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관훈토론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민주당 송영길 후보에 대해선 "무능한 시장", "허황된 공약을 내놨다"고 비판해온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이같이 말하며 서울시장 재직 당시 자신의 치적을 높이 자평했다.
오 후보 선거공보물에도 "공약 189개 중 189개가 완료 및 정상 추진 중"이라 홍보하며 '실천전문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오 후보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공약 폐기 3건, 일부 폐기 2건, 변경 5건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놓고 불안하시죠. CCTV 보관 기한이 지금은 두어달 정도 되는데, 100일 정도로 늘려서 언제라도 필요하면 CCTV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바꾸겠고요".지난해 3월 23일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2주 앞둔 시점에 오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오 후보는 '어린이집 CCTV 보관기간 연장 및 정례 공개 의무화'를 공약했다. CCTV 영상기록 보관기간을 60일에서 100일로 연장하고, 하루 최소 4시간을 실시간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공약은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 후보 당선 이후 지난해 말 수립된 '제38대 서울특별시장 공약실천계획서'에 따르면 이 공약 외에도 총 3건이 '폐기' 됐다.
폐기한 3건의 공약은 ①자가학력진단평가 시스템 구축을 통한 학력평가 무상제공 ②어린이집 CCTV연장 및 정례 공개 의무화 ③송파구 거여·마천 중장기 종합 발전 계획 수립 등이다.
또 ①안심학업 공약 가운데 △공립 대안학교 설치 확대 사업, ②안심화장실 공약 가운데 △여성행복화장실 2배로 확대 사업 등이 폐기돼 '일부 폐기'로 기록됐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약 일부를) 폐기한 건 사실"이라며 "'선거 공약 일부는 조정을 했고, 나머지 부분은 정상 추진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오 시장은 왜 "공약 189개 중 단 한 건도 보류하거나 폐기된 공약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배경은 이렇다. 각 지자체는 지자체장 당선 이후 공약을 검토하면서 실천 계획을 수립한다. 이 과정엔 정책 전문가와 담당 공무원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현실적으로 무리한 공약이나 중복되는 사업이 있다면 폐기 및 목표 변경 등 조정이 이뤄진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12개 공약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21 서울시 시민공약평가단 회의 운영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집 CCTV연장 및 정례공개 의무화 공약의 경우 인권 침해 우려나 아동 학대 예방효과가 미흡하다는 보육 현장의 의견이 제기됐다.
또 자가학력진단평가 시스템 구축이나 대안학교 설치 확대의 경우 교육부·교육청의 고유 사무로서 소관업무 침해 및 사업 중복이 우려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해당 공약 이미 시행 중 △다른 기관의 소관 사무 △사업 중복 등의 사유를 담은 조정안을 마련해 시민 대표성을 지닌 '시민공약평가단'에게 이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했고, 모든 안건이 과반 찬성으로 승인됐다.
이광재 사무처장은 "조정 안건 제안은 서울시가 했고, 이를 승인한 게 시민 평가단"이라며 "시민들이 조정 안건에 승인하면 계약이 다시 설정된 거라고 본다. 이후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평가할 때는 (조정 전은) 제외하고 평가를 한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후보 시절 공약을 기준으로는 폐기한 공약이 있지만, 당선 이후 '계획'한 공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폐기한 공약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기라기보다는 논의를 거치면서 조정이 된 것이라고 하면 오해가 없을 것 같다"며 "조정 역시 시민분들께 심의를 다 받았다"고 강조했다.
또 "평가 대상은 시민공약평가단 심의를 통해 확정된 공약 실천 계획에 따른 공약들이고, 이는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 받고 있다"며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평가 결과) 보류·폐기된 공약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공약은 '공'약이구나"…시민 지적 잇따라
하지만 당선 이후 공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우려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폐기되는 공약 조정안 심의 과정에서 "전면 폐기가 아니라, 다른 방안으로 목표를 변경할 수는 없습니까?", "왜 사업이 중복인지 알 수 없었습니까?", "초안과 조정안이 매우 달라 불합리해보입니다" 등 의견을 내며 반대표를 던진 시민도 있었다.
회의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공약은 '공'(空)약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며 "검증되지 않은 공약을 먼저 공약으로 내세우고 선거가 끝나고 조정하는 것이 100%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무리한 공약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는 입장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약이 계속 시민분들과 논의·조정 되면서 집행가능성, 민주성, 효율성 등이 높아질 수 있다"라며 "(어린이집 CCTV연장 공약 조정 이후) 서울형 전담교사라든지 아동을 위한 사업들이 오히려 다채롭게 전개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