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수공통감염병, 원숭이두창(monkeypox)에 대해 감염병 위기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법정감염병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직 국내에서 확진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해외입국자 증가로 유입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선제적 대응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질병관리청은 31일 오후 원숭이두창 관련 위기평가회의를 통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해외 원숭이두창 환자 발생 증가에 따라 국내유입 가능성도 점차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유럽에서 특정 집단 중심의 사례가 보고되었고, 향후 추가사례가 지속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앞서 전문가들은 전날 소집된 감염병 위기관리 전문위원회에서 원숭이두창의 신속한 법정감염병 지정을 촉구한 바 있다. 국내·외 위험도를 평가해 위기단계 선포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국내 감염병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낮은 단계인 '관심'은 해외 신종감염병의 '발생과 유행' 시 발령되는 조치다. 팬데믹(pandemic)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지난 2020년 2월부터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행 감염병인 2018년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동물인플루엔자인체 감염증(AI)이 원숭이두창과 같은 관심 단계다.
다만, 당국은 질병 자체는 아주 위협적이지 않다고 봤다. 실제로 고위험집단에서의 위험도는 '중간', 일반인 내 위험도는 '낮음'으로 평가됐다.
고위험집단은 적절한 개인보호장구 없이 원숭이두창 확진자 또는 의심환자와 접촉한 사람(성적 접촉, 동거인)을 뜻한다.
질병청은 "질병 자체의 영향력은 낮으나, 고위험집단에서 노출될 위험이 높기에 위험도는 '중간'으로 평가되었다"며 "일반인에서는 발생가능성이 낮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지난 29일 원숭이두창이 '보통 위험(moderate risk)' 수준에 해당된다는 '비(非)엔데믹 국가 원숭이두창 발생 보고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총 5단계(0~4단계)로 분류되는 WHO의 위험평가 시스템에서 중간 정도인 2단계다.
이날 기준 원숭이두창은 31개국에서 발생이 보고됐으며 확진자는 총 473명, 의심환자는 136명에 이른다. 원숭이두창은 본래 중·서부 아프리카의 풍토병이지만, 이달 이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프랑스, 캐나다, 미국 등 그 외 지역에서 속속 환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감염되면 38도 이상의 발열, 오한, 두통, 림프절부종, 수두와 유사한 수포성 발진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복기는 통상 3~6일이지만, 가장 길게는 21일에 달한다.
당국은 당장 이날부터 대책반을 가동해 각 나라의 발생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지자체, 의료계, 민간 전문가들과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 환자 및 의심사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발생 사례는 없다"고 재확인하며, "이후 확진자가 확인될 경우,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다 체계적인 감시와 관리를 위해 법정감염병(2급) 지정도 추진한다. 당국은 △질병관리청장이 지정하는 감염병의 종류 △감염병의 진단기준 고시 △질병청장이 긴급검역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감염병 고시 등을 개정해 내달 8일 발령할 예정이다.
개정 이전에도 신종감염병증후군으로서 의심환자 신고, 역학조사, 치료기관 지정, 격리대응 등 선제적인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원숭이두창의 조기발견과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과 의료계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하거나 여행하는 국민들은 현지에서 유증상자 또는 설치류 등 야생동물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개인위생수칙과 안전여행수칙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만약 귀국 후 3주 이내 발열과 오한, 수포성 발진 등 의심증상이 나타나면 질병청 콜센터(1339)로 문의해야 한다. 이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내원할 때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해외여행력을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당국은 의심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 역시 안전한 보호구를 갖추고 질병청 콜센터로 연락해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