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내 매체들의 톱뉴스를 장식한 단어는 '왕장관' 세글자였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인사검증 기능을 법무부로 이관하기로 결정하면서 법무부의 수장 한동훈 장관에게 따라붙은 별명이다. 지금껏 '왕수석', '왕차관'이라는 단어에 익숙했던 국민들은 이제 '왕장관'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언론과 대중들이 한동훈에게 왕장관이라는 진부한 칭호를 부여한 것에는 한 장관이 윤석열 정부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장관은 대통령의 '친정'인 검찰 인사권을 장악한데 이어 이번 조치로 윤석열 정부 전체 공직 인사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대개 이런 직책들 앞에 붙은 접두사 '왕'에는 막강한 권력에 대한 경외심과 부정적이고 우려섞인 뉘앙스를 같이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호칭으로 불렸던 인사들 상당수가 좋지 않은 결말을 보여줬던 것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법무부도 적극적인 언론 대응에 나섰다. "법무부는 1차 인사 검증 실무만 담당한다"는 것이 방어 논리다. 법무부 장관은 신설되는 인사정보관리단으로부터 중간보고를 받지 않고 사무실도 법무부 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인사정보관리단장은 비검찰·비법무부 출신으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대응책만 본다면 법무부는 여론의 우려가 무엇인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런 의문은 남는다. 장관이 보고 받지 않고 사무실도 청사 밖에 둬야하고 심지어 소속 공무원이 단장도 못할 조직이라면 굳이 법무부 소속을 고집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개 이런 비상식적인 결과가 나오는 배경에는 늘 인사권자의 의지가 작용하는 법이다. 인사가 대통령 권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렵지 않은 추론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윤석열식(式) 인사에 대한 우려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윤석열식 인사의 요체는 '능력주의'와 '쓸놈쓸(써본 사람만 쓴다)'이라는 단어로 대변된다. 이런 인사원칙은 검찰총장 시절부터 수많은 문제를 야기해 왔다. 이번 검찰 인사만 보더라도 핵심보직이라 할 수 있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신자용 서울고검 송무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송경호 수원고검 검사가 임명됐다. 검찰 인사에 익숙한 법조인들이라면 지난 2019년 윤석열 총장 시절 첫 검사인사와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당시 신자용 법무부 검찰과장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각각 서울중앙지검 1·3차장으로 영전해 대검 반부패부장이었던 한 장관과 호흡을 맞추게 된다. 윤석열 검찰 인사에서는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상하관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덩어리로 영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 중용했던 사람만 다시 중용하는 윤석열식 인사는 상명하복이 당연시 되는 검찰 조직 내에조차 엄청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윤석열 총장의 첫 검사장ㆍ중간간부 인사가 끝난 직후 70여명에 가까운 검사들이 사표를 던진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검찰 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공안·형사 검사들의 실망감과 분노는 대단했다. 파국을 향해 치닫던 윤 총장과 공안·형사 검사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추미애 전 장관의 무리한 총장 징계 시도였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청와대를 옮기고 민정수석을 폐지하겠다며 권력의 분산을 약속했을 때 문제 많은 인사 스타일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과 검찰 간부 인사, 그리고 인사검증 기능을 한 장관 산하의 법무부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은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기 충분했다. 한동훈 법무부가 인사검증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의 인사 시스템 전체가 전현직 검찰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인사 검증 기능을 넘겨받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실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복두규 인사기획관, 인사 검증을 최종 확인하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모두 검찰 출신일 뿐만 아니라 윤 총장의 복심들이다. 윤 대통령과 같이 관계를 중시하는 인사 스타일에서는 인사검증팀이 때론 강하게 제동을 걸 수 있는 '레드팀' 역할을 해야 한다. 진정한 복심들만이 쓴소리를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처럼 인사권자의 의중만 살피는 인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이전만큼 인사 검증 시스템의 재정립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