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피를 뽑아 파는 서민들이 최근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소개했다.
뉴올리언스 슬리델에 사는 크리스티나 실(41)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인근 의료 기관을 찾는다.
자신의 혈장(plasma)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혈장은 혈액 속에서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을 제외한 액체 성분으로 치료에 쓰인다.
말이 '기부'이지 실씨는 사실 자신의 피를 판다. 한 달에 두 번씩 꼬박 가면 400달러(50만8천원)에서 500달러(63만5천원)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센터 안에는 '4번 가면 20달러, 친구를 소개하면 50달러를 보너스로 받는다'는 문구도 적혀 있다.
실씨가 이곳을 다닌 지는 6개월이 넘었다. 작년 9월께 생활비가 갑자기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고민 끝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평소 식료품점에서 한 번 장을 보면 150달러가 들었는데 어느새 지갑에서는 200달러가 빠져나갔고, 차 기름을 채우는 데에는 70달러가 들었다. 이전 40달러에서 무려 30달러가 늘었다.
특히 전기와 가스 등 비용은 한 달에 150달러에서 200달러가 되더니 급기야 300달러가 됐다. 물가가 급등한 탓이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8.5% 급등했다. 1981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특수교육 교사인 실씨는 1년에 5만4천달러(6800만원)을 벌지만, 남편과 이혼해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물가 상승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집 월세에 1050달러, 자동차 할부로만 250달러가 고정적으로 나간다.
작년 말 그는 자신이 신용카드를 더 자주 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급기야 빚은 1만 달러까지 늘어나 있었다. 이제 월급은 빚갚는데 쓴다.
친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치솟는 생활비에 어떤 친구는 연비가 좋은 차로 바꿨고, 또 다른 친구는 부업을 구했다.
'피를 파는' 일은 실씨에게 간단치는 않다. 생각보다 큰 바늘이 팔에 쑥 들어가면 나오는 데까지만 45분이 걸린다.
어느 때부터는 심장이 뛰고 기침이 나고 복통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를 멈출 수는 없다. 이미 '혈장 기부'로 받는 수입이 생활비의 일부가 된 까닭이다.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고, 특히 부업을 가지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곳을 찾는 이들은 실씨만이 아니다. 실씨가 방문한 날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찰 정도다.
'혈장 기부'가 가능한 것은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기부 대가를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나 연구를 위한 전 세계 혈장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공급되고, 미국에서의 이 산업은 지난 10년간 100억 달러(12조 6천억원)로 성장했다.
미시간대학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부로 지급된 금액은 5천350달러로, 2006년의 4배 수준에 달했다. 2025년 이 산업은 2016년의 두 배가 넘는 48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혈장 기부 센터도 2005년 300개에서 2020년에는 900개를 넘어섰다. 이는 대부분 남부와 중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