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브로커' 이지은이 표현한, '참지 않는' 소영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브로커'에서 소영 역을 연기한 이지은.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영화 '브로커'는 특유의 스타일과 메시지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 연출작이라는 점뿐 아니라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주목받았다. 그중 이번 영화로 상업영화에 데뷔하게 된 이지은을 향한 관심이 높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불우한 환경에서 닥치는 대로 살며 불신과 냉소를 품은 이지안 역을 연기한 '나의 아저씨' 속 이지은을 보고 캐스팅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제안을 받았을 때 이지은은 "심장이 두근두근"했다고 회상했다. 이미 '브로커'에 캐스팅이 확정됐던 배두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이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영화 '러브 세트'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소영이 역할이죠? 너무너무 잘 어울리겠다~ 꼭 해요"라는 배두나의 격려는, 이지은이 소영을 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러나 소영과 지안은 완전히 달랐다. 지안이 갖은 풍파를 겪은 탓에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소영은 초면인 사람에게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다다다 쏘아댈 수 있는 '발산형' 인물에 가까웠다. 이지은은 고레에다 감독과 생각을 나누며 소영을 만들어 나갔다. 어두운 과거가 있는 미혼모라는 설정보다 염려됐던 것은 이 캐릭터의 입체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였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브로커' 소영 역을 맡은 이지은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이지은은 "내가 고레에다 감독님 작품 섭외를 받다니!"라며 대본 읽기 전에 배두나에게 전화를 했고 잘 어울릴 것 같으니 꼭 하라는 그의 말에 "평상시에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용기가 났다. 배두나 선배님의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용기가 됐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엄마이기도, 또래 여자이기도, 고단한 청춘이기도 한 소영

이지은이 맡은 소영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가는 미혼모다. CJ ENM 제공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로, 이지은은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두고 다시 찾으러 온 엄마 소영 역을 맡았다. 자신의 아이가 '더 좋은 부모'에게로 팔릴 수 있을지 동행하는 소영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여러 사연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인물이다. 만만찮은 설정이지만, 이지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의 전작을 많이 봤다는 이지은은 "오히려 그런 인물들에게 부여된 설정을 한 번도 노골적으로 연출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모두가 사연 있는 역할이지만 이걸(사연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좀 있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하는 걱정과 부담이 있었다. 제가 받은 역할이 세다는 것보단, 잘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라고 답했다.

이지은이 바라본 소영은 그저 '엄마'만은 아니었다. 이지은은 "어둡고 어려운 서사가 많이 있는, 복합적인 인물인데 단순히 엄마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동수(강동원)와의 감정선에서는 또래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가는 한 명의 청춘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소영이가 가진 많은 설정 중 한 가지로만 표현되지 않게끔 생각하고 연기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극중 첫 장면,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소영이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두고 오는 장면이 그의 첫 촬영 장면이었다. 원래도 마른 체형이지만 그 신에서 더 가냘파 보였다. 지난해 정규 5집 '라일락'(LILAC) 활동 후 살이 빠진 탓이었다.

"저도 체중계 자주 올라가는 직업이긴 한데 '라일락' 활동하면서 원치 않게 살이 너무 빠져서 감독님이 당연히 싫어하시겠다 생각했는데 소영이 초반부랑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해 주셨어요."

이지은이 해석한 소영은 '자기 감정을 참지 않고 드러내는' 인물이다. CJ ENM 제공
소영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겉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거기에 맞췄다. 이지은은 "살 빠진 상태를 유지하다가 중후반부에 스모키 화장 벗고 옷도 따뜻한 거 입고 소영이가 좀 편해지는 신이 있다. (그땐) 잘 먹은 얼굴, 편안한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지점을 알려주셨다"라고 설명했다.

'브로커'의 중심 이야기는 '아기 거래'다. 아기를 기를 상황이 안(못) 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베이비 박스부터, 양육의 주체, 모성, 임신중절과 아기 거래까지 다양한 소재가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얽힌다. '출산'과 '양육'의 문제를 두고 형사 수진(배두나)과 소영이 다투는 장면도 한 예다. 이지은은 소영의 대사를 보고 고레에다 감독에게 물었다. 소영이라는 한 인물의 생각인지, 소영의 입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 알고 싶다고. 그래야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이건 소영 개인의 가치관'이라는 답을 듣고서야 "아무 의문이 없"어졌다. 이지은은 "소영이와 제 생각이 다르다고 한들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게 어려우면 비윤리적인 인물을 절대 연기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지우는 것이 어떤 것이 더 죄의 경중이 크냐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소영이의 생각과는 다른 가치관이에요. 낳기 전까지는 무조건 산모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무조건 낳는 것이 더 옳지, 하는 소영이의 생각에 개인으로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그 대사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들었고, 그런 가치관이 있다 한들 그거 역시도 누군가 한 명의 생각이잖아요. 모든 가치관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때 감독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모든 의문이 많이 해결됐던 거 같아요."

