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은 과" 5년 마음에 담아둔 약속, 盧 만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출마를 두고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만든 '운명'이라고 했고, 5년 뒤 대권에 재도전한 것을 '숙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운명과 숙명의 삶을 거친 시간이 또 5년이 흘렀다. 노 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김해 봉하와 가까운 양산 평산으로 내려온 그의 마음은 이제 무엇으로 표현할까?
지난 10일 귀향한 이후 그는 통도사, 성당 등을 제외한 특별한 바깥 활동은 하지 않고 서재를 정리하며 밭을 일구고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그가 말한 '잊혀진 사람'으로 살고 있다.
아마도 퇴임 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인 노 전 대통령일 것이다. 실제 그는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같은 과(科·부류)라고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귀향 등 공통점도 참 많다. 문 전 대통령을 보려고 전국 각지에서 방문객들도 매일 몰려오면서 14년 전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봉하마을처럼 평산마을이 유명한 동네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많을 때는 하루에 11번이나 사저에서 나오는 등 방문객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즐겼다. 2008년 12월 겨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오겠다"며 방문객과 인사한 후 사저로 들어간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조용하게 먼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을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때마침 퇴임 후 딱 2주 만인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이 엄수된다.
"그때 다시 한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
코로나 완화로 '바보 노무현' 찾는 인파 대거 몰릴 듯, 여야 총출동
성공한 대통령인지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그는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이 40%를 넘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도 약속대로 '기분 좋게' 그를 맞아줄 이번 추도식에는 윤석열 정부 인사와 여야 지도부 등이 총출동한다.
올해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여파로 축소돼 진행했던 것과 달리 '바보 노무현'을 추억하기 위한 인파가 대거 몰릴 것으로 보인다.
바보라는 별명은 서울 지역구를 포기한 채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험지인 부산도 "야당을 찍어줘야 한다"고 외치며 연이어 출마했다가 낙선한 모습에서 만들어졌다. 코로나 이전인 10주기에는 2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문 전 대통령은 유영민 전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이철희 전 정무수석 등 청와대에서 같이 일했던 10여 명과 함께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명 47일 만에 국회 인준 문턱을 넘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진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등이 참석한다. 한 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6·1 지방선거를 9일 앞두고 여야 지도부도 집결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가 참석한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윤호중·박지현 상임선대위원장, 박홍근 공동선대위원장 등 지도부와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다. 박남춘 인천시장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과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도 봉하마을로 내려온다. 특히, 경남은 4년 전과 달리 민주당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야권 지지층을 이번 추도식을 계기로 최대한 결집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대표단으로는 허은아 수석대변인, 이달곤 경남도당 위원장, 문성호 대변인 등이 참석한다. 정의당에서는 배진교·심상정 의원, 박창진 부대표 등이 함께 한다.
상록수 울리는 추도식 주제 '나는 깨어있는 강물', 전시관 특별 개방
올해 추도식의 주제는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이다. 노 전 대통령이 원했던 소통과 통합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23일 오후 2시 봉하마을 묘역 옆 생태문화공원 잔디동산에서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다. 공식 추도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맡는다.
노무현 재단은 추도식 당일 오는 8월 말 개관 예정이던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을 특별 개방한다. 노 전 대통령의 관련 사진과 기록물 등 유품과 그의 국정철학, 업적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