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로 '디비졌다(뒤집혔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보수 텃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더불어민주당이 경남도정에 꽂은 파란 깃발이 4년 만에 내려졌다. 박빙도, 경합도 아닌 한마디로 완패다.
지난 2010년 당시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2018년 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1995년 민선 이후 줄곧 차지했다 빼앗긴 보수의 아성을 4년 만에 국민의힘이 되찾았다.
민주당 소속의 김경수 전 지사의 중도 낙마로 발생한 11개월에 이르는 도정 빈자리가 민주당에는 뼈 아프다.
이번 민심도 그대로 반영됐다. 민선 지사를 뽑은 이후 7번이나 권한대행 체제를 겪었던 경남은 이제 도지사만큼은 코로나19로 지친 민생 경제를 챙기는 등 도정에만 집중할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완수 압승 "도민 주인 되는 경남 만들겠다"
"경남을 망가트린 정당이 어디입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민주당 심판해야겠죠?"국민의힘 박완수 경남지사 당선인이 선거운동 첫날 출정식에서 했던 말이 그대로 실현됐다.
박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민주당 심판론'을 꺼내 들었다.
그는 "4년 전 도민은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라며 "그런데 경남은 어떻게 됐나. GRDP 성장률 최하위 수준이고, 도민 1인당 개인소득 전국 꼴찌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 온 정말 자랑스러운 경남을 망가트린 정당이 민주당"이라고 비판했다.
도민 역시 양문석의 '김경수 도정 연속성과 국민의힘 견제론'보다는 박완수의 '민주당 심판론과 여당의 힘'을 선택했다.
그리고 불법과 주민 불편이 없는 '클린 선거', 도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도민 선거', 도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통 선거' 등 선거운동 3원칙을 지키며 도민의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실제 박 당선인은 노동자와 학생,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을 두루 만났다. 힘든 상황에 부닥친 이들에게 표를 달라고 말하기가 민망하기도 부끄럽다고 할 정도로, 고충을 듣고 해결도 약속했다.
그 결과 2일 오전 1시 기준으로 55.49%의 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박 당선인은 득표율 66.83%로, 28%를 얻은 민주당 양문석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며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4년 전 민주당 김경수 전 지사가 당시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를 10%P 차로 이겼지만, 이번에는 차이가 40%P 가까이 벌어졌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도 박 후보는 65.3%로, 양 후보 30.2%보다 배 이상 앞선다는 예측 결과가 나왔다. 선거 캠프는 환호 속에 들썩였다.
예측된 결과였다. 그동안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도 2배에 가까운 지지도를 박 후보가 얻었다.
박 당선인은 "저와 국민의힘에 보내주신 큰 지지와 사랑에 감사드린다"며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 여러분의 뜻을 받들고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그동안 '시작부터 확실하게' 도정을 챙기고 경남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며 "도민 여러분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런 경남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다. 이것은 단순한 선거구호, 정치적 수사를 넘어 이번 도정에 임하는 저의 다짐과 각오"라고 강조했다.
당선 소감에는 인수위의 밑그림도 담겼다.
박 당선인은 "빠른 시일 내에 도정을 인수해 바로 업무에 착수하겠다"라며 "간소하게 실무형 인수팀을 구성해 도청 실무진들과 신속하게 현안을 진단하고 도정 과제를 수립해 도민에게 보고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청 조직을 일하는 조직, 도민을 최우선시하는 조직으로 바꾸겠다"라며 "지역경제 회복 관련 과제 등 시급성을 요구하는 사업들은 도정 인수과정에서 먼저 검토해서 제 임기 시작과 동시에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하반기 추경도 검토하겠다"라고 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올해 경남도 예산사업들의 집행률을 최대한 높이고,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추경 예산을 신속하게 집행해 지역 경기 부양과 민생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남지사 꿈 이뤄낸 박완수, 'CEO형 행정전문가'로 도정 이끈다
통영 작은 마을 출신인 박 당선인은 마산공고를 나와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노동자로 일하면서 방송통신대를 거쳐 경남대 행정학과에 편입했다.1979년 행정고시로 합격한 이후 경남도청 근무를 시작으로 합천군수, 경남도 농정국장·경제통상국장을 지내며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았다. 박 당선인의 1호 공약도 '경남투자청'이다. 가장 시급한 도정 현안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으로 꼽을 정도다.
'경남이 키운 준비된 도지사'는 선거 운동 기간 자신을 알리는 구호였다. 그는 자주 "경남은 저의 삶이고, 도민이 박완수를 키워 주셨다"라고 말한다. 공직 생활의 시작도 경남이다.
실제 박 당선인이 경남도청에 처음 발령받은 주무 담당관 시절 신혼에 집에 가지 않고 동료들과 4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당시 경남발전 10개년 종합계획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일은 자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다.
경남에서 오랫동안 다진 행정 경험을 밑거름 삼아 정치 경험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2002년 창원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2위를 기록했지만,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창원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창원·마산·진해를 합친 통합창원시장까지 10년을 이어갔고, 2016년부터 창원의창구 재선 의원을 지냈다. 초선인 2019년에는 자유한국당 사무총장도 맡았다.
경남지사는 박 당선인의 최종 목적지이자 꿈이었다.
2012년과 2014년에는 경남지사 선거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에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경남지사를 석권했다. 도전과 열정,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 'CEO형 행정 전문가'로, 이제 경남도정을 이끈다.
그리고 그는 경남 발전에 있어서 "다른 생각 없이 저를 키워주신 경남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경제 살리는 데 매진…부울경 메가시티·도정 공백 등 과제도
박 당선인은 무너진 경남을 일으키겠다고 한 만큼 경남 경제를 살리는 데 도정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앞서 박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도 "지역경제 회복 관련 과제 등 시급성을 요구하는 사업들을 도정 인수 과정에서 먼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 기업과 투자 유치 등을 총괄하는 '경남투자청' 설립은 그의 대표 공약이다. 내년 상반기 시범 운영에 들어가 도민 1인당 소득 4만 불, 양질의 일자리 12만 개 유치, 현재 연간 5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10조 원으로 2배 끌어올리기 위한 설립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세제와 인허가, 여신 등에서 특례 적용이 가능한 '투자유치 특별자치도'로 만들어 경남을 대한민국 경제특구로 탈바꿈하겠다는 각오다.
수소·자동차·로봇·인공지능·사물인터넷·메타버스·차세대 소형원전 등 경남형 7대 전략 기술 육성, 남해안 국제관광지화, 도민의 안전과 생명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119·자치경찰·의료기관의 협업체인 종합지휘소, 60세 이상으로 임플란트 지원 확대 등도 주요 공약 중 하나다.
최근 출범한 부울경 메가시티라고 불리는 '부울경 특별연합'도 다뤄야 할 과제다. '신중론'을 보인 박 당선인은 "서부 경남 발전 전략이 담겨야 한다"며 부울경 특별연합의 개정안 의지까지 보였다.
그는 "부산 주변의 인프라만 확충되고 결국 구심력으로 작용해 부산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며 '부산 블랙홀'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임 지사의 중도 낙마로 1년 가까이 공백 사태를 맞고 있는 도정 전반도 추슬려야 할 과제로 떠안았다.
박 당선인은 "경남의 도지사 권한대행 사례가 일곱 번"이라며 "그동안의 도정 공백을 메꾸고 경남의 리더십이 잠시도 멈춰 서지 않도록 도지사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여러분 곁에서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