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패션 잡지 모델로 데뷔한 배두나는 드라마 '학교' 시즌1(1999)에서 신비로운 매력과 개성 넘치는 연기력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이후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고양이를 부탁해'(2001) '복수는 나의 것'(2002) 등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며 차곡차곡 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배두나의 연기에 매료된 워쇼스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세계적인 거장이 연달아 러브콜을 보내며 해외 영화계에 진출했고, '공기인형'(2010) '클라우드 아틀라스'(2013)는 물론 미국 SF 드라마 '센스 8'(2015) 등에서 열연을 펼치며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12년 만에 재회한 영화 '브로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송강호의 말마따나 배두나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오며 이젠 노련한 베테랑이 됐다. 지난 8일 화상으로 만난 배두나는 '브로커'에서 함께한 배우 이지은, 이주영, 송강호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더 나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목표도 들려줬다. 배우 배두나는 아직 경험해보고 싶은 세계가 많다.
배두나가 함께한 배우들…이지은, 이주영 그리고 송강호
▷ 이지은이 출연 제안을 받고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고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고요의 바다' 촬영장이었는데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사실 소영 역이 지은씨한테 제안이 들어갔는지도 몰랐다. 그저 누가 할까 궁금해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지은씨가 소영 역이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이런 작품이 들어왔다고만 했다. 난 소영 역이라 확신하고 '무조건 해야죠!'라고 했다. 그랬더니 지은씨가 '네! 무조건 하겠습니다!'라고 했다.(웃음) 감독님은 캐스팅하고 난 후 배우에게서 더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내는 분이니 믿고 맡기면 될 거라고 했다.
▷ 현장에서 동료 배우로서 만난 이지은은 어떤 배우였는지 이야기해 달라.
배우로서 지은씨를 너무 좋아한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다고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를 보면 너무 멋있다. 진짜 좋은 배우이고, 너무 잘한다. 그래서 감탄도 많이 했다. 같이 촬영할 때는 특히 서로 호흡과 감정을 주고받으니 피부로 더 느끼게 되는데, 더 반했다. 내가 안 나오는 부분에서도 궁금해서 딱 한 장면 먼저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울었다. 내가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막 운 경우는 사실 몇 명 없는데, 너무 좋았고 또 감동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배우다. 진짜 팬이다.
관람차 신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살짝 봤는데, 내가 눈물을 흘렸다.
▷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송강호와는 벌써 네 번째 만남이기도 하다.
주영이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는데, 주영이와 호흡은 너무너무 좋았다. 둘이 자그마한 차에서 계속 잠복하면서 같이 나오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공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차 바깥에서부터 케미를 만들어서 갖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케미를 만들자고 해서 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숙소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친구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날 많이 먹이기도 했다.(웃음) 같이 자전거 들고 내려가서 자전거도 타고, 완전 콤비처럼 지냈다. 그렇기에 자동차 안에 갇혀 찍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나온 거 같다.
사실 다른 배우들과는 마주치는 신이 많이 없다. 그런데 강호 선배님과는 워낙 작품을 많이 해봤다. 4번째 영화니까 호흡은 당연히 잘 맞았고, 현장에서 되게 재밌었다. 현장에서 물놀이했던 기억도 나고, 감독님이 한국 음식을 좋아하셔서 같이 꽃게도 먹으러 가고…. 날씨도 좋을 때 찍어서 진짜 여행하는 느낌으로 찍었다.(웃음)
▷ 감독이나 배우들이 꼽는 대사가 있긴 한데, 본인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무엇인가?
아마 되게 많은 배우가 이야기했을 텐데, 나도 "태어나줘서 고마워"가 기억에 남는다. 왜 우리는 그런 말 한마디에 그렇게 위안을 받을까? 현대인의 삶이란 참….(웃음) 그 장면 대본 리딩을 할 때 나도 되게 힐링 받았다. 아직 영화를 못 봐서 그 장면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난 그게 되게 좋더라. 나한테 해주는 말 같기도 하고.
배우 배두나에게 해외 무대가 갖는 의미
▷ 칸영화제에도 못 올 정도면 정말 바쁜 것 같은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미국 LA고, 3월에 넘어와서 훈련이랑 적응하면서 4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잭 스나이더 감독님의 '리벨 문'을 찍고 있다. 굉장히 긴 영화라 지금 장기전이다. 아마 올해는 여기서 촬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 해외 활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고 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일 텐데, 이러한 긴 여정이 배우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건가?
외롭다. 하하하핫. 농담이고,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 힘들고 외로운 건 나에겐 별로 충격이 올 정도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힘든 작품은 힘드니까. 그런데 경험이라는 게 나를 많이 만족시켜준다. 몸과 정신이 힘들어도, 새로운 걸 경험할 때 가치를 느낀다.
물론 서울에 있고, 한국 영화를 찍으면 편하고 여러모로 도움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있으면 내가 좀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가끔 이런 환기가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된다. 안 그러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에 선택에 후회는 없다. 여기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돌아가겠다.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배우가 돼서 다시 뵀으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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