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안에' 10기 수출…尹정부 '원전 강국' 실현 가능성은

[尹정부의 과학적 탄소중립①]
2030년까지 10기 수출 '원전의 수출산업화'
원자력발전 용량 30% 신장…체코 등 수주전
세계시장 장악한 러시아 등 경쟁자 만만찮아
원천기술 부재, 자금력 부족…낙관 어려운 환경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원전(오른쪽부터 차례로 고리 1~4호기). 1호기는 상업운전 39년만인 2017년 6월 영구 정지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로 과거와의 단절에 나섰고, 이 전략의 핵심은 '원전 수출 강국'으로 요약된다. 탈원전 폐기는 110대 국정과제 중 3번째로 제시된, '정권 차원'의 역점 과제다.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경험과 한미 원자력 협력 체계 등에 기반한다지만, '돈 먹는 하마' 원전의 세계시장은 만만치 않다.
 

윤석열 정권의 포부, 8년 안에 10기 수출


국정과제 제3항 '탈원전 정책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는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고, 원전 생태계 경쟁력 강화, 한미 원전동맹 강화 및 수출을 통해 원전 최강국 도약"을 목표로 적시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적극적 수주활동을 전개한다"는 '원전의 수출산업화'를 강조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이미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선언이 있었다.
 
과제 달성을 위해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수장으로 하고, 외교부·국방부 등 관련부처와 한전·한수원은 물론 금융권 등 민간이 두루 참여하는 '원전수출전략추진단'을 가동하기로 했다. 체코·폴란드·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대상국에 '원전수출거점공관'도 둔다고 한다.
 
정부는 국비 33억2천만원 포함 총 47억9천만원 규모의 '22년도 원전수출기반 구축사업'을 시행한다는 발표도 최근 내놨다. 기존 원전 뿐 아니라, 소형모듈형원자로(SMR)나 기자재·서비스 등으로 수출 다각화도 모색한다. 미국과의 수출 공조도 적극 펼친다는 포부다.
 
미국과의 협력은 최근 정상회담에서도 다져졌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원자력 수출 진흥과 역량개발 수단의 공동 사용 △회복력 있는 원자력 공급망 구축 △SMR 개발 가속화 등 협력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원전 수출 관련 국정과제 내용.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발췌
 

2030년까지 원전수요 100기 이상 전망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21년판 전망보고서는 2020년 393GW였던 전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이 2030년 30% 신장된다고 적었다. 2050년에는 두배 이상이 된다는 전망이다.
 
2020년 현재 전세계 가동 원전이 441기였으므로, 이 전망대로라면 2030년까지 130기 가량이 새로 건설되는 셈이다. 100기만 신설돼도 원전 1기당 5조원씩 잡으면 500조원대 수출시장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가 수주 경쟁에 돌입한 체코는 1기, 폴란드는 6기, 사우디아라비아는 2기의 원전을 각각 계획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2기)도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원전기업들과 교섭 중이고, 인도네시아·카자흐스탄 등 6개국은 보류 상태지만 여전히 잠재고객이다. 필리핀·나이지리아 등 검토 단계인 나라도 9곳이다.
 
업계가 시장전망을 긍정적으로 하는 배경에는 기후위기가 있다. 원전이 탄소배출 에너지원의 대체 수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가스 화력발전 대신 원전 확충을 구상 중이다. 유럽연합은 규제 단서를 달아 원전을 녹색산업에 포함시켰고, 영국은 에너지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25%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주요국의 원전 보유 현황. 가동 원전(청색)과 건설 중인 원전(연청색), 폐쇄·정지 원전(회색)의 분포가 나타난다. IAEA원자로정보시스템 발췌

우리나라 경쟁력은 얼마나 되나


원전 수출국은 손에 꼽힌다. 일단 웨스팅하우스(WH)·제너럴일렉트릭(GE)을 앞세운 미국, 아레바(옛 프라마톰)의 프랑스, 캐나다원자력공사(AECL)의 캐나다가 전통의 강호다. 냉전기 동구권을 장악했고, 2000년대 들어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을 세운 러시아도 원전 강국이다.
 
한때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는 등 미국계 기업과 합작에 능한 일본(미쓰비시·히타치·도시바), 프랑스 기술을 바탕으로 파키스탄 원전을 건설한 중국(CNNC·CGN·SPIC)도 있다.
 
아울러 2009년 UAE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수출(2기 가동·2기 건설 중)한 우리나라도 같은 범주에 든다. 수출된 APR-1400 원전은 미국 정부로부터 설계인증도 취득했다. 우리나라의 원전 공급능력이 입증된 셈이다.
 
UAE에 수출된 원전 1기당 사업비가 5조원대였던 만큼, 13년전 가격이 유지된다면 가격 경쟁력도 충분하다. 일본이 짓다 2018년 포기한 영국 앵글시 원전, 프랑스가 플라망빌에 건설 중인 원전 등은 1기당 가격이 15조원을 넘어선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러시아가 장악한 세계 시장…틈새 있나


그런데 13년전 수출 경험이 성과로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제재에 놓였다지만, 현재 세계시장을 장악한 것은 러시아다. 중국의 기세도 만만찮고, 기존 강호들의 존재감도 여전하다.
 
