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지구촌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조금 수그러들 만하니 이번에는 또 '원숭이두창'(monkeypox)이 유행세다. 다행히 아직 국내에선 보고되지 않았지만, 정부도 지난 8일 코로나19와 동급인 2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하는 등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한때 인류 최대의 적이었던 두창(痘瘡·천연두)과 유사성을 띤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 앞에 '원숭이'가 붙은 이유는 지난 1958년 덴마크의 한 연구실에서 사육되던 실험용 원숭이로부터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원숭이두창이 2019년 말 낯설게 등장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숭이두창 환자의 손발 사진이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되면서 공포심도 커지고 있다. 원수이두창이 코로나19에 비해 얼마나 위험하고 전파력이 강한지, 그리고 생활 방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했다.
Q. 원숭이두창의 해외 감염 현황은?
A: WHO(세계보건기구)는 지난 8일 기준 원숭이두창이 비(非)풍토병인 지역 29개국에서 1천 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며 감염자들의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비풍토병 지역은 아직 사망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벨기에, 스웨덴, 캐나다, 이스라엘, 모로코 등 유럽·중동 등에서 광범위한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원숭이두창의 근원지인 아프리카에선 올해 1400건 이상의 감염·의심사례(suspected cases)가 나왔고, 66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Q. 갑자기 원숭이두창이 여러 나라로 번지게 된 이유는 뭔가.
A: 금번 유행은 지난달 6일 나이지리아를 여행한 영국 남성이 확진되면서 촉발됐다.
영국 가디언지는 지난 10일 보건안전청(UKHSA)을 인용해 자국 내 원숭이두창 감염자 80%가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5월 이후 확진된 366명 중 336명을 분석한 결과, 감염자의 99%는 남성이었고 이들의 평균 연령은 38세였다. 감염자 대부분은 다른 남성들과 성적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됐다. WHO도 지금까지 누적된 감염사례 중 남성 간 성관계를 가진 환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여성 확진자들도 보고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숭이두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온 아프리카 과학자들은 최근 북미·유럽 지역에서 확산이 이뤄지고 있는 현상을 두고 "서아프리카에서 보던 확산 종류와는 다르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나이지리아는 매년 3천 명 정도의 원숭이두창 환자가 보고되고 있지만, 쥐와 다람쥐 등 주로 바이러스를 보유한 동물들과 접촉을 통해 감염된 사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균자와의 성관계 등이 주요 경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서구 사회에서 원숭이두창의 감염 형태가 변화하고 있거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천연두 접종이 수십 년 전 중단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Q. 과거에도 비슷한 확산사례가 있었나.
A: 그렇다. 원숭이두창의 사람 간 감염이 최초 발견된 것은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인 2003년 미국 일리노이·인디애나·캔자스·미주리·오하이오·위스콘신 등 6개 주(州)에서 47건의 확진 및 감염 의심사례가 나왔다. 역학조사 결과, 당시 가나에서 텍사스로 수입된 설치류 동물, 애완동물로 취급된 프레리 도그가 전파 매개가 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수도 워싱턴DC와 15개 주에서 보고된 감염자는 총 45명으로 그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Q. 최근에는 코로나처럼 '공기 전파'가 가능하단 얘기도 들리던데. 사실이라면 팬데믹(pandemic)으로 커질 확률도 있는 것 아닌가.
A: 원숭이두창은 대체로 밀접한 신체접촉으로 감염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WHO의 로자먼드 루이스 긴급 대응프로그램 천연두 사무국장은 지난 8일 브리핑에서 "타인과의 밀접한 접촉(interpersonal close contact)"이 주된 원인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는 현재 환자군의 특성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루이스 사무국장은 공기 중 미세입자인 에어로졸을 통한 감염 위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관련 정보가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not yet fully known")는 것이다.
실제로 드물지만 원숭이두창이 직접접촉 없이 퍼진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NYT)는 감염된 환자나 동물과 접촉이 없었으나 공기 중 전파만이 유일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 확진자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나이지리아 교도소에서는 확진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의료진 2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원숭이두창과 사촌 격이라 할 수 있는 천연두(두창)도 1947년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환자와 일곱 층 이상 떨어진 곳에서 감염자가 나오는 등 유사사례가 있었다. 공기 전염이 전체 감염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 CDC는 이달 첫 주 여행자들에게 원숭이두창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권고 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가 지난 6일 저녁 돌연 삭제하기도 했다.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CDC의 설명이다.
아울러 원숭이두창이 확산 중인 국가에서는 가족 내 환자가 있는 사람, 의료종사자, 확진자의 밀접접촉자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만, 설령 공기 중 전파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확진자와 한 공간에 있으면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은 코로나19 수준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CDC의 바이러스 전문가, 앤드리아 매콜럼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질병을 프레임화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며 "원숭이두창은 몇 미터 밖까지 걸쳐 퍼지는 바이러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원숭이두창의 공기 전파 가능성에 대해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타당하다"고 동의하며, 향후 과제로 꼽았다.
Q. 코로나19는 기침·발열 등 증상이 워낙 평범해 본인도 감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진을 보면 원숭이두창은 그게 어려워 보이던데.
A: 그렇다.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를 비롯해 증상 발현 전 잠복기 등으로 감염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원숭이두창 또한 초기에는 발열과 두통, 근육통, 오한, 피로 등 코로나19와 크게 다르지 않은 증상들도 있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확실한 표식이 있다. 얼굴부터 시작해 손발 등 온몸으로 퍼지는 수포성 발진이다.
영국 보건당국은 지난달 말 확진자들에 대해 피부 병변이 아물고 딱지가 마를 때까지 대인 접촉을 삼가고, 길게는 3주(21일)간 격리가 필요하다는 지침을 내놨다. 감염자들은 성관계를 자제해야 하고 8주간 콘돔 사용이 권고된다. 다만, 아직 생식기 분비물에 바이러스가 있다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닌 만큼 향후 임상 증거에 따라 해당 지침은 변경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CDC는 원숭이두창이 매독, 헤르페스 등 일부 성병과 흡사해 다른 질병으로 착각하거나 의료기관에서 오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원숭이두창 확진자들이 매독, 임질 등에 동시 감염된 점을 들어 성병에 걸렸단 이유만으로 원숭이두창 감염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Q. 감염자 현황 때문인지 성소수자들이 더 취약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A: 데이터를 보면 그렇게 비춰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지난달 말 WHO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원숭이두창이 유럽에서 열린 성소수자들의 파티를 통해 확산됐다는 보도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원숭이두창은 일부 특정집단만을 중심으로 퍼지지 않는다. 성병도 아니다. 확진자나 감염동물과의 밀접접촉, 상처, 체액, 옷·침구 등을 통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WHO가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두가 잠재적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도 원숭이두창을 둘러싼 일부 보도가 동성애 및 인종차별적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Q. 코로나19처럼 체계적인 백신 접종은 필요 없을까.
A: 원숭이두창의 전파력은 코로나19보다 낮고, 중증도 역시 두창에 비해 염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예방접종과 같은 대국민 접종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당국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덴마크의 바바리안 노르딕이 개발한 3세대 두창 백신 '진네오스' 도입 등을 추진 중이다. 델타, 오미크론 등 유독 바이러스 변이가 잦아 감염 예방효과가 떨어지는 코로나 백신과 달리 해당 백신은 최소 85%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