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최근 경찰 통제 방안 논의에 착수한 것과 관련, 갖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따른 경찰 비대화 우려가 근거지만 행안부가 경찰에 대한 통제 논의를 자처하는 건 이례적인 일일 뿐더러, 경찰법 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당시 치안국(경찰청 전신)은 내무부(행안부 전신)의 보조기관에 속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등 정권의 부당 행위에 경찰력이 동원되고 정치적 중립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지자 1987년 민주화 이후 1991년 경찰법이 제정됐다. 경찰청은 행안부의 외청(外廳)으로 독립관청화 됐으며, 대신 경찰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경찰의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결국 경찰 통제 역할을 맡는 공식 기구는 '경찰위원회'인 셈이다. 경찰 비대화가 우려된다면 경찰위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 정석적인 방식으로 보이지만, 행안부가 또 다른 기구를 갖추는 건 '옥상옥'이자 남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가경찰委 있는데 경찰제도개선자문委? '옥상옥' 논란
2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위는 경찰과 관련한 주요 법령과 정책,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최고 결정 기구다. 지난해 경찰개혁으로 자치경찰제가 시행됨에 따라 기존 경찰위원회는 '국가경찰위원회'로 변경되고,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신설됐다. 각각 국가경찰행정과 자치경찰행정을 통제 및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이와 별개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 재가를 받은 지난 12일, '경찰 통제 방안' 마련을 위한 위원회 구성을 행안부에 지시했다. 이렇게 꾸려진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자문위)는 13일 위원 간 상견례 성격의 첫 회의를 열었으며, 20일 2차 회의를 열어 '검수완박' 대응 및 경찰 제도 개선 등 안건을 논의했다.
이처럼 경찰 통제의 주도권을 행안부가 쥐는 건 이례적으로 보인다. 당장 자격의 적절성에 대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법 제34조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무회의의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 정부조직과 정원, 상훈, 정부혁신, 행정능률, 전자정부, 정부청사의 관리, 지방자치제도,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지원·재정·세제, 낙후지역 등 지원, 지방자치단체간 분쟁조정, 선거·국민투표의 지원,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비상대비, 민방위 및 방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행안부 장관의 15개의 권한 중 '경찰'이나 '치안'에 관한 것은 없다.
행안부와 경찰청의 관계를 자세히 보려면 과거를 되짚어야 한다.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 당시 치안국(경찰청 전신)은 내무부(행안부 전신) 보조기관이었다. 하지만 1960년 3·15 부정선거 등에 경찰력이 동원되는 '정치도구화' 문제가 불거지고 4·19 혁명을 거치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1974년 치안국은 치안본부로 격상됐고 1987년 민주화 이후 1991년 경찰법이 제정되면서 내무부의 외청으로 독립했다. 내무부 장관의 치안 관련 권한은 삭제됐다.
외청은 소속을 부(部)에 두지만 독립적인 행정 업무를 집행하는 관청이다. 한 예로 기획재정부의 경우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을 외청으로 두고 있다. 각 행정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경찰청은 외청으로 독립되면서 경찰 행정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경찰위원회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위원회는 경찰청장의 임명제청 동의, 경찰의 주요 정책과 경찰 관련 법령 및 훈령·예규에 대한 심의·의결 등의 임무를 맡는다.
원칙대로라면 행안부 장관은 직접 위원회를 꾸리기 보다, 경찰위원회에 논의 요청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분석이다. 경찰법 제10조(국가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 사항 등)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이 중요하다고 인정해 국가경찰위원회 회의에 부친 사항에 대해 국가경찰위원회는 심의·의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건너 뛴 배경에는 현 국가경찰위원회의 위원 구성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총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재 7명 위원 모두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들이다.
김호철 위원장(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박경민 상임위원은 지난해 8월, 김연태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 김민문정 한국여성 단체연합 공동대표, 박록삼 서울신문 우리사주 조합장,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대표변호사는 지난 2020년 12월 임명됐다. 임기는 3년이다.
결국 현 정부의 의도에 맞는 경찰 통제를 위해 행안부 내 위원회를 새롭게 꾸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구도는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위원회가 적법성을 갖추기 위해선 행안부 장관의 치안 관련 권한을 명시하는 법 개정이 우선 이뤄져야 하지만 이 역시 경찰법 제정 취지에 어긋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자문위 권한 범위 주목…행안부-경찰委 '미묘한 긴장감'
물론 자문 성격의 위원회인데다가 경찰청은 행안부 장관 소속, 경찰위원회 역시 행안부 소속이라는 점에서 자문 논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자문위 한 관계자는 "외청이라도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소속이기에 충분히 자문 논의는 할 수 있다"며 "법에 저촉된다고 보긴 어렵다"라고 밝혔다.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을 비롯해 총경 이상 인사에 대한 제청권을 갖는다. 경찰위원회 위원에 대한 제청권도 있다. 예산 부분에서도 경찰청과 협의를 거친다. 조직 운영상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는 맞다.
다만 자문위의 통제 논의와 권한 범위에 따라 장관의 직무 권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자문위가 경찰 개혁 방안 중 하나로 지난해 출범한 국가수사본부의 인사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경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다양한 논의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안건 논의 및 추진은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정부조직법과 경찰법상 '경찰'이나 '치안'이 명시돼 있지 않은 행안부 장관의 권한 범위를 두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경찰위원회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찰법 제정 과정에서 경찰위원회를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중앙행정기관으로 설치하는 안이 논의됐지만 최종적으로는 현행과 같이 행안부 소속으로 경찰법이 제정됐다. 이를 두고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가 상당했다.
행정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대해선 모두 공감대가 있지만, 정권을 잡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경찰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야 했기에 나타난 결과"라며 "경찰은 독립과 통제를 동시에 시켜야 하기에 경찰위원회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상당한 해외 선진국들이 이러한 제도를 기반에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경찰법상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은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 인사로 꾸려지게끔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제청권을 가진 행안부 장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명목상 심의·의결기관이지만 자문기구 형태로 운영되며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불과한 상태로 유지돼 왔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또 다른 경찰법 전문가는 "경찰위원회의 위상 강화는 행안부에서 계속해서 은밀하게 견제해온 측면이 있다"며 "경찰 통제를 맡는 경찰위원회와 이를 간섭하고 싶어하는 행안부는 서로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가경찰위원회 위상 강화 및 실질화는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가 내놓은 '경찰위원회 실질화 권고안'에 따르면 경찰위를 행안부 소속에서 국무총리 직속 중앙행정기관으로 이관하고 위원장의 지위를 장관급으로 하는 한편, 경찰청장과 국수본 임명 제청권도 보유할 수 있게끔 했다. 경찰은 이러한 권고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실질적으로 이뤄진 것은 없는 상태다. 국가경찰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명문화하고 상임위원을 2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경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020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이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