IAEA 통계상 전세계에서 현재 53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형태는 러시아 VVER 계열 가압경수로 원전으로 21기인데, 여기서 무려 18기가 인도·중국·터키 등 제3국에서 건설 중인 '수출 원전'이다. 그밖에 건설 중인 수출 원전은 프랑스 ERP 원전(2기)과 우리나라 APR-1400 원전(2기) 밖에 없다. 세계시장에서 러시아 비중이 압도적이다.
 
러시아 로사톰은 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지 시장개척 때 금융·기술 지원 뿐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해주겠다'는 식의 접근까지 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광활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수출 전략을 짜고 있다. 현재 중국 내 건설 중인 원전은 15기로 세계 최다인데, 중국은 이 가운데 13기를 자국 기업에 맡겨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40여개국과 원자력 협력 협정도 체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프랑스·일본 등 기존 강호들 역시 체코 등 우리나라가 노리는 사업에 똑같이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어 시장환경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원천기술 미비…신기술 개발 성과도 아직


물론 한미 양국 협력선언이 유리한 변수로 작용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양국은 1년전 정상회담 때도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킨다"는 선언을 똑같이 했지만 이후 아무 성과가 없었다.
 
반대로 양국 협력이 강화되면 미국에 돈벌이 기회만 제공하고 말 것이란 주장도 있다. 미국이 현장건설 참여 없이 기술료·자문료 수익만 취하는 구조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UAE 수출 때 순수익 4조9천억원 중 2조9천억원이 미국 원천기술 보유사에 넘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정부와 업계가 기존 원전 대신 SMR에 역점을 두는 움직임도 있지만,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딱히 독창적이지 않다. IAEA의 관련 보고서 2020년판을 보면 전세계에서 연구 개발 중인 SMR은 총 72기인데, 이 중 우리나라 것은 단지 2기 뿐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16기씩의 SMR을 독자 연구 중이고, 중국(8기)이나 일본(7기)도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그나마 어느 나라도 SMR을 실용화 단계에 들이지 못했기에 주력 수출품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하다. 똑같이 핵폐기물을 배출하는 원전이면서 300MW급 이하 소출력인 SMR은, 1000MW대 기존 원전보다 경제성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삼켰다 토한 일본…'수주 뒤 문제' 우려도


원전은 수출 계약을 따내기도 어렵지만, 수출 뒤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각국 시장의 조건이 상이해 앞으로도 UAE와 같이 '운좋은' 사업환경이 계속 펼쳐질 지는 알 수 없다.
 
3년전 일본 미쓰비시는 2013년 따낸 터키 시노프 원전사업을 포기했다. 현장에서 활성단층이 확인되고 리라화 화폐가치까지 폭락하면서 21조원이던 건설비용이 50조원 수준으로 폭등해서다. 터키 원전의 경우 우리나라도 경쟁했는데, 당시 평가는 일본의 자금력에 밀렸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 일본조차 비용 증가에 좌절했다.
 
비슷한 시기 히타치도 2012년부터 진행하던 30조원대 영국 앵글시 원전사업을 엎었다. 금융 조달의 어려움 때문이었는데, 사업 철회에 따른 손실은 3조원에 달했다.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건설 과정에서 손실만 키운 수출 사례도 있다. 프랑스 아레바는 차세대 주력모델이던 EPR 원전의 설계결함이 뒤늦게 확인돼 중국(2기)에서 3년 이상, 핀란드(1기)에서는 무려 10년 이상 공사 지연을 겪었다. 이탓에 2010년 이후 매년 수십억 유로씩 적자를 보다 2016년 원전 부문을 프랑스전력공사(EDF)에 넘겼다.
 
웨스팅하우스도 일본 도시바에 인수됐던 시기인 2009~2010년 중국에서 총 4기의 차세대 주력모델 AP-1000 원전을 순차 착공했다. 이때도 뒤늦게 기술결함이 확인돼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이 회사는 실적부진 끝에 2017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캐나다 자본에 매각됐다.
 

"10기 수출? 어디에 팔 수 있겠나"


2009년말 UAE 원전 수출 성공 직후인 2010년 1월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12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2030년까지 80기 수출'을 목표로 내놓은 바 있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우리나라를 원전 3대 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나 이후 13년간 단 한건의 원전 수출도 성사된 게 없다. 현 정부가 목표를 8분의 1로 대폭 줄였지만, 이 역시 달성 여부는 미지수다.
 
원전업계 재직 경력을 지닌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10기 수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디에 팔 수 있겠나"라며 "수출 대상국 요구는 '공급국이 돈 가지고 와서 원전 설치해달라'는 것이어서, 일본 사례처럼 투자 위험성이 높다. 원전이 줄고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세계적 흐름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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