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백조원 투자 보따리에 과연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화답할까. 정부가 이달 중으로 새 정부의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기로 예고하면서 규제 개선과 세제 혜택 강화, 인력 확보 등 업계의 오랜 숙원을 해소할 특단의 대책이 제시될지 주목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새 정부의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기로 하고 산업전략 원탁회의를 통해 업계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한편,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국정목표 아래 '경제안보', 또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초(超)격차'를 확보하고 신(新)격차'를 창출하는 '반도체 초강대국'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윤 정부는 대통령 취임식과 취임 기념 만찬에 5대 그룹 총수와 주요 경제단체장을 모두 초청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중앙회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초대하는 등 출범 초기부터 핵심 경제 기조인 '민간 주도 성장'에 걸맞는 친기업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윤 정부 출범을 계기로 1천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재계 1·2위인 삼성과 SK는 각각 450조원과 247조원의 투자 보따리를 풀기로 했다. SK는 반도체 및 반도체 소재 부문에 142조2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삼성도 절반 이상을 반도체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직후 한미 '반도체 동맹' 강화와 현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의지에 적극 부응하겠다는 취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천문학적 투자에 나서기로 한 만큼 이제는 정부가 반도체 업계의 오랜 숙원을 해소할 차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그간 공장 신·증설을 위한 규제 해소와 투자·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 고질적 인력난 해결 등을 요구해 왔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정부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첨단산업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달 30일 이창양 산업부장관이 주재한 '제1차 산업전략 원탁회의'에 참석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세액공제 확대 △필수 인프라(전력·용수 등) 구축 지원 등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설비투자 지원책은 물론, 지자체 인허가 지연 애로 해소, 입지 여건 개선 등을 위한 지원 등을 요청했다.
반도체 업계는 특히 전문인력 부족을 업계 1순위 애로사항으로 적시하며 반도체학과 개설 및 정원확대, 산업현장 수요에 맞는 인력양성 프로그램 운영 등 정부의 과감한 인력 양성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종에 있는 중소기업까지 전반에 걸쳐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총 3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까지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같은날 '반도체 인재양성 간담회'를 열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학부와 대학원에 반도체 전공을 개설하고, 향후 5년간 실무인재 3140명을 양성한다고 밝혔다.
다만 수도권 지역에서 반도체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유연한 학과 증설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국토부 등 타 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을 늘릴 수 없는 상태다.
정부는 △획기적인 규제개선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 △과감한 인력양성책 △소부장 생태계 구축 등을 이달 중 발표할 새 정부의 반도체산업 발전 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삼고, 세부 전략을 확정하기 위해 업계 및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아울러 오는 8월 시행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통해 범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등 전략산업을 글로벌 패권 전쟁의 핵심 비대칭 전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원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의 오랜 숙원인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는 번번이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며 "대기업들이 투자와 채용 계획을 함께 밝힌 것처럼 투자도 결국 인력이 있어야 가능한 문제인데 세계 주요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