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한강벨트 지역으로 재개발·재건축 이슈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선 용산은 분출하기 직전의 분화구와 같다.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 청사 반경 2㎞ 이내는 삼각맨션 특별계획구역 등 굵직한 대규모 개발사업 10여 개가 추진 중이다. 지리적으로 남산을 배경으로 한강변을 끼고 있는데다 미군 반환 용산부지 공원화 등 각종 규제 폐지와 재개발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큰 득표차로 승리한 박희영 용산구청장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은 잠시고 결국 용산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가 규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데다 지지부진했던 국제업무지구 재개발,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서울역과 용산역의 철도 지하화, 도심 최대 규모의 녹지인 용산공원 조성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정비창 국제업무지구 재개발에 탄력이 붙으면 '홍콩 엑소더스'를 모색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기업과 기관들을 유치해 '아시아의 금융 허브'를 조성하면 국제도시를 꿈꾸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이 내세운 여의도 '아시아 금융 중심 지구'에 대해서는 포화상태인 여의도의 배후도시로서 최적의 입지와 환경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박 당선자는 9일 용산구 사무실에서 가진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시작할 업무로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국제업무지구 재개발 마스터플랜 TF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이어달리기 선수라고 생각한다. 퇴임하는 현 성장현 구청장이 용산의 역사와 전통을 발굴하고 문화를 확산하는데 노력해왔던 바통을 이어받아 용산의 숙원사업들을 펼쳐 미래로 나아가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희영 용산구청장 당선자와의 일문일답이다.
30년 가까이 용산에 살며 많은 변화를 경험했을 것 같다. 이번 용산구청장 선거에 임하면서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 초등학교 4학년 때 용산으로 전학와서 결혼할 때까지 살다 잠시 떠났는데, 2010년부터 다시 돌아와 살았으니 30년 가까이 용산에서 살았다. 좀 충격이었던 것은 어릴 때 봤던 용산과 다시 돌아와서 본 용산의 모습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주민들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가시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용산은 진보와 보수 간 대결에서 5%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다. 그때그때 상황이나 인물에 따라서 영향을 크게 받는 박빙 지역이다.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이 교차로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이 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권영세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변화가 감지됐고 작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에 승리에 큰 표를 준데 이어 20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로 이어지며 보수 색채에 불길이 일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역 재개발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다보니 가시적 변화를 원하는 주민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지역 숙원사업인 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해 각종 규제에 묶여 답보상태인 재건축・재개발에 힘이 쏠리도록 대통령-서울시장-국회의원-구청장까지 이어져야 '원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컸다. 오랫동안 낙후되고 소외됐던 개발의 바람, 변화를 바라는 요구가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지난 12년 간 3번 연속 민주당 구청장이 당선됐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에서 구청장이 당선됐는데, 이전과 이후의 달라질 변화를 예상한다면
= 성장현 현 용산구청장은 실제로는 4선이다. 20여년 전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이 됐다가 선거법위반 문제로 직을 잃고 다시 2010년 도전에 성공해 12년 간 최고의 정점에서 활동해온 분이다. 매우 견고한 성이라고 할까, 한 방송에서는 '맹주'라고 표현하던데, 용산 지역의 정서상 보수 지지세가 3~5% 앞서는 상황에서도 12년간 3연속 재선에 성공한 매우 견고한 성 같은 분이다. 그 분만의 노하우가 있었다고 본다. 뛰어난 친화력과 첫 직을 잃었던 10년간 와신상담하며 쌓아온 내공이 3선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반면 야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매우 고전한 상대였다. 사람마다 공과가 있지만 성 구청장은 옛것과 전통, 역사적인 기억을 보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옛것 없이 새것이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때가 됐다. 어쩌면 이미 그 시기가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매우 좋다. 용산공원이 들어설 미군부지 반환와 미군기지 이전, 국제업무지구 개발, 철도 지하화 등 모든 정치인들이 20년 간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용산의 굵직한 숙원사업들이 적체되어 있다. 그것들이 지지부진하거나 논의조차 못하고 허공의 메아리가 됐었는데 대통령 집무실이 오게 되면서 오히려 그것들이 가시화 되거나 앞당겨지게 됐다. 용산공원 부지도 순차적으로 반환을 받을 예정이지만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오게 되면서 주한미군이나 미국정부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 본다. 윤대통령도 가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지도를 보면 용산 제일 가운데에 140년 동안 외국군 주둔지로 쓰였다. 용산 관내 있지만 오히려 용산 구민들에게는 장애물이었다. 지역 간 단절되고 금단의 구역이 되어버렸다. 서울역과 용산역이 있는 교통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만 이 비싼 땅 위에 철도가 동서남북으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지역구민들에게는 큰 손실이다. 지하화 사업을 추진하는데 막대한 예산이 들다보니 지지부진했는데 대통령 집무실이 오면서 길이 이래저래 막히니 빨리 추진하자는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최대 수혜자는 용산 구민들이어야 한다. 새로운 용산시대에 엄청나고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하게되고 추진의 동력을 얻게 됐다고 생각한다.
