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 시작부터 송강호를 떠올렸다

영화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상>
'브로커'의 시작부터 감독의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들

영화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만나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예요. 영화에 대한 감상이 전부 다르더라도 그것 또한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_소영 역 배우 이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고, '어느 가족'(2018)으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명실상부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무엇보다 그를 거장 반열에 오르게 한 건 매 작품 사회에서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한 삶과 인물을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는 송강호를 비롯해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 대표 제작진과 손잡고 첫 한국 영화 연출작 '브로커'를 선보였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의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자)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감독은 이번에도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그려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의 시작점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베이비 박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송강호'로 시작된 영화


▷ '브로커'를 구상하고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기 위해 입양제도, 양부모 제도 등 입양 문제에 관한 자료조사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구마모토현에 '황새 요람'이라는 아기 우편함 시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병원 원장님이 쓴 책도 보고, 여러 자료 조사를 하면서 기획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가 한국에서는 교회가 운영하는 동일한 박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일본에 비해서 10배 넘는 아이들이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 입양아 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한국 내 입양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참고: 일본 구마모토현 지케이 병원에는 '황새 요람'이라는 베이비 박스가 있는데, 아시아권 나라 중 최초로 베이비 박스를 공식적으로 운영한 곳이다.)
 
▷ 사실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한국에서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베이비 박스 상황에 대해 알게 된 직후 제가 바로 썼던 플롯이 A4 3장 정도 됐어요. 그 플롯의 내용은 신부복 차림의 송강호가 베이비 박스에서 아기를 꺼내 안고 자상한 미소를 띤 채 아기에게 말을 거는 거였고. 그리고는 아기를 팔아버리는 모습, 그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3장짜리 플롯에는 이전부터 계속 함께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배우들의 이름을 적게 됐죠. 그게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였어요. 그렇게 이들을 염두에 두면서 플롯을 썼던 게 영화의 출발점이에요. 제 기억으로는 6~7년 전입니다."

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 대체로 관객들에게 생각이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오셨는데요. 이번엔 소영(이지은)의 입을 빌려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 즉 "태어나줘서 고마워"란 말을 직접적으로 전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취재 중 보육원 출신 분에게서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나'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건 결코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고, 성인이 되기까지 아이들에게 생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어른의 문제이자 사회의 책임임을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평소 영화를 찍을 때는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리며 상대에게 말을 걸듯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번에는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기에 직접적인 대사가 됐던 거 같아요.
 
소영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전해요. 아마 동수(강동원)는 그 말을 본인이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목소리로 받아들였을 거고, 상현(송강호)은 앞으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로 그 목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상현은 좀 복잡할 수 있는 게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수도 있고, 본인이 듣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어요. 다른 인물들보다 복잡한 배경이 있을 테니 한 명으로 특정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무튼 그런 식으로 간접적인 결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말을 전해야 하겠다고 각오하고 그 대사를 썼습니다."

 
▷ 평소 대안 가족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전달했는데, 이번에는 모성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찍고 난 뒤에 했던 인터뷰에서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를 질문 받았어요. 그때 '아이가 생기는 순간 내 옆의 여성, 그러니까 부인은 어머니가 될 수 있지만 남자인 나는 아이가 생겨도 아버지가 됐다는 실감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남자들은 어떤 이유나 관념적인 사고가 없이는 부성을 가질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런 걸 실감했던 게 이 작품을 만들게 했던 계기다'라고 답변했어요.
 
그 인터뷰를 본 제 친구가 여성도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바로 모성이 생기진 않는다고 했어요. 또 남자들의 편견이 모성을 갖지 못하는 여성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비판을 들었죠. 그 말을 듣고 저는 통렬하게 제 발언을 반성했어요. 안일하게 모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문제를 다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이야기가 하나는 '브로커', 또 하나는 '어느 가족'이에요. 어떻게 보면 두 영화는 형제 같은 이야기일 수 있어요."


외화 '어느 가족'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큰 가치란


▷ 칸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일각에서는 상현과 동수가 아이를 매매하는 브로커, 즉 범죄자라는 점을 지적하는데요. 물론 감상은 보는 사람의 몫이지만, 때때로 영화의 소재 등이 가진 위험성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연출자로서 이런 우려에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제가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에 갔을 때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비저블 피플'(Invisible People, 보이지 않는 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가 많다고요. 분명히 존재는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영화가 많았다는 말로 제 작품을 평가했었어요.
 
제가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를 할 때 제목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아무도 알려 하지 않는 존재들'이란 뜻을 담아서 제목을 붙였어요. 그러나 분명히 그들은 거기 있었고, 존재했었다는 뜻을 담은 거죠. 전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영화로 다루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룬다고밖에 설명 못하겠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과는 다른 각도로 조명해 질문을 던졌을 때, 극장을 나오는 관객들이 약간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이런 세상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그것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가치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 회색으로 변해가면서 어느 쪽이 흰색이고 검은색인지 알 수 없는 걸 표현해보고 싶어요."


영화 '브로커' 스틸컷. CJ ENM 제공
 
▷ 말씀하신 대로 사회의 그림자,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가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엔 브로커가 타고 있는 차량은 아기를 수송하는 범죄자 집단으로 보일 거예요. 영화에서 수진이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런 거였죠. 반면 브로커들을 체포하려는 수진이 타고 있는 차량은 정의로운 곳이라고 느끼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말 이게 옳았던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수진의 시선이 흔들립니다. 겉보기에 브로커 차량에 있는 사람은 범죄자지만, 카메라를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인간적인 모습들이 보이는 상황인 거죠.
 
기본적으로 저는 세상을 그려 나갈 때 흑과 백이 대립하는 구도가 아니라 회색의 그라데이션으로 받아들이고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정의와 악이 대결하는 구도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하편에서 계속>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