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정비사업으로 꼽히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현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공단이 대형 장비 등을 철수하며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공단은 7천억원 규모의 사업비 대출금에 대한 보증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밝히며 조합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모양새여서 조합의 대응과 사업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시공단, 타워크레인 철거 작업 착수…건설업계 "장기전 대비"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사업지 일부에선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공단 관계자는 "6월부터 현장에 있는 타워크레인을 철수하기로 건설사간 잠정 합의했지만 해체 일정은 회사별로 상이하다"며 "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이 총 57대로 지금부터 계획을 세우더라도 타워크레인을 모두 해체하기까지는 2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재설치 기간은 해당 시점의 타워사의 기종별 보유 대수에 따라 상이하므로 확정할 수 없다"며 "최악의 경우 보유 장비가 없어 구매할 경우 그 기한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시공단은 타워크레인 해체와 함께 내부 자재 반출도 계획하고 있다.
시공단의 이런 조치는 둔촌주공 공사중단 사태 장기화에 대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타워크레인은 수급부터 설치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에 잠시 장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철수하는 장비는 아니"라며 "공사중단 사태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공단이 간접비를 줄이며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타워크레인을 철수할 경우 장비 대여 비용과 그에 따른 보험료, 장비 관리 직원 절감이 가능하다. 시공단에 따르면 공사중단 기간 중 발생하는 유지비용은 4개 사를 합해 월 150억~200억원이다. 여기에는 타워크레인과 호이스트 등 장비 관련 비용과 유치권 관리 용역, 시설관리 용역, 직원 및 가설 전기, 설비 등이 유지비용에 포함된다.
안전도 타워크레인 해체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은 재설치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6개월 이상 공사가 중단됐다고 판단했을 때 해체작업에 나선다"며 "공사가 중단되면 공사가 진행될 때만큼 장비가 관리되기 어렵고 특히 장마와 태풍때 멈춘 타워크레인을 현장에 두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장비를 철수한다면 그 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시공단이 조합과 사실상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양측이 원만하게 합의해서 재시공에 들어가더라도 입주 시점은 수년은 더 늦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대주단, 조합-시공사 합의시 사업비 대출 연장…대위변제 후 구상권"
시공단은 조합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7천억원 규모의 사업비 대출금에 대한 보증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시공단 관계자는 "조합이 대주단에 사업비 대출 연장해달라고 요청했고, 대주단 입장은 사업비 대출 연장은 조합과 시공사업단간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현 집행부와 협상이 잘 되지 않고 있어 시공단은 대위변제 후 구상권 청구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조합은 2017년 시공단 연대보증으로 NH농협은행 등 대주단으로부터 7천억원의 사업비 대출을 받았다. 오는 8월 해당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데 시공단이 연대보증에 나서지 않을 경우 대출 연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대출 연장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시공단이 대출을 갚은 뒤 이후 조합에 해당 금액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게 된다.
시공단이 타워크레인 해체 착수와 사업비 대출 보증 연장 불가 방침까지 밝히면서 공은 조합으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비 대출 연장을 위한 연대 보증은 대출 만기 직전까지만 양측이 합의를 하면 되지만, 타워크레인의 경우 수급을 포함해 재설치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 빨리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 내부에서는 하루빨리 시공단과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과 시공단과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일각에서는 현 조합 집행부를 교체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조합원 수가 6천여명에 달하는 만큼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합과 시공단은 2020년 6월 시공단과 전임 조합 집행부가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공사해당 계약은 당초 1만1106가구였던 규모를 1만2032가구로 늘리고, 상가 공사까지 포함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2조6708억원이던 공사비를 2020년 3조2294억원으로 5586억원 증액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 조합 집행부는 전임 조합 집행부가 일반분양가 예상금액을 부풀리고 공사비 증액 의결을 한만큼 해당 공사비 증액 계약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 계약에 대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6일 총회를 열어 문제의 공사비 증액 계약 의결을 취소했다. 반면 시공단은 '당시 계약이 조합 총회 의결을 거쳤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은만큼 문제가 없는데 조합이 공사의 근거가 되는 계약을 계속 부정하고 있다'고 맞서오다가 15일 0시부로 공사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모두 철수하고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당초 조합은 시공단이 공사 중단을 10일 이상 계속할 경우 계약 해지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가 한 발 물러서 공사비 증액을 인정하고 시공사업단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공단은 △공사 변경계약 무효소송 취하 △지난달 16일 조합 총회에서 의결한 '2019년 12월 7일 공사계약 변경의 건 의결 취소'를 철회하지 않는 한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