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더불어민주당이 극약처방으로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일부 강성 의원을 중심으로 공공연한 반대 의견이 나오는 등 좀처럼 당내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박지현 "대중정당으로 만들어야"…이재명·김동연 '동참'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며 국민 앞에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특히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지적에 대해 "팬덤정치라고 하는 것이 지금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사람의 정치적 공약과 같은 부분들을 더 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충성이 비쳐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는 민주당과 인천 계양을 보궐에 출마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지지층 결집이 절실한 상황에서 투표율 제고를 위해 읍소 전략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일선에서 선거를 뛰는 후보들이 동조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 발표 이후 이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확대해석은 경계한다"면서도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절박한 마음으로 국민 삶을 개선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 드리는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도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을 심판하시더라도 씨앗은 남겨달라"며 "회초리를 들고 꾸짖을지언정 외면하거나 포기하지는 말아달라"고 사과했다. 박 위원장의 사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뜻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최근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물자 진정 어린 읍소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러다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박 위원장을 비롯한 선대위 지도부와 일부 비대위원들이 모여 기자간담회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강경파 "사과로 선거 못 이겨…약속 지켜야"
그러나 당내 여론은 좀처럼 박 위원장 깃발 아래로 모이지 않는 모양새다. 그간 민주당의 동력으로 작용해 온 강성 지지층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내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SNS를 통해 "사과로는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 새로운 약속보다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다"라며 사실상 박 위원장을 저격했다.
처럼회 소속 다른 초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과 쇄신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표를 위해 사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보일지는 의문"이라며 "마치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으로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당과 협의한 적도 없고 지도부와 논의한 적도 없다"며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박 위원장 발언으로 당내 갈등이 격화될 우려가 있어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전날 기자회견장에는 박 위원장 홀로 나와 입장을 표명하고 쇄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김민석 통합선거대책위원회 공동총괄본부장도 SNS에 글을 올려 "(박 위원장이) 일리 있는 말씀도 했지만 틀린 자세와 방식으로 했다"며 "당과 협의되지 않은 제안을 당의 합의된 제안처럼 예고했고 '나를 믿어달라 내가 책임지고 민주당을 바꾸겠다'는 사당적 관점과 표현을 썼다"고 지적했다.
이는 박 위원장이 구체적인 쇄신안으로 '586 용퇴론' 카드를 다시 내세운 것이 무리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앞서 586 용퇴론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쇄신 방안으로 한 차례 내놓은 바 있는 데다 당시 당내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친 바 있다. 한 비대위원은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당내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꼭 지금 추진한다고 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한덕수 인준 때 강경파-신중론 갈등 구도 재현…"갈등 터질듯"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의 발언으로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내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과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 위원장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벌써부터 박 위원장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왜 박지현은 재명 삼촌을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 '박지현을 꼭 퇴출시켜야 한다', '박지현한테 문자로 총 공격을 하자' 등의 비판 글이다. 이들은 지난 20일 박 위원장이 민주당을 향해 '내부총질'하고 있다며 민주당사 앞에서 사퇴 집회를 열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은 불과 일주일 전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 가부를 두고서도 둘로 쪼개져 내홍을 겪은 바 있다. 당초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한 견제를 위해 부결 방침을 정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목잡기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신중론이 맞섰다. 상당한 진통 끝에 인준안 가결로 결론 났고 갈등은 봉합됐지만 다시금 터져나올 모양새다.
용인대학교 최창렬 특임교수는 "민주당 내에서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는 의원들이 입지를 좁히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구조적으로 갈등이 격화될 우려가 있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