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라는 건 내 안의 무언가를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이고, 이는 결국 외면하려 했던 내면을 마주하는 시간으로 나아간다. '매스'는 상실, 그리고 용서와 치유 사이를 메워가는 절절한 자기 고백과 그들을 둘러싼 슬픔이 결국 치유로 이어지는 영화다.
아이를 잃은 부모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로 마주한 두 쌍의 부부, 린다(앤 도드)와 리처드(리드 버니) 그리고 게일(마샤 플림튼)과 제이(제이슨 아이삭스) 네 사람은 그 날 이후로 6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오후 교회 한 켠에 있는 방에 놓인 1개의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용기를 내어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마주한 이들이지만 결국 마음에 품고 살던 감정들이 터지며 슬픔, 분노, 절망, 후회 등 격렬한 감정들이 폭발하게 된다.
보통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사건의 상황을 다루거나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매스'는 사건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오며 어떻게 버텨왔는지, 상실과 슬픔이 어떻게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 머무르는지를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상실의 주체를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정확히는 가해자의 유족으로 넓혔다는 점이다. 총기 난사 가해자를 아들로 둔 부모는 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비록 가해자지만 역시나 자식을 잃은 슬픔과 절망이 가해자 부모에게도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독은 인물들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은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두 부모,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의 이야기와 그들의 표정을 통해 어떤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무엇을 잃었고 또 얼마나 큰 상실의 슬픔을 겪었는지 마주하게 만든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두 부부 사이 미묘한 긴장감에 휩싸인 관객들은 그들을 둘러싼 사연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긴장을 자아내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고, 그들의 감정과 눈빛, 행동을 시시각각 뒤쫓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들을 조용히 숨죽인 채 스크린에 몰두하게 만든다.
관객들을 긴장에 휩싸이게 했던 사연, 즉 총기 난사 사건으로 다수의 아이가 죽고 총을 난사한 아이마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드러난 후 피해자 부모는 '치유'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파고들며 게일과 제이를 괴롭힌 상처는 쉽게 치유로 가지 못하고 자신들뿐 아니라 린다와 리처드의 마음 역시 할퀴어대기 시작한다.
이들은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사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게일과 제이는 자식을 앞서 떠나보냈다는 부모로서의 상실과 죄책감, 린다와 리처드는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잘못으로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회의감 등이 그것이다. 그들이 겪는 감정과 고통은 모두 '부모'이기에 느끼는 것들이다.
그리고 상대를 용서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고 치유 받는 것은 물론, '살인자의 부모'라는 주홍글씨를 지닌 채 상실감조차 드러내지 못한 채 죄의식에 짓눌렸던 린다와 리처드 역시 치유 받게 된다. 이렇게 용서와 치유의 순간에 다다를 때, 네 명의 인물들에 마음 깊이 다가갔던 관객들 역시 치유의 감정, 즉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매스'는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네 명의 대화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접근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방식보다 확실하고 깊이 있게 슬픔과 절망을 지나 용서와 치유로 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배려 깊게 보여준다. 카메라 또한 이에 동참해 조용히 네 인물을 비춘다.
각본과 연출도 훌륭하지만 '매스'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대화로 이뤄졌고, 그만큼 배우들이 중요한 영화다. 앤 도드, 리드 버니, 마샤 플림튼, 제이슨 아이삭스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111분을 장악하며 관객들을 슬픔과 절망을 오가게 만든 후 결국 치유로 이끈다.
111분 상영, 5월 18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