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고교 진학 포기해야 했던 신유빈, 고민하는 韓 전설의 딸 ②사교육에 부담 느는 학부모, 쉬지 못하는 학생 선수 ③'韓 체육 딜레마' 성과 없인 지원 없고, 지원 없인 성과 없고 ④韓 장애인 체육, 외형적 발전에도 접근성 부족…여전히 아쉬운 관심 ⑤건강한 전문 체육 시스템 구축을 위한 새 정부의 로드맵은? |
지난해 도쿄올림픽 이면에 깔렸던 한국 스포츠의 키워드 중 하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국가 주도의 체육 정책, 승리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온갖 폐해는 지난 수년간 한국 스포츠를 스스로 곤경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선수단은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은 4개, 동 10개)로 종합 15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7개 이상을 획득해 종합 10위 이내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스포츠 팬들은 더 이상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김연경이 이끈 여자 배구와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까지 1등만큼 4등도 많은 박수를 받았고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고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선수들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공부하는 운동 선수를 만들자는 새로운 방향성은 시대의 공감을 얻었고 체육계도 이런 움직임에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라이애슬론 고(故) 최숙현의 안타까운 사례는 선수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부작용도 낳았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지난 2019년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학기 동안 주중 대회 폐지, 합숙소 폐지 등을 골자로 한 2차 권고안을 발표했을 때부터 체육계의 반발이 시작됐다.
체육인들은 "전반적인 취지와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체육 현장의 실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며 지적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작년 도쿄올림픽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이에 대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이 회장은 "학교 체육 정상화 방침에는 근본적으로 동의하나 엘리트 선수에 대한 수업 참여와 합숙 금지 등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엘리트 선수 생활을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탁구 신유빈, 도쿄올림픽 이후로 대학 진학을 미룬 체조 여서정을 언급했다. 현 교육 시스템에서는 국제 대회 출전에 제약이 있는 까닭에 진학을 포기하거나 미룬 사례다.
체육계는 교육부가 지난해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회 및 훈련 참가를 위한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자 또 한번 크게 반발했다. 올해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초등생은 0일, 중학생 10일, 고교생은 20일로 축소하는 방안이다.
"학생 선수들의 상황과 현실을 고려한 정책을 추진해달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가뜩이나 학교 운동부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학생 선수가 운동의 꿈을 포기하거나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엘리트 스포츠 현장에 있는 선수에게는 운동이 직업이다. 선수 생명은 짧고 평생 직업이 아니기에 선수들은 일반 직장인보다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당연히 마련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일반 학생들과 다른 체육계 현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 축소를 비롯한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발표했을 때 체육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인수위 체육 정책 분야 위원들은 지난 3월부터 여섯 차례 체육계 간담회를 개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새 정부의 체육 정책을 담당한 인수위 승재현 전문 위원은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출석 인정 일수 개선, 주중 대회 및 주말 대회 자율화 방안 등 학습권을 보장하면서도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스포츠혁신위 권고 이전 수준인 '연간 수업 일수의 3분의 1' 범위 안에서 종목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또 인수위는 선수 및 지도자 등의 처우 개선,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 후보 선수 지원 확대를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내걸었다. 그러면서도 메달리스트 중심의 복지 정책을 체육인 전체로 확대하는 보편적 복지 전환 등 건강한 전문 체육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공약을 내세웠다.
더불어 인수위 구성 당시 나왔던 체육 관련 정책 발언들을 종합하면 엘리트 스포츠를 되살리면서 생활 체육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 생활 체육 참여 활성화를 위한 스포츠 마일리지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승재현 위원은 "전문 체육과 생활 체육의 균형을 위해 '모두를 위한 스포츠' 및 스포츠 기본권 보장을 차원에서 '촘촘한 스포츠 복지 실현'을 체육 정책 기조로 했다"고 밝혔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다.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한 가운데 관건은 체육계의 환영을 받은 다양한 정책이 공약이 빌 공(空)자의 공약에 그치지 않도록 잘 추진하는 것이다. 더불어 운동 선수 인권 보호를 위한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제도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부가 13일 문체부 2차관으로 조용만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임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용만 차관은 예산과 재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대한체육회에서 합리적인 업무 처리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체육 현장에 몸담았던 인사를 체육 행정 전반의 실무를 담당하는 문체부 2차관에 임명하면서 체육계와 소통이 강화되고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체육계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극에서 극으로 치달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이전 정부의 체육 정책, 과연 새 정부가 체육계의 진정한 균형을 잡고 발전을 이룰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