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10일 취임식을 앞둔 가운데 초대 국무총리 직을 비운 채 내각 구성을 강행하는 안을 검토하면서 여야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비토' 의견을 낸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대체자를 찾는 대신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새 정부 초기부터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 정부 초대 내각을 통솔할 한 총리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부적격 의견'을 밝히면서 윤 당선인 측은 총리 자리를 공석으로 둔 채 내각 인선을 강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8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호남 출신으로 민주당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한 후보자를 초대 총리로 추천한 것 자체가 협치의 시그널이었는데, 이를 거부하면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윤 당선인의 또 다른 측근 관계자도 "새 정권의 발목잡기를 목적으로 인준을 부결시키면 총리 없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당선인 측 내부에선 민주당이 총리 후보 인준을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거취와 연계해 초대 내각 흔들기에 나섰다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3일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이른바 '방석집 논문 심사'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지만, 민주당은 '아빠찬스' 논란에 휩싸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오는 9일 청문회를 앞둔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등을 낙마 대상으로 올린 상태다. 특히 윤 당선인의 검찰 재직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 후보자에 대해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새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과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의 정치적 타협 속에서 고심 끝에 윤 당선인 측은 사실상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초대 내각의 절반을 임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쪽 짜리' 새 정부가 출범하는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는 게 윤 당선인의 의중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반대로 인해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경우, 장관 자리를 비워두고 당분간 차관 체제로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헌법 제87조에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총리의 제청 없이는 임명을 강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각 인선 과정에서 여야의 갈등이 분출되며 이같은 충돌이 예견된 만큼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김부겸 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직후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김 총리가 추경호 경제부총리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해 임명한 뒤 추 부총리가 총리 권한 대행 자격으로 다른 장관들을 제청하는 안이 거론된다. 추 부총리와 이정식 고용노동부‧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화진 환경부장관 후보자 등에 대해선 민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에 동의했다.
새 정부 출범 국면에서 민주당의 '발목잡기'에 대한 역공과 별개로 일부 후보자들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녀들의 의대 편입 과정에서 '아빠찬스' 논란이 불거진 정 후보자의 경우엔 '조국 사태'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온 터라 윤 당선인이 전면에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 당내에서도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단체들이 최근 정 후보자의 임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적극 지원에 나서자 윤 당선인 측도 임명 강행 수순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의 한 핵심 측근은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의사단체에서도 정 후보자 임명을 촉구하고 나서지 않았냐"고 반문한 뒤 "임명을 철회할 만한 흠결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진 사퇴한 김인철 후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정된 후보를 임명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나머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 강행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윤 당선인은 국회에 오는 9일까지 박진 외교부‧원희룡 국토교통부‧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다. 9일에는 한 법무장관‧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된다. 오는 11일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김현숙 여성가족부, 12일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끝으로 청문 정국은 마무리될 예정이다. 당내 관계자는 통화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부 출범 초기부터 민주당과 크게 한번 격돌할 것 같다"며 "윤 당선인 특유의 정면 돌파가 정치권에선 통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