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2일 새벽 긴급 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 발병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비상방역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비상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마스크를 쓴 모습이 없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채 정치국 회의장에 입장한 장면은 이번 사태의 파장과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이날 저녁에 평양 순안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발사인데, 코로나19 극복이라는 내치와는 별개로 국방력 강화 목표를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한의 코로나 확산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은 수준으로 진행될 경우 주민들의 피해와 동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코로나 극복과 무력시위 모두를 추구하는 김 위원장은 위기관리의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서게 됐다.
北 코로나19 첫 인정…전국적 확산 추정
북한은 코로나19가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지난 2020년 2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북한은 그러면서 "인민들의 생명 안전을 사수하는 방역대전"에서 '코로나19 확진자 0명'임을 김정은 수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선전해왔다.
그런데 인민들의 생명안전 보장이라는 수령의 치적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코로나19의 전국적인 전파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발병이라는 중대 사건이 발생한 만큼, 상황 극복에 총력 집중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 일정도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다.
北 핵실험 연기 관측 비웃기라도 하듯 미사일 발사
그러나 북한은 이런 관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날 오후 6시를 넘어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20초 간격으로 발사했다.군 당국에 따르면 이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360km, 고도는 약 90km로 탐지됐다. 충남 계룡대를 타격 범위에 두는 대남용 무기에 해당하는 만큼, 국방력 강화 목표와 함께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반응을 시험하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이 오미크론의 확산에 대응해 북한 전역의 시·군에 봉쇄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도 무력시위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핵 무력 고도화를 위한 무기개발과 시험발사는 계속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일종의 김정은식 정면 돌파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일 미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 북한의 7차 핵실험도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코로나 확산으로 침체된 사기진작을 위해 오히려 핵실험 가능성"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행태는 코로나19 대응과 국방력 강화가 별개라는 인식을 보여 준다"며, "이런 분리전략이 유지된다면 한미정상회담 전후의 핵실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한에서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7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오미크론 확진자 발생으로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는 오히려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로 주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핵실험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는 얘기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회의에서 "악성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적은 비과학적인 공포와 신념부족, 의지박약"이라면서, "높은 정치의식과 고도의 자각성"을 주문한 것도 코로나 확산 속에 침체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면 돌파 의지에도 관건은 코로나 확산 규모
그러나 김 위원장의 정면 돌파 의지에도 불구하고 관건은 오미크론의 확산 규모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발생한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BA.2'는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50%가량 강하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적이 없고, 보건의료 인프라도 매우 열악하다.
북한 스스로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고 주장할 만큼 외부 접촉이 없었던 북한 주민들의 면역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에 수도 평양의 한 단체에서 오미크론 감염자가 나왔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곧 평양의 집단 감염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북한은 지금 모내기철을 맞아 14살 이상 군인들과 학생들이 농촌에서 집단 숙식을 하고 있는데, 감염자가 단체에서 나왔다는 것은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태영호 의원은 또 " 김 위원장은 비상시를 예견해 비축한 의료 예비품을 이번에 풀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일반 병원에 있는 약이 이미 고갈돼 전쟁 비축용을 풀겠다는 뜻"이라며, "김정은은 혼자 돌파한다고 하겠지만 한계점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몇 주는 김정은 위기관리 능력의 최대 시험대"
북한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감안할 때 코로나19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강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김 위원장은 이번 당 정치국 회의에서 "당 및 정권기관들에서 강도 높은 봉쇄 상황 하에서 인민들이 겪게 될 불편과 고충을 최소화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며 사소한 부정적 현상도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인민들이 겪을 불편과 고충의 최소화는 바로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민심의 동요를 차단하라는 지시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지시에도 북한이 핵실험 등 고강도 전략 도발을 하는 상황에서 오미크론 확산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오미크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경우 김정은 정권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통제 장기화에 따른 경제 활동 위축으로 민생이 악화되고 이에 따른 민심의 동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향후 몇 주의 시간은 김 위원장의 위기관리능력 최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발병이 닫힌 대화의 문 여는 촉매제 될까?
북한은 이번에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대내외 매체 모두를 통해 공개했다.북한 인민들에게 공개해 철저한 방역 통제에 협조할 것을 주문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지원 가능성도 열어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의 코로나 발병과 관련해 "적극 도울 뜻이 있다"며, "협력방안을 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대북특사의 방북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아보인다.
다만 북한은 이번에 당 정치국 회의를 마치며 '중요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해 오는 6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소집을 결정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6월 상순 당 전원회의가 백신 협력을 매개로 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중요한 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한다. 북한의 코로나19 발병이 과연 대화의 문을 여는 촉매제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