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경력, 비노조 화물차주도 트레일러 시동을 껐다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들이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40년간 트레일러를 몰던 김기훈(63·가명)씨는 지난 7일부터 운전대를 내려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화물연대)의 총파업에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비조합원이다. 노조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안전운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량과 운송거리, 유가 변동분 등을 산정한 운임료로, 화물운송 업계에 적용되는 일종의 '최저임금'이다. 2020년 3년 일몰제(정해진 기간 이후 자동 소멸되는 제도)로 시행돼 올해 말 종료된다.

김씨는 "40년 동안 화물차를 몰면서 안전운임제 만큼 근무환경을 개선한 제도는 없었다"며 "이제 막 정착되고 있는 시점인데 올해 폐지를 앞두고 있어서 파업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졸음운전·과적·과속 삼중고…"울며 겨자먹기로 운행"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까지는 졸음운전과 과적, 과속에 노출됐다고 설명한다. 매달 나가는 금액에 비해 운임료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덜 자고, 더 많이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화물차 평균 가격은 약 2억원, 매달 할부금은 300만원선이다. 여기에 한달을 쉬지 않고 일하는 차량은 기름값으로 500만원 이상을 사용한다고 한다. 계산대로라면 매달 나가는 돈이 많게는 1천만원을 웃돈다.

하지만 안전운임제 시행 전까지 운임료는 운송업체에 달려 있었다. 화물업은 기업 등 화주가 운송업체와 계약을 맺고, 다시 업체가 화물노동자를 고용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즉 '주는 대로' 받고 일하는 구조였는데, 돈이 부족하면 '한 탕'을 더 하기 위해 새벽 주행을 했다. 한 번 옮길 때 기준치를 초과해 싣고, 과속도 했다. 한국교통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9년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부상자 수는 시행 후인 2020년보다 각각 2.3%, 8.2% 높았다.

김씨는 "예를 들어 50만원은 받아야 하는 일감인데 업체가 30만원 주고 '가세요'라고 하면 해야 했다"며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수익 자체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안전운임제 이후엔 "더 받는 게 아니라 한 만큼 받아"


하지만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에는 '일 한 만큼'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운임료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기름값이 보전되다 보니, 무리한 운행이 줄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가령 택시 이용 시 미터기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는 것처럼,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엔 일한 만큼만 받고 있다"며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도 기름값을 어느정도 보전받는 등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인 민주노총 화물연대 서울경기본부 이영조 사무국장. 정성욱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 서울경기본부 이영조 사무국장은 "안전운임제가 시행되고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드디어 잠을 잘 시간이 생겼다'라는 것"이라며 "일한 만큼 받고, 최소한은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분야는 컨테이너 운송차량 등 전체 화물업계의 5%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사무국장은 "저희가 파업을 하는 게 마치 더 많은 돈을 더 받기 위한 것처럼 비춰지는데, 실제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주 측 "일몰제 예정대로"…파업 장기화 기로

지역·거리 등에 따라 정해진 안전운임제 요율표. 2021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운임표

반면 화주단체 측은 최근 급등한 물류비 감당이 어렵다며 예정대로 안전운임제 일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소속 화주협의회는 안전운임제 시행 전인 2017년에 비해 50㎞ 이하 단거리 컨테이너 운송 요금이 최대 42.6%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단거리 물량은 전체 컨테이너 운송 물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안전운임제가 도입됐음에도 졸음운전과 과적 등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효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안전운임제 시행(2020년) 이후 전년보다 교통사고와 부상자는 줄었지만, 사망자는 오히려 19% 늘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정부마저 안전운임제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파업이 장기화될 조짐도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10일 화물연대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적인 총파업이 4일째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마주한 자리인 것을 감안할 때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평이다.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공원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안전운임제 존치 여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토부가 국회 심의 사항에 특정 입장만 옳다고 하는 것은 월권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사실상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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