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내가 미쳤었나" 루나 투자한 젊은 세대 '코인쇼크' ②'돈놓고 돈먹기' 루나 신기루에 투자자 보호장치는 없었다 ③'코인시장 규제공백' 어떻게 메꾸나…'루나 사태'로 논의 급물살 (계속) |
"해외에서 발행된 가상자산이 '아무런 규제 없이' 국내에서 거래되면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관계법령이 없어 가상자산 시장과 사업자에 대한 위험관리 등이 곤란하다."
최근 가상화폐 루나·테라의 폭락사태 이후 열린 집권 여당과 정부의 긴급 당정 간담회에서 금융당국 고위인사들이 내놓은 현실 진단이다. 실제로 루나와 테라와 같은 가상화폐(코인)가 사고 팔리는 국내 거래소에선 상장 또는 상장폐지 심사가 자체 기준에 의해 제각각으로 이뤄지고 있다. 코인 가격 변동성은 엄청난데 관련 공시 정보는 부족하고, 심지어 각 코인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설명해 놓은 '백서'조차 영문과 전문용어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가운데 대형 코인 폭락사태가 터지자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불분명하다.
모두 규제공백 속에서 나타난 혼란상들이다. 관련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뒀던 여당에선 "테라·루나 사태 이전과 이후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 논의에 뒤늦게 불이 붙은 것이다.
'증권형과 비증권형 코인,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가 첫 단추
규제의 대체적인 윤곽은 지난 24일 열린 당정 간담회에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가상자산의 경제적 실질에 따라 '증권형 코인'과 '비증권형 코인'으로 나눠 규제 체계를 확립할 것"이라고 방향을 설명했다. 증권형 코인이란 한 마디로 '코인화 된 증권'이므로, 증권 발행과 신고·공시·투자자 보호 규정 등이 적시된 현행 자본시장법을 토대로 규제하는 한편, 비증권형 코인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양한 가상자산업법(업권법)을 통해 규율 체계를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이 방안이 현실화 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사고 팔리는 수많은 코인들 가운데 무엇이 증권형이고, 무엇이 비증권형인지부터 가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같은 작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가려내는 금융당국 차원의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기 때문인데, "현재 마련 중"이라고 한다.
증권형 코인과 비증권형 코인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의는 가상자산 규율 체계 마련을 위해 정부에 협조 중인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위원의 작년 6월 보고서에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이미 가상자산 분류 체계를 일정 수준 갖춘 외국사례를 참고했을 때 증권형 코인은 "특정 투자에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수반하며, 증권법상 주식 또는 채권에 해당되거나 투자 계약의 요건을 충족하는 가상자산"이다. 비증권형 코인의 종류에는 교환 코인과 유틸리티 코인이 있는데, 교환 코인은 "유통·교환을 목적으로 발행된 가상자산"으로 대표적으론 비트코인이 있다. 유틸리티 코인은 "네트워크상의 재화 또는 용역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권한을 부여한 가상자산"이다.
현재로선 이런 정의들을 바탕으로 분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코인들은 외국에서 발행된 것이고, 국내 뿐 아니라 국외 거래소에서도 다국적으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어 섣불리 규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갑래 연구위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국제적 정합성을 보면서 증권성 코인을 가르는 가이드라인을 신중하게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가상화폐 시가총액 상위권에 랭크된 '리플' 코인을 증권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 중인 데다가, 지난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른 미국 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종합 검토 결과가 올해 4분기 가시화 될 예정인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향후 증권형 코인의 범위가 폭넓게 해석될 경우, 현재 가상화폐 거래 체계는 일대 혼란을 맞을 수도 있다. 관련 규정(자본시장법)을 따르지 않고 거래된 증권형 코인들의 거래정지와 퇴출, 각종 소송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업비트의 관계자는 "현재도 코인의 증권성 여부에 대해 사내 변호사와 외부 법무법인이 검토·판단하고 양쪽 법리 검토 결과가 '증권형 코인이 아니다'라고 일치됐을 때에만 상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당국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이 같은 거래소 차원의 1차적인 심사절차라도 우선적으로 제도화하는 게 향후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적지 않다.
비증권형 코인 규제 논의도 활성화…역외적용은 '난제'
증권형 코인들이 향후 자본시장법 규율 체계 속으로 들어간 뒤 남게 될 비증권형 코인을 규제하는 업권법 논의는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관련 제정법안만 7개에 달하는데, 대부분 자본시장법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는 평가다. 정부와 여당, 전문가들이 최근 긴급 세미나와 간담회 등을 통해 해당 법안들을 살펴보며 부각된 의제는 가상화폐 거래소별로 제각각인 코인 상장심사 기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공시 규제 관련 보강·강조돼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등이었다.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시세 조종, 부정거래, 시장질서 교란 등의 불공정거래행위 제재 수준을 자본시장법 대비 어떻게 설정할지도 주요 의제였다.
특히 일부 거래소들은 루나 코인의 부실성을 인지하고 상장조차 시키지 않았다는 설명을 내놓으면서, 반대로 상장시킨 주요 거래소들의 자체 기준이 무엇인지와, 이 기준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인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는 "공인된 복수의 가상자산 평가회사를 설립하도록 하고,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의 상장 및 공시를 위해 2~3개의 평가회사에서 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당초 거래소별로 심사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려던 기존 기류가 반전됐다는 분석이다. 여당은 일단 업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현행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거래소의 상장기준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검토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업권법에 포함될 공시 규제와 관련해서도 감독 당국이 주체가 돼 공시시스템을 운영하고, 코인 발행인이 해당 시스템에 중요 공시자료를 제출하는 안까지 업계 자율공시안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코인 발행시 관련 아이디어와 기술, 사업계획을 담아 공개하는 '백서'의 필수 구성 요소들을 법으로 규정하고, 한글로 작성된 백서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코인들이 외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규제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비트코인처럼 발행 주체가 없는 코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여권 관계자는 "현재로선 물음표가 붙는 모든 부분이 논의사항"이라고 밝혔다. 김갑래 연구위원은 "가상자산거래 관련 행위가 국외에서 이뤄진 경우 그 효과가 '국내에 미치는 경우'에 국내 업권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이 필요하다"며 "이 같은 역외적용 조항이 있더라도 외국에서 법집행이 불가능하면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가상자산 시장 감독기구 간의 국제적 공조체계를 공고히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