용산 미군부지의 반환과 조속한 용산공원 조성을 공약했다. 돌려받는 일부 부지도 수년의 토지정화작업까지 필요해 윤정부 임기 내 공원조성은 어려워 보이는데
= 100만평이나 되는 부지를 일시에 돌려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서울의 허파가 될 용산공원 조성은 정치·외교·사회·문화·환경적 노력들이 보태져야 풀 수 있는 국가 사업이다. 공원 조성과 개방 계획도 토지정화 작업 등 시민들의 안전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허투루 이 문제를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반환된 부지 일부를 임시개방하기로 한 것은 일부 성급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는 그 땅에 공공주택 10만호를 짓겠다고 하지 않았나. 구한말 이후 140년 간 금단의 땅에서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이벤트라고 생각한다.일시에 전면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의 상태, 오염도, 공원화를 위한 살펴볼 문제들을 파악하면서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 확보하며 단계적으로 공원의 기능을 조성해 나갈 것으로 본다. 토지정화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불완전한 땜질식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우리정부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용산 구민, 서울 시민의 건강과 용산의 재구조화를 통해 서울의 허파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가 생긴다면 구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만큼 용산구청장으로서 정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박 당선자는 국제업무지구를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서울시장은 여의도를 '아시아 금융 중심 지구'로, 부산시장은 '글로벌 디지털 금융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용산이 왜 아시아의 금융 허브 최적지인가
= 여의도는 많은 금융 기업들이 이미 들어차 있어 사실상 포화상태다. 오히려 용산은 그 포화상태인 여의도 금융권역의 배후도시로서 최적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용산이다. 국가 경쟁력은 도시 경쟁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주춤했던 '홍콩 엑소더스'가 재개될 것이고 최상의 도시 입지를 가진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세계 금융기관들이 낙점할 것이라 자신한다. 여의도처럼 특화된 금융 지구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배후단지는 용산 밖에 없다. 광화문-여의도-강남을 연결하는 국가경제 중심축은 용산이 최적지다.국제업무지구로서의 기능을 다 하려면 환경이 중요하다. 도심 내 용산공원 같은 대규모 녹지공간과 한강 수변, 남산의 자연경관 그리고 최적의 교통 인프라와 명품 주거단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용산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정비창의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용산과 여의도가 함께 양립한다 해도 다리 하나 사이에 두고 있어 이 같은 방식도 괜찮다고 본다. 만약 글로벌 금융지구 조성 계획에 조정이 필요하다면, 포화상태인 여의도보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용산이 이같은 계획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오세훈 시장과 함께 조정과 협의를 통해 서울시와 대한민국의 도시경쟁력을 갖춘 용산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서로 유치를 하기 위해 노력할텐데 4차 산업혁명시대인 요즘은 대부분 온라인, 비대면으로 금융업무가 처리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금융기관 유치와 금융 허브 조성에 대해 용산구청장으로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권영세 의원과도 적극 협의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제업무지구의 개발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지만, 최대 수혜는 용산이, 수혜자는 용산구민이 가져와야 한다. 오 시장이 옛 서울시장 시절 열심히 추진했던 곳이 용산 국제업무지구다. 최근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개발 규모가 크다보니 단위를 나눠서 개발해나가겠다는 쪽으로 조금 입장이 바뀐 것 같은데, 그만큼 부담을 줄이면서 신속하게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코레일의 부지고 서울시가 밑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용산구 입장에서도 마스터플랜을 따로 계획하고 TF팀도 만들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취임을 하면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TF 조직을 가장 먼저 구성해 정부, 서울시와 협의해 용산 구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재개발・재건축 등 도심 개발이 확대되면 반대로 지역 개발의 수혜에서 소외되거나 양극화로 밀려나는 원주민들도 생겨날 텐데 이를 보완할 구체적 방안이 있나