'나의 아저씨' 지안과 '브로커' 소영

'드림하이 1'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지은에게 '나의 아저씨'는 필모그래피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웰메이드라는 평이 자자했고, 주인공 지안 역 이지은의 연기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레에다 감독도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보고 이지은을 캐스팅했다. 그래서 이지은은 소영이 지안과 비슷한 인물일까 하고 상상했다.

둘 다 어둡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분명히 다른 캐릭터였다. 이지은은 가장 큰 차이점으로 '표현 정도'를 꼽았다. 어쩌다 웃으면 '쟤 웃는다' 소리가 나올 만큼 내색 않는 지안이 표현하지 않는 인물이라면, 소영은 반대였다. "지안이 얼굴이 전혀 없진 않으나"라고 운을 뗀 이지은은 "자기감정을 참는 구석이라곤 없는 인물"이라고 소영을 소개했다.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나타나는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 소영은 화장을 지운 맨얼굴을 보여준다. CJ ENM 제공
이지은은 "지안은 속이 되게 시끄럽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세상에 구태여 말 얹기 싫어서 '아, 귀찮아'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다. '나 3만 살이야' 하는 대사도 있는데, '나는 너무 많이 살았어' '너무 나이 들었어' 하는 느낌이다. 소영이는 굉장히 어린 인물이라고 느꼈다. 연기할 때도 글로 읽을 때도. 지안이가 그렇게 윤회와 반복을 거쳐서 태어난 인물이라면, 그것보다는 처음 태어난 인물에 가까운… 연기한 입장에서 소영이는 어린 느낌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지안과 소영 모두 '센 캐릭터'여서 누구와 더 닮았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고 웃음을 터뜨린 이지은은 잠시 고민한 끝에 소영을 골랐다. 그는 "저는 지안이처럼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받아들이면서 살진 않는다. 후반부 지안이는 또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가진 성격 얘기했을 땐. (소영이는) 좀 더 불안해하고 불안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지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처음에는 서로를 불신하던 '브로커' 일행은 차츰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영화 후반부 관람차 신도 그중 하나다. 이지은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물었을 때도, 음악과 가장 잘 어우러진 장면을 물었을 때도 모두 관람차 신이라고 대답했다.

'해가 질 무렵'이라고 뚜렷한 시점이 나타나 있어서 하루에 딱 한 번만 찍을 수 있는 고난도 장면이었다. 관람차 안이 워낙 좁아 홍경표 촬영감독만 탈 수 있었고 조명 기구도 들여올 수 없었다. 그야말로 '날것'으로 찍어야 해서 이지은은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자기가 실수하면 이 모든 사람이 재촬영하러 다시 와야 하기에, 그래서 그날 기억은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음악이 깔리는데 너무 소영이의 마음 같고, 동수의 마음 같아서 딱이었다"라고 생각했다.

배우 이지은.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관람차 장면은 두 번 찍었다. 사실 촬영 환경이 더 좋았던 건 두 번째였다. 첫 테이크 때는 소음도 많이 들어갔고, 예상보다 해가 더 져버린 상황에서 찍어서 대본상 표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지은은 첫 테이크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두 번째 날 되게 하늘도 예쁘고 다 좋았는데 제가 더 몰입했던 신은 첫 번째 테이크 같아서, 어떤 게 좋냐고 하실 때 둘 다 어떤 걸 써도 잘한 포인트는 다른 것 같아 상관없지만 좀 더 진짜로 했던 건 첫 테이크라고 했다. 본인(감독)도 그렇다고 하셨다"라며 "어떤 걸 쓰셨을까 솔직히 궁금했는데 (영화 보고) 첫 테이크 쓰셨구나! 했다"라고 부연했다.

관람차 장면은 이지은이 강동원의 순발력에 놀란 신이기도 하다. 이지은은 "대본상에는 동수가 (제 눈을) 가리기는 하는데 훨씬 뒷부분이었다. 제가 예상보다 눈물이 빨리 차서 흘러내리려고 하니까, '우는 눈을 안 보여준다'라는 게 중요한 신이어서 그런지 대본이랑 상관없이 떨어지기 직전에 가리셨다. (눈물이) 떨어질락 말락 했는데 어떻게 아셨지 싶었고, 너무 신기하게 대사 타이밍도 맞았다. 가리자마자 손 틈 사이로 눈물이 툭 떨어지는데 '우와, 저건 기다렸다가 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겠다' 할 정도로 좋은 타이밍이었다. 제가 덕을 봤다"라고 말했다.

영화 음악을 담당한 정재일 음악감독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음악과 장면이 딱 붙었다고 생각하는 관람차 신뿐만 아니라 오프닝부터 "소름이 돋았다"는 게 이지은의 설명이다. 그는 "음악(이 들어간) 버전을 칸에서 처음 봤는데, 영화 보고 딱 두 군데에다 연락을 남겼다. 엄마 아빠하고 (정재일) 선배님이다. 완성본을 봤는데 음악이 너무너무 좋다, 선배님 음악 덕분에 제가 득을 본 장면도 많이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좋았던 몇몇 신의 어떤 넘버가 좋았다 이렇게 보냈다"라고 밝혔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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