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공식활동 기지개…'조용한 내조'에서 '尹보완재'로

봉하마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단독으로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그간 유지했던 '조용한 내조' 기조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기로 기류가 변한 모양새다.

김 여사는 12일 오후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너(윤 대통령)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어라'라고 말해 주셨을 것 같다"면서 "국민통합을 강조하신 노 전 대통령을 모두가 좋아한다"고 말했고, 권 여사는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며 "영부인으로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하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실 강인선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두 분은 대통령의 배우자로서의 삶과 애환, 내조 방법 등에 대해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며 "권 여사의 많은 당부와 조언을 들은 김 여사는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듣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여사는 또 공식 언론 인터뷰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동안 언론에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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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가 서울신문과 진행한 인터뷰가 이날 보도됐다. 인터뷰 시점은 지난 7일이었다.

김 여사는 인터뷰에서 유기동물 보호 등 동물보호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서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이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로 얘기가 오갔지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비공개로 일정을 조율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만남이 불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김건희 여사와 김정숙 여사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고, 대통령실은 "아는 바 없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그간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단 한 번도 직접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것 역시 취임식과 현충일 추념식 딱 두 번이었는데, 이 역시도 통상적으로 영부인이 함께 하는 행사였다.

공식 석상에서 보인 김 여사의 행보도 조심스럽고 절제된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과 몇 발자국 뒤에서 걸으며 말을 적게하고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갔다.

'조용한 내조'에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기류가 변한 것에 대해서는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물보호나 문화·예술 분야는 김 여사가 오래 활동해 온 영역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유기견이었던 나래(가운데) 등과 함께 2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밭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건희사랑' SNS 캡처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여사가 '동물보호' 이슈를 강조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 부인으로서 여러 방식의 활동이 있겠지만, 대통령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살피겠다는 맥락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사실 그간 김 여사와 대통령실의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역대 영부인과 비교해 화제성이 매우 커서 소소한 행동까지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지만, 주가조작 관여 혐의와 허위경력 논란 등은 끊임없이 지적되는 김 여사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김 여사는 지난해 대선 기간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가 아무리 '조용한 행보'를 한다고 해도 영부인의 역할을 마냥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대놓고 왕성한 활동을 한다기보다 이전 영부인들이 했던 것처럼 그 역할은 잘 수행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정숙 여사는 201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홀로 봉하마을을 방문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적이 있다.

앞으로 김 여사는 문화·예술·환경·동물보호 등 자신이 전문성을 쌓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도 동물권 전반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구상을 묻는 질문에 "말로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논의해 정책을 만드는 등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며 "동물학대와 유기견 방치 문제,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김 여사의 활동에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가조작 혐의로 입건된 사안은 아직 검찰에 계류돼 있다. 일각에서는 가담 정도가 약해 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견제가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와 대통령실의 호흡도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않다. 윤 대통령의 공약대로 원래 여사의 일정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은 현재 폐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여사의 활동이 대통령실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예상 밖의 일에 대처가 미숙할 수 있다.

일례로, 김 여사와 권 여사가 이날 만나기 전날까지도 대통령실은 두 사람의 만남을 언론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여러 차례 보도가 되고 나서야 김 여사의 일정을 공지했다가, 그날 밤 늦게 다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앞서 김 여사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온라인 팬클럽을 통해 유출되는 사고 등이 이어지자 대통령실은 최근 김 여사의 업무를 도와줄 직원을 두세 명 정도 배치해둔 상태다. 김 여사 전담은 아니지만, 김 여사의 일정이 있을 때마다 손을 거든다고 한다. 또 현재 대통령실 5층에 마련된 임시 대통령 집무실을 이달 말부터 필요시 사용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의 집무실은 2층으로 옮겨진다.

김 여사의 활동범위가 넓어지면서 전담 지원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차라리 공적인 조직을 통해 하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2부속실' 부활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김 여사의 측근은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김 여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며 "본인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여사의 광폭 행보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적지않다.

여권 관계자는 "오늘 행보를 보면 거의 정치인 수준"이라며 "한 달 만에 저렇게 바뀌는 모습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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