= 동부이촌 지역은 부촌으로 꼽히지만 매우 오래된 아파트들이다. 동서로는 용산역에서 서울역 철도로 단절되어 있다. 유일한 연결로가 폭이 좁은 고가도로뿐이어서 상습정체구역으로 꼽힌다. 대통령이 상습정체와 불편한 현상을 보면 철도 지하화 시너지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용산이 집값은 굉장히 비싸지만 이같이 동서남북으로 나뉜 특성에 따라 격차도 크다. 지난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세법 때문에 구민들이 사실상 징벌적 과세에 시달렸다. 재개발 요구는 더 나은 삶과 재산가치 향상을 바라는 자연스런 욕구다. 세금은 내면서 그 두 가지를 다 놓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욕구가 클 수밖에 없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우리가 입안권만 가지고 있지 인허가권은 서울시가 가지고 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담아내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노후화 되고 낙후된 지역이 있는 이유는 개발 제한과 규제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을 해줬으면 시기나 완급조절로 충분히 주택공급이 됐을 것이다. 고도제한 등 과도한 규제로 재개발을 할 수 없었다. 주민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결정은 주민들이 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주대책을 마련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고 원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도나 평형조절 등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공공 재개발이 아닌 민간 재개발은 소유주의 의견이 중요하다. 목소리가 모아지고 추진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청년들이 집을 못구한다. 허름한 곳도 평당 1억이 넘는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공급제한이 부동산 가격폭등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하는 주민들의 기본권리를 빼앗기고 징벌적 과세로 과도한 세부담을 지게 됐다. 낙후지역의 주민들의 목소리를 청취할 것이고 입주권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계속해서 양극화 갈등을 줄일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
취임하면 가장 먼저 추진할 1호 업무는 무엇인가
=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국제업무지구 마스터플랜 추진 TF 조직을 최우선 구성하겠다. 다른 조직개편은 좀 더 검토할 예정이다.전임 구청장이나 구청 공무원들이 해왔던 업무들을 우선 파악하고 혹시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저평가된 것은 없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용산구청 공무원들이 최상의 상태에서 자부심을 갖고 용산 구민을 위한 행정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나는 이어달리기 선수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주인이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 구청장이 하던 바통을 이어받는 이어달리기 선수로서 잘 되어온 지속가능한 사업이 뭔지, 또 발전시켜야 할 사업과 불필요한 사업은 무엇인지 면밀한 검토를 하고, 전임 구청장과의 단절이 아니라 이어달리기 선수라는 시각으로 구정을 추진하겠다.
1961년생인 박 당선자는 용문시장 인근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와 처음 용산에 발을 디뎠다. 이화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결혼 후 심재철 전 고려대 교수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두 아이를 기르며 캔사스시티 한국학교 교사로 지내기도 했다. 2010년 다시 용산으로 돌아와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용산이 지역구인 권영세 의원(현 통일부장관) 정책특보를 거쳐 2014년 용산구의원을 지낸 뒤 2017년 민선7기 용산구청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4년 간의 와신상담 끝에 호기를 맞이한 그는 대통령 집무실과 이웃한 첫 여성 용산구청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