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도, 비전공자도 AI 인재로…현장 통합 실습이 비결

제조업 필요한 뿌리 기술부터 최신 AI기술까지 한 번에 배우는 폴리텍대학 '러닝팩토리'
비전공자, 현직 노동자도 폴리텍대학 찾아 AI기술 맞춤 인재로 성장
교원마다 우량업체 전담 마크…기술 동향·현장 수요 파악해 교육으로 연결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러닝팩토리 '창의융합기술센터'.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이곳이 바로 '러닝 팩토리'의 하나인 창의융합기술센터입니다. 기초적인 선반, 밀링 작업부터 용접, 표면처리 등 뿌리기술은 물론이고, 레이저컷팅, 3D프린터까지 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본관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에 '창의융합기술센터'가 마주 보인다. 건물 1층의 절반 가량을 칸막이 하나 없이 활짝 터놓은 공간 곳곳에는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공정 단계별 장비들이 학생들의 동선을 따라 갖춰졌다.

정면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한 학생이 제품 디자인·설계를 하는 동안 오른쪽 CNC(수치제어 가공)밀링에서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강철을 깎아 부품을 만들고 있다. 안전을 위해 한편에 따로 마련된 용접실에서는 불꽃이 번쩍이고, 공장을 테이블 위로 옮긴 듯한 자동화설비랩에서는 쉴 새 없이 모형 제품을 조립하고 운반한다.

이내 학생들이 우르르 모이더니 직접 만들었다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시범을 맡은 학생이 운전에 서툰 까닭일까, 앞으로는 능숙하게 달려갔지만 후진할 때에는 머뭇거리자 다른 학생들이 깔깔대며 돕는 모습만 보면 이들이 자동차 한 대를 '뚝딱' 만들었다고 쉽게 믿기지 않는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만 배우지만, 저희 학생들은 다릅니다. 이 자동차만 해도 설계부터 가공, 용접, 전기배선, 후처리, 조립까지 현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술을 학생들이 직접 익혀 만들었습니다" 본인부터 폴리텍대학 출신으로 이 곳의 교수가 된 김준영 창의융합기술센터장의 설명이다.

한 층 위로 올라서자 이번에는 어지간한 집 거실을 가득 채울 RC(무선조종)자동차 경주장이 펼쳐졌다. 장애물이 나타나거나 신호가 바뀌면 인공지능(AI) 스스로 RC차를 멈춰 세우고, 차선을 바꿔가는 'AI융합기술센터'의 대표 실습 도구다. AI가 자율주행하는 RC차 경주장 옆에서는 증강현실(AR)을 이용해 부품을 조립하는가 하면, 다른 학생들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채 실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러닝팩토리 '창의융합기술센터'.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지난 27일 기자가 찾아간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는 기계, 금형, 산업설비 등 뿌리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한 인공지능융합(AI+x) 인재 양성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이를 위해 폴리텍대학은 지자체와 손을 잡았다. 광주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 등 지역 인공지능(AI)산업 생태계에 발맞춰 '맞춤 인력 배양토'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그 첨병에는 지난해 신설된 AI 융합과가 있다. 이 가운데 AI융합과 하이테크 과정의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은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을 갖춘 2~30대 미취업 청년층이다.

AI 융합과의 첫 성과라 할 수 있는 하이테크 과정 1기 수료생 취업률은 무려 94.4%에 달하는데, 모두 AI 기술을 배운 적 없던 비전공자 출신들이다. 그동안 인문·예체능계열 등만 공부했던 비전공자라도 이 곳에 오면 1년 만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머신러닝 플랫폼 개발 등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분야로 취업할 수 있다.

김명진(30) 씨는 대학에서 전공했던 미디어콘텐츠디자인에 AI 영상분석 기술을 적용한 교통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한 가지를 배워 취업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김 씨는 "디지털 기술 역량은 이제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생명환경 분야를 전공한 한영석(30) 씨는 AIoT(인공지능사물인터넷) 시스템을 활용한 스마트팜 구축 현장에 근무하고 있다. 한 씨는 "몇 년 사이 인공지능 기술이 급부상했다"며 "하이테크 과정은 기존 전공도 살리면서 새로운 기술 분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합실습 교육환경이 바로 위에 소개한 '러닝팩토리(LF, Learning Factory)'다. 제조업 전반에 활용되는 금형, 용접, 표면처리 등 뿌리기술부터 사물인터넷(IoT), AI 기술을 융합한 '현장형 통합 실습 교육환경'을 실현한 교실인 셈이다.

