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과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등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유력 대선주자들이 다음달 1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민심의 향방을 확인할 '대선 2라운드' 개막을 알렸다.
조기등판 李 "위험한 정면 돌파 결심, 승리 이끌 것"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두 달여 간 두문불출해오던 이재명 고문이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고문은 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태로운 지방선거 상황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깊은 고심 끝에 위기의 민주당에 힘을 보태고 어려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위험한 정면 돌파를 결심했다"며 인천계양을 지역구 출마 사실을 알렸다.그는 "대선 결과의 책임은 제게 있다. 책임을 지는 길은 어려움에 처한 당과 후보들에게 조금이나마 활로를 열어주고 여전히 TV를 못 켜시는 많은 국민들께 옅은 희망이나마 만들어드리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던져 인천부터 승리하고 전국 과반 승리를 이끌겠다"고 공언했다.
이 고문의 조기 등판은 이번 지방선거, 그리고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 판세가 민주당에 매우 불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이번 선거 기간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임기가 시작되면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선거에 반영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최근 민주당이 민생 정책 대신 이른바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면서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급 무게감을 지닌 이 고문이 등판해 다른 지역 선거를 지원 사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대선에는 패배했지만 자숙하며 책임을 지기보단 당을 구하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문도 "모든 것을 감내하며 정치인의 숙명인 무한책임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패장' 이미지가 남아있는 이 고문의 조기 등판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란 측면도 있다. 이 고문은 "전국 과반 승리를 이끌겠다"고 공언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상당한 후폭풍이 일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 고문의 조기 출마가 '방탄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데다 최근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에 대한 수사 역시 속도가 붙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사용하겠다는 속내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이 고문 출마 선언 이후 바로 논평을 내고 "국민이 이미 선택하셨고 대선의 결과로 엄중히 심판하셨음을 진정 모르는가"라며 "진정으로 책임의 길에 나서고 싶다면 선거에 나갈 것이 아니라 성실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安, 李 겨냥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 무책임의 극치"
한편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경기 분당갑 지역 출마에 나서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지난 6일 인수위 해단식 이후 바로 출마를 선언한 것은 그간 당 안팎으로 존재감을 부각하지 못한 안 위원장이 국민의힘 내에서 입지를 키워나가기 위한 첫 단추로 풀이된다.안 위원장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분당갑 지역은 제2의 고향"이라며 "분당뿐 아니라 성남시와 경기도, 나아가 수도권에서의 승리를 통해 새 정부 성공의 초석을 놓겠다는 선당후사의 심정으로 제 몸을 던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도민과 시민의 심판을 피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은 주민에 대한 참담한 배신 행위이자 정치에 대한 무책임의 극치"라며 같은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고문에 대한 견제구도 잊지 않았다.
안 위원장은 대선 막판 국민의힘과 후보 단일화를 통해 대선 승리에 기여했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맡았지만, 그동안 존재감이 미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사 출신으로 IT 기업인이었던 안 위원장이 야심 차게 제안한 '과학교육수석' 신설은 결국 무산됐다. 또, 초대 내각 인선에서 안 위원장의 추천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이 때문에 안 위원장은 인수위 업무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달 14일 하루 동안 공식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윤 당선인과의 만찬 회동에 불참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안 위원장의 영향력이 기대치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안 위원장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새 선택지는 결국 '당'이었다. 국민의힘과 안 위원장이 대표로 있던 국민의당이 합당한 상황에서 원내 입성을 통해 당내 입지를 넓히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집권여당의 당권과 차기 대권도 바라보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이 고문과 안 위원장 외에도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로 오세훈 현 시장이,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나서는 등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여야 대선급 주자들이 줄지어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여야가 검수완박 법안 처리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주요 인물들도 대거 출사표를 던지면서 새 정부 출범을 즈음해 치러지는 이번 선거가 대선 이후 민심의 향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