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고교 진학 포기해야 했던 신유빈, 고민하는 韓 전설의 딸 ②사교육에 부담 느는 학부모, 쉬지 못하는 학생 선수 ③'韓 체육 딜레마' 성과 없인 지원 없고, 지원 없인 성과 없고 ④韓 장애인 체육, 외형적 발전에도 접근성 부족…여전히 아쉬운 관심 ⑤건강한 전문 체육 시스템 구축을 위한 새 정부의 로드맵은? |
2년 연속 펼쳐진 스포츠 빅 이벤트. 코로나19로 2020년에서 지난해로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과 지난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스포츠 열기가 이어졌다.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대회에 걸린 금메달 5개 중 4개를 따내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최강임을 입증했다. 김연경이 이끈 여자 배구 대표팀과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 등은 비록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뜨거운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선 편파 판정을 이겨낸 쇼트트랙이 '효자 종목'이었다. 한국 선수단이 베이징올림픽에서 거머쥔 금메달 2개, 은 5개, 동 2개 중 2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이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메달 종목 다변화와 저변 확대는 여전히 한국 체육계의 딜레마다.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전체 33개 종목 중 28개 종목, 총 232명의 선수를 보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6개 종목 11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이중 메달을 딴 종목과 선수는 극히 일부다.
대표팀 종목 간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엘리트 체육으로 성과만을 중시했던 한국 체육은 상대적으로 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최근 정책은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 체육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학교 체육과 사회 전반의 체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성과보다는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현장은 아직 이런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생활 체육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다. 하지만 종목 중에서도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인지도 차이는 크다. 성과 없이는 지원도 쉽지 않다. 기업이나 지자체의 후원이 없다면 국가대표 선수 생활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키 선수 박제언(29·평창군청)은 누구보다 이런 환경을 잘 안다. 스키 점프와 크로스 컨트리를 합한 국내 유일 노르딕 복합 국가대표인 그는 2018 평창과 2022 베이징올림픽을 치렀다. 한국에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이었다. 박제언은 한국 노르딕 복합의 개척자였다.
그러나 박제언은 최근 향후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박제언은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선수로서 가장 힘든 부분에 대해 "재정적인 지원"이라고 말했다. "부모님도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라 자비가 많이 드는 것을 알고 시작했지만 국가대표가 돼도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박제은은 "자비를 동원해 훈련했고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이번 시즌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노르딕 복합) 대표팀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이런 점들이 운동 선수로 가장 힘든 것 같다"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평창올림픽 이후 여러 지원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태극 마크는 달았지만 정상적인 훈련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훈련도 쉽지 않은 가운데 베이징올림픽을 치렀고 성적은 저조했다. 박제언 외에 다른 선수조차 없는 현실에서 힘들게 일군 대한민국 노르딕 복합의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
박제언은 "(상황이) 이 정도까지 심할 줄 몰랐다"면서 "내가 '20년 동안 왜 운동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계도 걱정을 해야 하는데 젊었을 때는 '그냥 올림픽을 꼭 나가고 싶다. 잘하고 싶다. 잘해보자' 이런 게 있었지만 요즘에는 다른 생각이 많아진다"면서 힘겨운 생활을 털어놨다.
세팍타크로는 다른 단체 종목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든다. 여기에 생활 체육으로 널리 자리를 잡은 족구 덕분에 인지도도 나쁘지 않다. 덕분에 프로 리그는 없지만 전국 체전을 준비하면서 팀을 꾸리기도 좋다. 물론 선수들의 처우는 야구, 농구, 축구 등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15개의 실업팀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은 한국 세팍타크로만의 장점이다.
비록 연기됐지만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대표팀의 코치는 정식 ID 카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공식적으로 선수와 감독 몫으로 나온 ID카드가 전부인 까닭이다. 함께 훈련한 코치와 트레이너 등은 별도로 항공권과 숙박을 신청해야 한다. 정식 ID 카드가 없기 때문에 선수들 관리도 경기장 밖에서만 할 수 있다.
대한세팍타크로협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회에 참가하려면 선수와 지도자인 감독과 코치가 가야 한다"면서 "그러나 인기 종목과 금메달을 따는 종목에 비해 우리는 ID 카드가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비주류 종목이지만 환경이 더 열악한 (카바디 등) 다른 종목에 비하면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라면서도 "인기 종목에 비해 우리가 좀 많이 소외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가대표가 직업은 아닙니다."
회원 종목 단체를 관리하는 대한체육회도 역시 어려움이 있다. 한정된 예산에서 모든 종목을 똑같이 지원하고 혜택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모든 종목이 인기 종목일 수 없다"면서 "해당 국가의 여건과 국민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야구와 축구는 인기 종목이지만 유럽권은 야구에 관심이 덜하고 미국은 축구에 관심이 적은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들이 모든 종목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그때는 규정에 맞게 지원을 한다"고 언급했다. 특정 종목에서 일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규정대로 지원해야지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체육회의 입장이다.
현재의 상황은 과도기라는 분석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체육 정책은 쉽게 말해 '국위 선양'이었다"면서 "어떻게든 스포츠로 국가를 세계에 알려서 그걸 엮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개인이 행복감을 느끼며 만족하고, 국민 모두가 스포츠로 건강한 삶을 가지고 행복해지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국가대표를 해서 메달을 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면서 "프로 선수도 국가대표가 직업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업으로서 스포츠는 있지만 직업으로서 국가대표를 생각하는 것에는 다소 오류가 있다"면서 "이제는 국민 모두가 건강하게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라며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기 종목과 메달 등 전략 종목에 대한 지원이 비인기, 비주류 종목과 같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새 정부는 과연 한국 체육의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또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