설계부터 생산, 검사까지 모든 생산 공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실제 공장과 같이 구현한 창의융합기술센터는 학과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공작기계, 용접기, 로봇, VR등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AI융합기술센터는 로봇, 가공장비 등 생산 기반 하드웨어의 데이터를 축적·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공장을 구현해 생산 공정 하드웨어 인프라뿐 아니라 시스템, 네트워크 등 소프트웨어 인프라도 경험할 수 있다.

폴리텍대학이 '러닝팩토리'를 처음 도입했던 때는 2018년, 겨우 4년이 지났지만 벌써 올해 기준 전국 36개 캠퍼스에 59개 러닝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일반 시민들에도 러닝팩토리를 전면 개방했다. 제품 제작이 필요한 예비 창업자, 고가 장비 활용이 필요한 소규모 사업장, 진로 체험을 원하는 청소년 등은 소액의 재료비만 부담하면 이 곳의 최신 시설·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러닝팩토리 민간개방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진행한 '협업이음터' 사업의 6대 과제로도 선정됐다. 2020년 3만 3천여 명이 사용하던 러닝팩토리는 지난해 민간에 개방하자 이용객이 15만 8천여 명으로 5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의 성과는 산업현장에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광주캠퍼스와 산학협력 교류협약을 맺고 있는 화천기공(주)은 두산공작기계, 현대위아와 함께 시장의 90%를 나눠가지며 공작기계 업계 3강으로 꼽히는 중견기업이다.

화천기공은 창의융합기술센터의 CNC 가공장비를 실시간 모니터링 및 생산데이터 분석·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지원하는 등, 산학협력에 공을 들였다. 그 덕분일까, 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졸업생 가운데 36명이 화천기공을 포함한 화천 그룹 계열사에서 둥지를 틀었다.

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교수 출신인 화천기공 안상수 기술고문은 "화천기공에도 기업 현장을 그대로 옮긴 러닝팩토리가 있는데, 대학 시절 러닝팩토리를 활용했던 신입사원들은 적응도 빠르다"며 "이 곳의 초임만 4500만 원 수준으로 폴리텍대학을 거쳐 취업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2010년 입사한 김우경(41) 씨는 입사하기 전 이미 화천기공 협력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벨업'을 꿈꾸며 폴리텍을 찾았고,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코치로 참가해 2차례나 금메달을 거머쥔 끝에 화천기공의 정규직으로 다시 일자리에 돌아왔다.

김 씨는 "입학하기 전 협력업체에서 얻은 현장 기술 감각을 졸업할 때까지 잃지 않은 비결은 산업체 출신 교수님의 지도와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교육환경 덕분"이라며 폴리텍대학에서 얻은 성과를 소개했다.

더 나아가 폴리텍대학은 교원 1인당 10개 내외 우량업체를 전담하는 '기업전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신 기술 동향을 파악할 뿐 아니라 기업의 수요에 맞는 맞춤 인력을 공급하도록 관련 교육을 개선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 지원까지 나서고 있다.

그 결과 폴리텍대학은 코로나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던 최근 3년(2018년~2020년) 동안에도 평균 취업률 80.1%를 기록했다. 일반대학(62.9%), 전문대학(70.2%)과는 매년 10% 안팎의 격차를 둔 셈이다.

폴리텍대학 조재희 이사장은 "1980년대 고도성장기 제조업 중심 산업인력 양성을 선도한 한국폴리텍대학은 2010년대 초 저성장기 실업자 훈련을 중심으로 사회안전망을 수행해왔다"며 "향후 10년 디지털·저탄소 경제 전환을 '제2의 고도성장기'의 기회로 삼기 위해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로봇 등 핵심 산업 인재 양성에 민관산학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폴리텍대학은 오는 9월 13일부터 2년제 학위과정 수시1차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올해 모집인원은 전국 28개 캠퍼스 155개 학과, 총 663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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