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치안 사무를 추가하려면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경찰국 부활은 시행규칙 개정으로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가능하다. '여소야대' 국면을 감안한 '꼼수'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같이 국회를 피하는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시행령 정치'에 대해 야권에서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제동을 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 박근혜 정부 사례처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행안부, 경찰국 부활 검토…절차적 정당성 있나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행안부는 최근 비직제 조직인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으로 격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치안정책관실은 내무부(현 행안부) 소속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1991년 경찰법 제정에 따라 경찰청으로 독립되면서, 행안부에 비직제로 남은 조직이다. 장관실 소속 조직으로, 그간 경찰 파견도 받아왔다.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최근 4차례 회의에서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으로 격상하고, 경찰 정책 및 인사 등 주요 사안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치안정책관실 격상은 사실상 행안부 '경찰국' 부활로 받아 들여진다. 경찰국은 법무부의 '검찰국'과 유사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국은 검찰 인사 및 조직 등을 관장한다.
하지만 경찰국 부활의 절차적 정당성 등을 놓고 갖가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 관장이 명시돼 있지만, 행안부 장관의 직무 권한에 '경찰'이나 '치안'과 관련한 것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과거 내무부 시절 내무부 장관의 치안 관련 권한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1987년 민주화, 1991년 경찰법 제정에 따라 삭제됐다. 경찰청은 행안부의 외청으로 독립적인 관청 성격을 지니게 됐으며, 대신 경찰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경찰 통제, 행정을 심의·의결하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결국 장관의 치안 사무가 없는 상황에서 행안부 내 경찰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발상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법적 근거도 빈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셈이다. 이를 감안한 듯 자문위는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도 함께 권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 차원의 자문기구를 만들어 빈약한 법적 근거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행안부 장관 사무 중 치안을 추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률인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통과를 거쳐야 한다.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 국면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치안정책관실 격상을 위해선 시행규칙만 개정해도 가능하다. 시행규칙은 부령으로 장관이 안을 마련해 입법예고 후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이를 감안할 때 현 국회 상황을 감안한 '꼼수'라는 지적도 불가피해 보인다.
경찰국 부활은 최근 법무부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한동훈 장관 취임 후 법무부는 지난 달 24일 장관 직속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을 발표했으며, 24~25일 이틀 간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 등 입법예고를 거쳐 31일 국무회의에서 논의 후 공포했다. 정책 발표와 법률 검토, 실제 가동까지 단 일주일이 걸린 셈이다. 입법예고 기간은 통상 40일 정도지만 현행법상 사안이 긴급하거나 기타 사유가 있을 경우 법제처장과 협의를 통해 줄일 수 있다. 현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의 40년 친구이자 법률대리인이었던 이완규 처장이다.
경찰국이 부활되면 이상민 장관의 경찰 인사 주도권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 장관은 치안정감 내정자들을 면담한 데 이어,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 면접도 예고한 상태다. 행안부 장관은 경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제청권이 있지만 인사 면접은 이례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권 '줄 세우기', '경찰 길들이기' 논란도 제기되는 상태다.
尹정부 '시행령 정치', 野 제동 움직임…어게인 2015년?
한편 윤석열 정부의 국회를 피하는 이른바 '시행령 정치'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제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시행령인 대통령령과 규칙인 총리령 등이 법률에 합치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소관 행정기관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행정입법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민주당에서는 일단 윤석열 정부의 행안부를 통한 '경찰 길들이기'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21대 국회 전반기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행안부는 경찰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장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니 군부독재적(검찰독재적) 발상이며, 반민주주의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변수다. 윤 대통령은 13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시행령 내용이 법률 취지에 반한다고 하면 국회에서는 법률을 더 구체화하거나 개정하면 된다"며 "그런 방식은 몰라도 시행령을 대통령이 정하는 건 헌법에 정해진 방식"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안은 7년 전인 2015년 5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과 내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야당이 반대하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시행령에 대한 국회 수정 권한을 강화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부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 공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