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는 죽는가?…지금의 고대는 진정한 고대 아니다

잇단 사태로 ''고대정신'' 희석…약자, 소외된자 배려해야

이명박정부 들어 고려대가 관계, 정계, 언론계, 경제계, 교육계까지 단골로 등장하는 학교가 됐다.

이 대통령이 졸업했다는 이유부터 좋지 못한 여러 가지 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학교가 됐기 때문이다.

고대 역사 백 년만에 최초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은 분명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이나, 그 순간부터 고려대와 고대 출신들은 주변의 관찰과 질시(?)의 대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단성이 강한 학교인데 최고 권력자까지 고려대 출신이니 권력기관 쪽에 고려대 출신들이 대거 진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고려대 출신들은 이명박정부 들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다른 학교 출신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항간에는 이 정권에서는 영남, 그것도 대구·경북(TK) 출신이거나 고려대를 졸업하지 않았으면 출세하기 어렵다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TK에 고려대 출신이면 금상첨화라는 웃지 못할 얘기가 관가와 정계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말이다.

물론 과연 그런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고려대 출신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고 항변한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을 비롯해 상당수 고려대 출신들은 "대통령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고려대 출신이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고 정권의 중심에서 권력을 농단하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1999년 장관 가운데 7명, 30%가량을 채웠던 게 고대 출신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억울할 수도 있다.

그해 6월 옷로비 파문 당시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이 물러나고 김정길 변호사가 법무장관으로 추천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그를 낙점할 때 김중권 비서실장은 이렇게 진언했다. "김 변호사를 법무장관에 앉히면 또 제가 고대 출신을 천거했다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이에 DJ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일을 잘하면 어느 학교 출신인지 따지지 않고 쓰는 겁니다"라고 일축했다 한다.

고교 학맥이 뚜렷하지 않던 김중권 씨가 고대 출신들을 DJ에게 많이 천거한 것은 사실이었다. 동지상고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도 고대 출신들을 대거 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고대 졸업생들 사이에선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명박 정부의 고위 관료들에 대한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고대 출신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고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대는 주시의 대상이 됐고 ''고대가 말아먹는다''는 비난의 비아냥들이 술자리의 단골 메뉴가 됐다.

비이성적이고 현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리라고 항변을 할지언정 그들의 말 속에는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한국적 정서와 그 무엇(?)이 있다.

고대와 고대 출신들은 자숙하고 겸손하라는 뜻일 것이다.

◈ 특목고 출신 우대 안했다 ''우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고려대가 보여준 형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올 대학입시에서 특목고 출신들을 우대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고려대는 짧지 않은 한국의 대학사에서 정의와 자유,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고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대학 아닌가.

그런 고려대가 작금에 보인 형태는 약자가 아닌 강자, 돈을 가진 쪽으로 달려가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선발해 우수 인재로 만든다는 목적이 있겠으나 꼬마 때부터 교육열이 높거나 좀 여유있는 부모를 만나 선행학습을 해 특목고를 간 학생들을 우대한다면 1980년대, 아니 1990년대 중반까지 고대에 입학한 시골 출신 고대생들은 고대라는 학교를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세운 학교에 걸맞게, 민족 고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서울대가 시행하고 있는 농어촌 출신과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입학 우대 카드''를 먼저 내밀었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고려대가 시종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데서 정정당당함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의 진정한 스승이던 조지훈 선생은 4.19 혁명의 불을 지피는데 크게 기여한 4.18 시위를 하다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투성이 돼 학교로 돌아온 고대생들에게 이런 말로 격려했다.

"네가 너희들 맘을 다 안다. 너희들은 정의로웠다. 맹호(고려대 상징)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1980년대초 고대 정경대 학장을 지낸 조동필 교수 역시 학생들의 귀가 따갑도록 고대 정신을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이 땅의 갖지않은 자, 소외받은 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의 정신을 가지라"고 말했다.

◈ 출교처분 복학생에 ''무기정학''

과연 고대가 그의 당부처럼 약자들을 배려하고 있는지 이 시점에선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단적인 예가 학내 문제를 일으키다 교수를 감금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출교시키고 퇴학 처분을 내린 것이다.

학생들이 잘못한 것은 맞다. 젊은 혈기를 잘못된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는 사형이나 마찬가지인 퇴학 처분을 내리는 게 온당한가.

또 복학생 7명에게 다시 무기정학이라는 징계 조치를 했다.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고려대는 잘못된 학생들이 잘못을 빌고 뉘우치면 그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그런 학교였다.

지난 1980년대 초 고(故) 김상협 총장은 서슬퍼런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총장 들으라고 일부러 욕을 해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교정을 거닐었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심이 절로 나오게 만든 것이다. 역대 고대 총장은 교육계의 큰 어른들이 많은 때문인지 이름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처신을 했다.

대학 총장이란 가정으로 치면 아버지나 마찬가지다. 아들이 잘못했다고 ''패륜죄''를 묻는 아버지가 몇이나 있을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참척(慘慽)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려대와 고대 출신들에게 쏠린 주변의 시선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번쯤이라도 가늠해보면 작금의 이런 사태들이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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