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캐릭터 중 펜싱 국가대표 선수 고유림은 언제나 생생했다. 보나는 노련하게 꼭 어딘가 살아 있을 것만 같은 현실감을 고유림에 덧입혔다. 아이돌 그룹 멤버가 아니라 신인 배우인 줄 알았다는 평가가 괜히 들리는 게 아니다.
침착한 말투로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보나의 완벽주의자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하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좋은 점은 그대로 흡수한다. 마치 유유히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처럼 보나는 겁먹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전해왔고, 또 발전할 준비가 충분히 돼있는 사람. 그것이 우주소녀 그리고 배우 보나를 정의할 수 있는 짧은 문장이다.
지칠 법도 한데 아직 20대인 보나는 한 번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다.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서 마땅히 휴식기 없이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굳은 심지는 할 수 없는 일엔 집착을 버리고, 해야만 하는 일은 꼭 해내도록 뿌리를 내렸다. 다음은 보나와의 화상 인터뷰 일문일답.
Q 오로지 펜싱 외길 국가대표 고유림 캐릭터의 감정선을 어떻게 구축했는지 궁금하다. 실제 본인 고등학교 시절과도 비슷했을까
A 유림이가 엉뚱할 때가 있어서 대사를 못 칠 때가 많았다. 초반에 희도랑 만났을 때 날카로운 모습들은 전 아직 느껴보지 못한 감정선인 듯하다. 유림이는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이다. 유림이 덕분에 저도 많이 단단해졌다. 유림이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많이 울고 웃은 만큼 제가 했던 어떤 캐릭터보다도 가장 애착이 가서 쉽게 보내지 못할 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저는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어서 추억이 많지는 않다. 친구들끼리 우정 같은 걸 많이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걸 채운 거 같다. 기억 조작이 된 느낌이다.
A 태리 언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좋았다. 계속 대립을 하다가 친한 장면들 찍으니까 너무 좋았다. 드라마 안에서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이런 것들. 좋은 자극도 많이 받았다. 첫 방송을 할 때 언니는 나희도라는 캐릭터를 차근차근 쌓아서 완성해내더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는 직업 특성상 최단 시간 내에 최대 효율에 집중하고 살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조금씩 쌓아 올려서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내가 한 최선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깊이 있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졌다.
Q 펜싱 배우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적성에는 잘 맞았는지
A 정말 열심히 배웠다. 태리 언니가 4개월 먼저 배우고 있었고 뒤늦게 합류해서 3개월 정도 매일매일 아침에 나가서 두 시간 연습하고 경기도 자주 했다. 펜싱 자체가 고강도 훈련이다 보니까 몸을 많이 쓰게 된다. 운동선수가 아닌데 갑자기 고강도로 하니까 허리와 무릎에 둘 다 주사를 맞아가면서 배웠다. 그렇게 절뚝거리다 경기 하면 이기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웃음) 열심히 해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Q 아이돌 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 사이 균형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 듯한데. 드라마 직후에 또 엠넷 경연프로그램 '퀸덤2'에 나가서 활약 중이다
A 눈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라 매번 그룹 활동할 때 최선을 다하고 배우 활동 할 때는 배우로서 열심히 한다. 이런 점들을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서 감사드리고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그룹 공백기가 생기니까 최대한 빠르게 보여드리려 노력한다. 공백기가 장기화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쉬는 기간을 두지 않으려는 거다. 당분간은 우주소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퀸덤2' 촬영이 겹쳐서 조금 아쉽다. 무대가 하루 시간 맞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연습을 통해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니까.
A 직캠을 보면 너무 유림이와 달라서 좀 부끄럽기도 했다. 이런 좋은 반응들이 무대 영상까지 이어지는 거 같아서 좋았다. 우주소녀 무대도 좋은 게 많다. 실시간으로 앱에서 팬 분들이 메시지를 주고 받는 거나 응원글 등을 보기는 했는데 요즘에는 예전보다 반응이 많아지다 보니 좋은 글들도 하루 종일 보고 있더라. 그래서 좋은 글이든 안 좋은 글이든 집착하는 거 같아서 안보고 있었다. 알고리즘으로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Q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번아웃'이 올 시간도 없었을 것 같다
A 다행히 성격이 깊게 빠지거나,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거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 포기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웃음) 지치거나 할 때도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느낌이다. 일단 제가 열심히 하는 이유는 최대 효율을 내지 못했을 때 자존심이 상하는 게 크다. 못하는 게 싫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누가 시켜서 이왕 할 거면 잘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하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지'란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다.
Q 결과적으론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확실히 존재감을 각인 시킨 것 같다. 스스로 어떤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고생했지만 지금처럼 좋은 반응이 오니 보람찼다. 그냥 경험치만 쌓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좋은 생각을 하게 된 게 기회였다. 주변에 물어봐도 항상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 않으니까. 깨달음이 많은 작품이어서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뭔가 아직은 제가 볼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선배들이나 감독님, 작가님이 생각할 때가 있다. 최대한 모르는 건 많이 물어보려고 했다. 모니터를 위해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보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정확한 방법을 잘 모르겠는데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