제안을 거절하면서 마찬가지로 흐지부지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내가 정말로 모든 것을 봤는지, 즉 북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것이 진실로 시도됐는지 질문하게 한다"고 회의감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북한을 취재할 무렵에는 검증되지 않은 두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50~60개로 보유량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소형화에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욱이 북한의 전술핵무기의 경우 일선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워싱턴의 어느 누구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북한에 대한 무력위협도, 동맹과의 협력도, 북한에 대한 당근(유인책)도, 중국의 도움 요청도, 엄격한 경제 제재도 해법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이제는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라며 "북한의 핵무장을 추진하게 한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 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이 것이야말로 미국 외교의 명시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며 "핵무기 감축과 궁극적 폐기도 당분간은 목표로 세워질 수 있지만, 지금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단호히 적대감과 긴장을 줄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북한과의 단계적 재관여로 그 것을 통해 북한의 경제적 고립을 끝내고 외부와의 인적 접촉을 통해 점진적으로 보다 번영하는 북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제안이 유화적이거나 북한에 군사력 강화 수단을 줄 뿐이라는 예상 가능한 반발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제재와 고립에 기초한 노력은 북한이 이미 파괴적인 핵전쟁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중국 의존 가능성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은 빈틈없이 보이는 게임 이론의 실천자로서, 항상 옆집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며 회의적으로 봤다.
그는 북한이 이 같은 데탕트의 틈을 이용해 군사화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한다면 그 실험을 중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북 협상파가 제안중인 '스냅백'을 전제로 한 대북제재 완화 방안을 연상시키는 주장이다.
프렌치 교수는 설사 북한이 새로운 외교를 깨뜨린다해도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상 위험이 새로 조성될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끝으로 자신의 쿠바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개방정책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그는 쿠바가 미국과의 대립관계를 이용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경제 실패도 합리화했다며 북한도 장벽을 낮추면 자립자강 이념이 약화될 것이며 더 많은 중산층 탄생과 전체주의적인 통제에 덜 민감해진 인구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과정이 북한의 민주국가로 변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다만 이를 통해 적대감을 줄이고 지난 20년 동안 추구해온 대북 정책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해야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것이 손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렌치 교수는 "중산층이 탄생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 커질 것"이라며 "그것(개방)이 진실되고 인내심 있게 구사된다면, 국가가 국민들의 운명을 개선하지 못한 것이 외부의 적대세력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