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체육 초유의 압류 사태 등 힘겨운 시절을 겪었던 대한테니스협회가 점차 정상화하고 있다. 60억 원이 넘는 부채 문제를 일단 해결한 데 이어 한국 스포츠 종목 중 유일하게 3가지 대형 공모 사업에 동시 선정되며 중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협회는 15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2022년 승강제 리그'와 '유·청소년 클럽 리그(i-League)', '유·청소년 주말 리그' 관련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시행하는 이들 3가지 사업에 동시 선정된 것은 대한체육회 78개 회원 종목 단체 중 테니스가 유일하다.
올해 승강제 리그 21억, 유·청소년 클럽 리그 17억, 유·청소년 주말 리그 4억 원 등 협회는 총 42억 원의 지원을 받는다. 축구, 야구, 당구, 탁구 등도 승강제가 있지만 i-리그와 유·청소년 주말 리그까지 동시에 진행되는 종목은 테니스 외에는 없다. 다른 종목 관계자는 "사실 i-리그를 운영하는 것도 비인기 종목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한국 테니스는 사실 전임 집행부들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경기도 구리시 육군사관학교 테니스 코트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한 소송에서 전임 제27대 집행부가 패소하면서 원금 30억 원에 이자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채가 60억 원이 넘기도 했다. 이에 제28대 협회는 법원에서 압류 조치까지 당하며 법인 통장과 카드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난해 1월 당선된 협회 제28대 정희균 회장과 26대 주원홍 회장이 부채 문제 해결에 합의하면서 협회 정상화의 실마리가 잡혔다. 위기감을 느낀 테니스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협회와 채권자인 미디어윌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고, 지난 4월 정 회장과 주 회장이 합의문 조인식을 열면서 일단 협회에 대한 압류가 해제됐다.
이런 가운데 협회는 3가지 큰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정 회장은 "협회와 관련해 기존 문제들을 정리하고 있다"면서 "새 사업이 실행되는 만큼 승강제는 물론 향후 큰 과제인 프로화도 3년 혹은 5년 내에 추진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승강제는 축구처럼 수준에 맞게 리그를 치른 뒤 성적에 따라 상하위 리그 승강이 이뤄진다. 저변 확대는 물론 승강제를 통해 종목에 건전한 경쟁과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회장은 "일단 전국 대회 우승 경력이 없는 동호인들이 팀을 이뤄 참가하는 T4 리그부터 시작한다"면서 "이들 중 상위 팀들과 실력 있는 동호인들이 내년 T3 리그를 구성하고, 초보자들이 나서는 T5까지 저변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급증하는 테니스 인기에 따른 동호인들의 대회 출전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승강제는 전국 대회 우승자들의 출전을 제한하면서 기존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KATA),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 주관 전국 대회에 자리를 잡은 상위권 동호인이 아닌 중위권 생활 체육인들에게 기회가 될 전망이다.
정 회장은 "사실 기존 KATA, KATO 주최 전국 대회는 상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승강제의 메리트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제 테니스를 시작하거나 얼마 되지 않은 동호인들에게 높지 않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강제 리그는 오는 7월부터 시작되는 T4리그에 각 시군구 지역에서 동호인 920개 팀, 7400명 이상이 참여해 진행될 예정이다.
'유·청소년 클럽리그(i-League)'는 선수가 아닌 6세부터 18세까지가 대상이다. 강습과 리그를 병행하는 프로그램으로 특히 연령별 수준에 맞는 매직 테니스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저변 확대를 꾀하려는 목적이다.
올해 체육회의 신규 사업인 '유·청소년 주말 리그'는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12세 이상 16세 이하 전문체육 선수를 대상으로 전국 6개 권역에서 개최된다. 정 회장은 "기존 대회가 에이스급 선수들의 장이라면 주말 리그는 입상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주말 리그 지역 우승자와 왕중왕전 우승자는 기존 대회 16강 및 8강 시드 포인트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2018년 호주오픈)을 이룬 정현과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내는 권순우(당진시청) 등 호재에도 이를 종목 발전으로 잇지 못했던 한국 테니스. 갈등과 위기를 일단 넘은 만큼 재도약의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